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호 살인 (流星號 殺人)
## 1. 닫힌 방의 죽음
별들의 강물이 흐르는 우주, 그 광활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던 초호화 유람선, ‘유성호’의 심장부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한밤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얼어붙은 침묵이 먼저였다. 유성호의 최상층, 귀빈 전용 구역에 위치한 특급 연구실. 그곳에서 우주 고고학계의 거목이자 거대 기업 ‘코스모스 인더스트리’의 창립 이사였던 칼리온 박사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대장님, 보고드립니다! 칼리온 박사님의 연구실입니다! 잠금장치는 내부에서 완벽하게 걸려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경비대장 류지한은 인공적으로 조율된 산소가 희박하게 감도는 복도를 질주하며 무전기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유성호에서 발생하다니! 이 함선은 우주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움직이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외부의 침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내부 보안 역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도착한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연구실 앞 복도에는 칼리온 박사의 전담 비서와 몇몇 경비원들이 혼비백산하여 서 있었다. 류지한은 안면 인식을 통해 잠긴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쨍한 형광등 불빛 아래, 차갑고 금속성의 연구실 내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앙에, 탐사용 무인 로봇의 해체 부품들이 어지럽게 널린 작업대 옆으로, 칼리온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박사님…!”
류지한은 황급히 다가갔다. 박사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에게서는 어떤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입술은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사인은 아직 불분명했으나, 육안으로 보기에 외상은 없었다.
“의료팀은? 부검팀은 언제 도착합니까?” 류지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의료팀은 3분 내로 도착 예정입니다. 부검팀은 이 항성계의 메인 스테이션에서 대기 중이며, 도착까지는 최소 6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비 요원 중 한 명이 보고했다.
류지한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6시간. 그 시간 동안 유성호는 꼼짝없이 이 자리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는 연구실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했다. 지문 인식기와 홍채 스캐너로 이중 잠금 된 문,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통유리 벽, 완벽하게 밀봉된 환기 시스템. 외부 침입은 그야말로 불가능했다.
이것은 완벽한 밀실 살인이었다.
그때였다. 연구실 한쪽 구석, 은색 금속 테이블 위에 놓인 조잡한 조각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한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구겨진 짙은 회색 제복 바지에 검은 터틀넥 셔츠, 그 위로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재질의 트위드 재킷을 걸친 남자. 그는 한 손에 오래된 종이책을 들고 있었는데, 책갈피를 끼워둔 채 검지로 느릿하게 책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진. 우주 변방을 떠돌며 잊힌 고대 문명의 유물을 찾아다니는 괴짜 학자이자, 동시에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풀어낸 전설적인 ‘탐정’이었다. 류지한은 그가 이 배에 탑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기대 반 우려 반이었으나,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진 씨… 아니, 강 박사님. 혹시 보신 게 있으십니까?” 류지한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는 강진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주의 어떤 어둠도 꿰뚫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강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깊은 우주처럼 검었고, 그 안에 담긴 지성은 류지한을 압도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칼리온 박사의 시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살아있는 이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경비대장.” 강진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은 없었다. 박사의 개인 데이터 로그 기록을 확인했나? 사망 직전까지 외부인과 접촉했거나, 특이한 활동을 보인 기록은 없었나?”
“네, 박사님. 잠시 전 확인했습니다. 칼리온 박사님은 사망 4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외부와 어떠한 통신 기록도 없으셨습니다. 연구실 내의 폐쇄 회로 카메라 영상에도 박사님 외에는 그 누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기록은 박사님이 혼자 이 방에 계셨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류지한은 침울하게 보고했다. “말 그대로, 유령의 소행입니다.”
강진은 피식 웃었다. 짧고 건조한 웃음이었다.
“유령이라. 우주는 넓지만, 아직 유령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기록은 없더군.” 그는 시선을 박사의 시신으로 돌렸다. “박사의 작업대가 유독 어지럽군. 늘 저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버릇이 있었나?”
류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칼리온 박사님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연구실만큼은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으셨죠. 늘 모든 도구를 종류별로, 크기별로 정돈해두셨습니다.”
강진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천천히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박사의 손가락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박사의 손가락에는 어딘가에 긁힌 듯한 작은 상처가 있었다. 매우 미세해서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이것 보십시오, 대장님! 의료팀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흰색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급하게 들어섰다. 그들은 시신에 다가가기 위해 강진에게 비켜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강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류지한은 그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대장님.” 강진이 나직이 말했다. “이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해질 겁니다.”
“복잡하다니요? 완벽한 밀실인데, 뭐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단 말입니까?” 류지한은 의아했다.
강진은 대답 대신, 박사가 쓰러져 있던 작업대 위, 어지럽게 널린 부품들 사이에서 작고 둥근 금속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처럼 생겼지만, 그 표면에는 얇은 막이 씌워져 있었다. 강진은 그 조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질러 보았다. 그리고는 류지한에게 내밀었다.
“이 방은 밀실이 아닙니다.” 강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류지한은 강진이 내민 금속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밀실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의미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강 박사님.” 류지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진은 조각을 류지한의 손에 쥐여주며, 박사의 시신이 놓여 있던 바닥의 아주 작은 틈새를 가리켰다. 그 틈새는 너무 작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살인자는… 아직 이 배에 있습니다.” 강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칼리온 박사는 죽기 직전, 이 조각을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류지한은 강진의 손바닥에 놓인 금속 조각과, 박사가 죽은 공간의 작은 틈새를 번갈아 보았다. 밀실 살인이라 불렸던 이 사건에, 강진은 지금 막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주선은 여전히 고요히 항해하고 있었지만, 류지한은 마치 모든 엔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거대한 폭풍의 전조를 느꼈다. 유성호는 이제 미궁 속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