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먼지가 덮인 도시의 잔해는 오늘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철골 구조물이 텅 빈 하늘을 향해 앙상하게 뻗어 있었고, 유리 파편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한때 화려했던 기억을 조용히 비추는 듯했다. 나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를 헤치며 나아갔다. 발아래 부서진 벽돌과 깨진 조약돌들이 스치는 소리만이 이 고요를 가끔씩 깨트렸다.
“여기도 별 거 없네, 모모.”
내 어깨 위에서 작게 웅크리고 있던 모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슬복슬한 털 아래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는 주변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 듯했다. 모모는 이 폐허가 된 세상에서 내가 처음 발견한 생명체였다. 고양이와 비슷한 외형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유연하고 날렵했으며, 무엇보다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듯한 총명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낡은 마트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통조림 몇 개를 찾는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식량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마트는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다. 선반들은 기울어지거나 완전히 쓰러져 있었고, 녹슨 철골 구조물 아래로는 한때 가지런히 놓여 있었을 상품들의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희망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실망했어?”
모모가 내 뺨에 앞발을 살짝 얹었다. 보드라운 털의 감촉에 나는 피식 웃었다. 실망이라면 매일같이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모모가 있어서 괜찮았다. 이 무너진 세상에서 나 혼자였다면 아마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진열대 가장 안쪽, 먼지가 두껍게 쌓인 구석에서 찌그러진 금속 조각이 빛에 반사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오래된 상자들 아래 깔려 있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통조림이었다. 겉면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녹이 슬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내용물이 괜찮을 것 같았다.
“찾았다!”
모모가 기쁜 듯 내 어깨 위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통조림을 들어 올리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
폐허를 뒤로하고 내가 자주 머무는 임시 거처로 돌아왔다. 한때 카페였던 곳의 구석,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가장 따뜻하게 쏟아지는 자리였다. 나는 능숙하게 통조림을 땄다. 내용물은 예상대로 잘 보존된 과일 통조림이었다.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모모, 네 것도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작은 접시에 과일을 덜어 모모 앞에 놓았다. 모모는 만족스러운 듯 꼬리를 흔들며 과일을 냠냠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부드러운 과육의 식감에 절로 눈이 감겼다. 이런 작은 행복이, 이 모든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해가 지고, 도시의 실루엣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모아둔 나뭇가지로 작은 불을 피웠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어둠이 내리는 공간을 따뜻하게 밝혔다. 우리는 불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대화 없는 침묵을 메웠다.
“지아, 오늘 저기 보이는 곳으로 가볼까?”
모모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높은 구조물을 가리켰다. 어쩌면 새로운 터전이 될지도 모르는 곳.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모의 눈빛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 모모. 내일은 저기로 가보자.”
나는 모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모는 내 손길에 몸을 비비며 만족스러운 듯 작은 골골 소리를 냈다. 불꽃은 여전히 따뜻하게 타올랐고, 밤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무너진 도시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쩌면 이 세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고, 그 하루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작은 행복과 희망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달콤한 과일 통조림처럼, 이 세상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작은 기적을 믿으며. 나는 모모와 함께 불꽃을 바라보며 밤을 맞이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두운 세상 속 작은 불씨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