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는 드넓은 우주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함선 ‘창조호’는 태양계 변방의 암흑 지대, 인류의 탐사선이 채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함교의 주 스크린에는 수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희미한 잔광만이 띄엄띄엄 박혀 있을 뿐, 오직 희망과 불안만이 공존하는 절대적인 침묵이 지배했다.

“함장님, 아직 특이점 없습니다. 탐사 구역 D-7, 통과 중입니다.”

항법 및 통신을 담당하는 김민준 대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패드 위를 스치듯 움직였다. 창조호의 모든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그 사실만이 이 머나먼 여정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좋아, 민준. 선우 박사는? 아직 연구실인가?” 이지원 함장의 목소리는 깊은 심해처럼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강철 같은 의지가 숨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 너머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너머의 미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빛나고 있었다.

“네, 함장님. 아마 새로운 우주 먼지 샘플에 정신이 팔려 있을 겁니다. 저번엔 그 먼지에서 미량의 비표준 입자를 발견했다고 밤새 흥분해서…” 민준 대원이 피식 웃었다. 과학자 특유의 광기 어린 집착은 이 지루하고 고독한 항해에서 작은 활력소 같은 것이었다.

그때였다.
함교 전체를 감싸던 고요가 순간적으로 깨지는 파공음이 울렸다. ‘삐이익-!’하는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주 스크린의 좌측 하단에 평소 보지 못했던 붉은 아이콘이 깜빡였다.

“무슨 일이지?” 이지원 함장이 나직하게 물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의자에 앉은 몸은 이미 다음 순간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듯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경고 시스템 활성화! 미확인 물체 접근! 함선 진행 경로와 충돌 위험! 거리… 120만 킬로미터! 속도… 예측 불가!” 김민준 대원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였다. 스크린의 붉은 아이콘이 더욱 격렬하게 깜빡였다.

“120만 킬로미터? 그게 갑자기 나타났다고? 센서에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나?”

“네! 전혀요! 갑자기 레이더망에 포착되었습니다. 마치… 공간을 찢고 나온 것처럼요!” 민준 대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의 앞에는 전례 없는 수치들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이지원 함장은 즉시 통신 버튼을 눌렀다. “박선우 박사, 즉시 함교로! 비상 상황이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연구실에서 달려온 박선우 박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함교 문을 열었다. 그의 흰 연구 가운은 어딘가에 걸렸는지 살짝 찢어져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그의 다급함을 짐작게 했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제 비표준 입자 분석 중에…”

“박사님, 그건 나중에. 주 스크린을 보십시오.” 이지원 함장은 스크린을 가리켰다.

주 스크린에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120만 킬로미터라는 거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대체 저건… 뭐죠?” 박선우 박사의 얼굴에서 장난기 어린 과학자의 표정은 사라지고, 순수한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확대된 영상에 잡힌 물체는 지금까지 인류가 상상해 본 어떤 행성이나 소행성, 심지어 블랙홀의 단편적인 이미지와도 달랐다. 완벽하게 구형도 아니었고, 불규칙한 형태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가장 정교한 기계 문명의 산물 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짙은 먹색을 띠고 있었는데,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주변의 별빛은 물론, 창조호의 강력한 탐조등 빛마저도 흡수해 버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모든 어둠을 한 점에 응축해 놓은 것 같았다.

“접근 속도 늦출 수 없습니까? 이대로 가면 충돌입니다!” 김민준 대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비상 제동! 엔진 역추진 최대 출력! 회피 기동 1단계!” 이지원 함장의 명령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함선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조호의 거대한 주 엔진이 굉음을 내며 역추진을 시작했고, 관성에 저항하는 엄청난 힘이 승무원들을 압박했다. 중력 제어 장치가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의자에 깊이 파묻히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검은 물체는 마치 창조호의 움직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창조호가 그 물체를 향해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소용없습니다, 함장님! 상대 속도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김민준 대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박선우 박사가 스크린에 더욱 바싹 다가섰다. 그의 눈은 검은 물체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저건… 중력장이 아니야. 일반적인 물질도 아니야. 에너지 패턴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측정 불가능해요!”

“측정 불가능이라고요?” 이지원 함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우주 현상을 목격했지만, ‘측정 불가능’이라는 보고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그 자체였다.

“네, 함장님. 어떤 센서로도 저 물체의 구성 물질, 질량, 에너지 방출량…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습니다. 마치… 저곳만 우주에서 지워진 것 같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분명 존재하는데, 모든 과학적 측정 기구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박선우 박사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조차도 이 현상 앞에서는 무력했다.

충돌까지 남은 시간: 1분 30초.

함교 안의 모든 승무원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창조호는 인류의 가장 진보된 우주선이었지만, 이 미지의 물체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함장님, 마지막으로 회피 기동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김민준 대원이 희망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지원 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회피 기동을 멈춰라. 엔진 역추진도 중지.”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이지원 함장을 돌아봤다.
“함장님! 죽으실 작정이십니까!” 박선우 박사가 소리쳤다.

“아니, 박사. 우리는 저것을 피해 갈 수 없어. 저것이 우리를 빨아들이고 있든, 우리가 저것에게 끌려가고 있든, 이 속도와 힘은 우리가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지원 함장은 스크린 속의 검은 물체를 똑바로 노려봤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부딪혀 보자. 충돌 예측 지점, 어디지?”

김민준 대원이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을 조작했다. “함수 정면… 중앙입니다.”

“좋아. 모든 시스템에 충격 흡수 모드 지시. 승무원들, 충격 대비 자세!” 이지원 함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받아들인 듯 초연했다.

창조호의 거대한 선체가 서서히 검은 물체에 접근했다. 대형 스크린 가득 이제 그 물체의 기이한 표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단단한 고체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마치 수백만 개의 미세한 검은 비늘이 불규칙하게 겹쳐진 듯한 형상이었다. 그 비늘들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충돌까지 남은 시간: 10초.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일까?’ 이지원 함장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5초.
4초.
3초.
2초.
1초.

충돌 직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검은 물체의 표면이 마치 물결처럼 요동치더니, 창조호의 함수 정면과 일치하는 지점에 거대한 구멍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던 공간이 갑자기 찢어지고 벌어진 것 같았다. 구멍 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으로 가득했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하지만 동시에 기묘하게 유혹적인 어둠이었다.

창조호는 그 거대한 어둠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거대한 함선이 마치 종이 한 장처럼 부드럽게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했다.

함교 전체에 순간적인 정전이 발생했다. 모든 스크린이 꺼지고, 비상등만이 붉게 깜빡였다.
“시스템 오류! 모든 센서 마비! 통신 두절!”
김민준 대원의 절규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지원 함장은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외쳤다. “비상 전력! 메인 시스템 복구!”

잠시 후, 주 전력이 다시 들어왔다. 함교는 다시 환한 빛으로 채워졌지만, 그 빛은 이전과 같은 안도감을 주지 못했다.
주 스크린에는 외부 우주 대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뭐야…?” 박선우 박사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창조호는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 안에 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었다. 사방은 매끄러운 금속성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과 붉은빛이 깜빡이며 길고 긴 통로를 밝히고 있었다. 그 통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창조호는 그 통로 한가운데에, 마치 정교하게 짜인 기계 부품처럼 완벽하게 들어맞은 채 멈춰 있었다.

“저 문양…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김민준 대원이 스크린에 표시된 문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혼란과 함께 깊은 경이로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지원 함장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했다.
“근접 탐사 드론 발진 준비. 박사님, 저 문양들, 그리고 저 내부 공간에 대한 모든 가능한 정보 수집을 시작하십시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통로의 끝을 응시했다. 인류는 드디어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재앙의 시작일까, 아니면 새로운 역사의 서막일까.
창조호는, 그리고 인류는, 이제 막 심연의 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문 안쪽에서,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