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는 자정이었다. 이서진은 식탁 위에 놓인 태블릿 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태블릿 옆, 펜꽂이에 꽂혀 있던 녀석이다.

“거참, 너는 왜 항상 이런 식이니.”

서진이 읊조리듯 말했다. 펜은 마치 고집 센 아이처럼, 식탁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펜꽂이에서 식탁 한가운데까지의 거리는 대략 30cm. 스스로 움직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이었다. 물론, 그녀의 아파트에서는 이제 일상이 된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성 환각인 줄 알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컵이 제자리를 벗어나 싱크대 바깥으로 미끄러져 있거나, 분명히 잠그고 나갔던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거나. 하지만 환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사실적이고 반복적이었다.

서진은 결국 펜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펜의 촉감이 손가락에 닿았다.
“심심하면 말을 해. 놀아주진 못하지만, 최소한 네 이름은 불러줄 수 있잖아?”

대답은 없었다. 대신 주방 한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싱크대 선반 위,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접시 하나가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마치 누가 일부러 밀어 떨어뜨리는 것처럼. 그리고 바닥에 닿기 직전, 멈췄다. 허공에서.

“와…”

서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엔 좀 진지하게 노는 모양이었다. 접시는 허공에서 몇 초간 맴돌더니, 다시 천천히 위로 올라가 제자리에 착륙했다.

“나름 신기술이네.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겁도 나고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매번 이사를 가거나 퇴마사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이 ‘미지의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심지어 이름을 붙여줄까도 생각했다. ‘움직이’라거나, ‘툭툭이’ 같은 시시한 이름들로.

다음 날 아침, 서진은 친구 유진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볕이 잘 드는 카페 테라스, 따뜻한 커피를 사이에 두고 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누가 몰래카메라 설치한 거 아니야? 아니면 너 혹시… 너무 피곤해서 헛것 보는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이제는 내 물건 가지고 염동력까지 쓴다니까? 접시가 공중 부양을 했다고!”
“공중 부양? SF 영화 찍니? 그럼 영상으로 찍었어야지!”
“찍을 새도 없었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니까. 게다가 이건 내 휴대폰이 작동을 안 해.”

서진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장 기묘한 부분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휴대폰이 먹통이 된다는 것이었다. 화면은 까맣게 변하고, 버튼은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전파를 교란하는 것처럼.

“음… 혹시 전파 방해 장치 같은 걸 쓰는 범죄 아닐까? 누군가 네 집에 침입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
“설마. 매번 뭘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기도 해. 지난주에 한참 찾던 차 키도 갑자기 소파 쿠션 위에서 뿅, 하고 나타났다니까? 내가 그렇게 꼼꼼하게 찾았는데도 없던 게 말이야.”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점집을 가볼까?”
“야! 농담하지 마. 괜찮아. 이젠 뭐, 익숙해졌어. 내 삶의 작은 스릴이랄까?”

서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유진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서진은 평소처럼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태블릿 화면에 연필 스케치가 채색되기 시작했다. 붓 터치가 섬세하게 이어지는 순간,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갑자기 깜빡였다.

틱, 틱, 틱.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는 불빛은 마치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또 시작이네. 오늘은 또 무슨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을까?”

서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젠 제법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나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TV 화면이 갑자기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동시에 집 안의 모든 불이 나갔다.

“어…?”

새까만 어둠 속. 서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평소와는 달랐다. 지난번 전등이 나갔을 때는 한쪽 방만 그랬지, 이렇게 집 전체가 암흑으로 변한 적은 없었다. 밖은 여전히 환한데, 그녀의 아파트만 고립된 듯 어두웠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 진… 아…’

자신의 이름이었다. 분명히. 여성의 목소리 같기도, 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음성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알 수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이 굳었다. 차마 손전등을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거실 테이블 위, 그녀가 방금 전까지 그림을 그리던 태블릿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놀랍게도 태블릿 화면은 다시 켜져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방금 전까지 그녀가 그리던 그림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니, 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묘한 형태였다. 마치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낙서 같기도 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문양 같기도 했다. 검은 바탕에 흰색 선으로 그려진 그 문양은, 어딘가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문양들 사이, 가장 중앙에 아주 또렷하게, 그녀의 이름이 다시 쓰여 있었다.

‘이서진.’

서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다르다. 이전의 단순한 장난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그제야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때, 태블릿 화면 속 문양의 한 부분이 픽, 하고 움직였다. 마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 복도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엘리베이터 도착음을 들으며,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젠장, 도대체… 너, 누구니?”

태블릿 화면의 불길한 문양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듯 더욱 섬뜩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 속에서 점점 더 거대한 무언가로 변해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