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짙고, 침묵은 깊었다. 그 아득한 심연 속에서, 탐사선 ‘셀레네 호’는 마치 바늘 끝에 매달린 한 점의 빛처럼 외로이 떠 있었다. 수백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심우주를 향해 돛을 올린 이래, 수많은 별과 은하가 지도 위에 새겨졌지만, 지금 셀레네 호가 나아가는 이곳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태초의 혼돈이 숨 쉬는 듯한 곳.
함교의 푸른 조명 아래, 서현 함장은 묵묵히 전방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의 잔해가 흩뿌려진 우주 지도가 그녀의 눈앞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정식 탐사 루트를 한참 벗어난 곳. 이 구역은 그 어떤 탐사선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잠들어 있던 곳이었다. 며칠째 특별한 신호도, 유의미한 데이터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항해하는 시간의 연속.
“함장님, 뭔가 포착됐습니다.”
그 단조로운 침묵을 깬 것은 과학 장교 지훈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긴장과 흥분이 섞여 있었다. 서현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얇은 안경 너머 지훈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고해.” 서현은 침착하게 명령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에너지 파동입니다. 감마선 폭발도, 중성자별의 활동도 아니며… 기존에 알려진 어떤 천체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지훈은 빠르게 손을 놀려 데이터를 스크린에 띄웠다. “불규칙적인 패턴을 보이는 듯하지만, 그 불규칙성 자체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보내는 신호처럼요.”
“신호라고?” 보안 책임자 태민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함교의 한쪽 구석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스크린에 집중됐다.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군. 해적단인가?”
“아뇨, 규모로 보나 주기로 보나 해적단이 운용할 수 있는 신호가 아닙니다. 너무도… 정교합니다. 그리고 이 구역에서 해적단 활동이 보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에너지원은… 알 수 없습니다. 주변 공간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탐사정 발사 준비해.” 서현이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함장님!” 태민이 불렀다. “미지의 신호입니다. 함선 전체에 미칠 영향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직접 접근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미지의 것이기에 탐사선이 존재하는 이유지, 태민.” 서현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물론, 안전 수칙은 준수한다. 탐사정에 태민 자네를 포함한 최소한의 인원이 동행하고, 셀레네 호는 안전 거리에서 대기할 것이다.”
태민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함장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탐사정 ‘갈매기’는 셀레네 호의 격납고를 빠져나와 칠흑 같은 우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종사 혜리, 과학 장교 지훈, 그리고 보안 책임자 태민이 탑승했다. 갈매기는 신호의 근원을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주변에는 먼지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성간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호 강도 증폭됩니다. 거리 3천 킬로미터.” 혜리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뭔가 보인다.” 태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갈매기의 외부 센서가 포착한 영상을 확대했다.
그것은… 구조물이었다. 아니, 구조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형태였다. 거대한 얼음 결정처럼 보이기도 했고, 정교하게 조각된 검은 유리 같기도 했다. 그 거대한 덩어리는 어떤 동력원도 없이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었다. 크기는 소형 행성급은 아니었지만, 셀레네 호 정도는 왜소하게 보일 만큼 압도적이었다.
“정체불명… 고대 유적일까요?”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은 경외감과 흥분으로 번뜩였다. “아니, 유적이라기엔… 너무도 완벽합니다. 마치 방금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 거대한 검은 결정체는 육각형의 면들이 불규칙하게 얽혀 있었고, 그 표면에는 희미한 푸른색 광선이 맥박처럼 흘렀다. 그 광선은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결정체 내부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결정체의 중심에서, 셀레네 호가 감지했던 바로 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표면에 접근한다.” 혜리가 조종간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갈매기가 유물에 가까워지자, 지훈은 손으로 창을 짚었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상합니다. 내부에서 아무런 에너지 반응도 잡히지 않습니다. 저 푸른 빛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인지 판독 불가능합니다.”
“만져볼 수 있을까?” 태민이 말했다. “혹시나 함선에 영향을 줄지 모르니, 외부 로봇팔로 샘플을 채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갈매기 내부의 모든 조명이 깜빡였다. 계기판이 일제히 요동쳤고, 선체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혜리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유물에서 강력한 파동이 감지됩니다! 우리 함선의 에너지와 간섭하는 것 같습니다!” 지훈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분석기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 갈매기의 전면 창 밖으로 펼쳐진 검은 결정체에서, 푸른 빛이 더욱 강렬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처럼, 그 거대한 결정체 전체가 빛으로 고동쳤다. 그리고 그 빛의 파동은 갈매기의 선체를 강타했다.
“함선 제어가 안 돼!” 혜리의 목소리가 비명에 가까웠다.
갈매기가 마치 거대한 손에 붙잡힌 장난감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장비가 오작동하기 시작했고, 통신 장비에서는 의미 없는 노이즈만이 쏟아져 나왔다.
“서현 함장님! 들립니까! 갈매기호 비상 상황 발생! 유물… 유물이 우리를…!” 지훈이 애타게 통신을 시도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곧 노이즈에 파묻혔다.
태민은 본능적으로 무기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외부 유물을 향했다. 유물의 푸른 빛이 갈매기의 외부를 감싸기 시작했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갈매기의 선체를 파고들었고, 이내 외부 카메라 영상마저 파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갈매기의 내부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푸른 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왔고, 그 빛은 승무원들의 피부에 닿자마자 섬뜩한 한기를 일으켰다. 빛이 닿은 곳마다 미세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빛 속에서, 뭔가가 보였다.
정확히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에 가까웠다.
환영이었다.
어쩌면 환영이 아닐 수도 있었다.
혜리는 조종간을 붙잡은 채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눈앞에 셀레네 호의 격납고가 보였다. 아니, 셀레네 호가 아니었다.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성채였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벽과 돔형 천장, 그리고 그 중심에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얽혀 있었다. 그 기계들은 고대의 언어로 쓰인 경전처럼 보였다.
지훈은 분석기를 놓친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의 귀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비명 속에서 웅장한 합창을 들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장엄하지만 섬뜩한 노래.
태민은 무기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숲이 있었다. 나무들은 뼈처럼 말라 있었고, 가지 끝에는 기괴한 형태의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숲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눈동자는 단순히 응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태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과 절망을 낱낱이 파헤치는 듯했다.
“이건… 환각이야! 정신 차려!” 태민은 애써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갈매기 내부를 가득 채운 기이한 파란 빛 속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그때, 유물이 마지막 맥박을 치듯 격렬하게 빛났다.
푸른 빛이 갈매기를 완전히 집어삼키자, 갈매기는 외부 통신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셀레네 호 함교.
“갈매기 호와 통신 두절됐습니다! 함장님!” 통신 장교 혜리가 절규하듯 외쳤다.
“무슨 일이냐!” 서현 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갈매기 호의 위치 추적은? 비상 탈출 장치 작동은?”
“추적 신호도 사라졌습니다! 비상 탈출 장치 신호도 잡히지 않습니다!”
“유물에서…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커졌습니다!” 지훈 대신 함교의 과학 장교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비친 유물은 이제 거대한 푸른 심장처럼 우주 공간에서 맹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 빛은 셀레네 호의 방어막을 뚫고 함교 내부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함장님! 함선 전체에 전력 변동이 감지됩니다! 시스템 과부하 경고등이 들어왔습니다!” 기관장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서현은 스크린의 유물을 응시했다. 거대하고 섬뜩하게 빛나는 그 존재는 마치 셀레네 호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는 거대한 포식자 같았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 순간,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빛이 일순간 응축되는 듯하더니,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빛은 마치 거대한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수십 개의 검은 조각들은 거대한 빛의 기둥을 형성하며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어둠의 씨앗들이 뿌려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조각들이 뻗어 나간 자리마다, 셀레네 호의 센서로는 감지할 수 없는, 기이한 형태의 그림자들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마치 꿈틀거리는 벌레떼 같기도 했고, 불꽃처럼 피어나는 어둠의 존재들 같기도 했다.
“함장님! 저건… 대체…!”
모두가 숨을 멈춘 채 그 기이한 광경을 지켜봤다.
서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문이었고,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문이 열렸다.
“전 함선 전투 태세! 방어막 최대 출력! 모든 무장 가동!”
서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셀레네 호의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채웠다.
그림자들은 빠르게 셀레네 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그림자에서, 끔찍하게 일그러진 형체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잠들어 있던 악몽이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틀라스 호의 선원들은 깨달았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결코 마주해서는 안 될,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재앙이었다.
그리고 이제, 재앙은 깨어났다.
그들의 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