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호의 함교는 칠흑 같은 심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과 같았다. 망망대해의 정적 속에서 오직 기계들의 낮은 숨소리만이 살아있는 존재를 알렸다. 함장 이진호는 투명한 메인 스크린 너머로 펼쳐진 무한한 어둠을 응시했다. 수백만 년 전 폭발한 별들의 잔재가 뿌려놓은 은하 먼지들이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보랏빛 성운을 이루고 있었다. 인류가 이 먼 심우주까지 진출한 지 벌써 200년. 여전히 미지의 세계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함장님, 보고드립니다.”
부함장이자 탐사 팀장인 김민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의 옆에 섰다. 새까만 우주복을 입은 그녀는 언제나 침착하고 단단했다.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대원들은 모두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활동을 수행 중이고요.”
“수고했어.”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임무 궤도에 진입한 지 두 달째인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좀 허탈하겠군.”
민아가 옅게 웃었다. “늘 그렇듯이,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기도 하죠.”
그 순간, 메인 스크린 중앙에 갑자기 경고창이 번쩍였다.
[미확인 물체 감지. 접근 중.]
화면은 순식간에 별빛호 전방의 우주 지도로 전환되었고, 그 중심에 작고 붉은 점이 깜빡였다.
“수석 과학자 강은서 박사, 대체 이 시점에서 미확인 물체라니? 우리 항로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 아닌가?” 진호의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섞였다.
은서는 이미 자신의 콘솔 앞에 앉아 손가락을 맹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안경 너머로 지적인 눈빛이 빛났다.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함장님. 이건… 갑자기 나타난 겁니다. 차원 도약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 흔적도 없고요.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말도 안 돼.” 엔지니어 박준혁이 투덜거렸다. 그는 기계처럼 정확했지만, 비상식적인 상황에는 유독 회의적이었다. “감지 시스템 오류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 크기면 우리가 진작에 포착했어야죠.”
“아니요, 준혁 씨.” 은서는 단호했다. “오류가 아닙니다. 이 물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은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그녀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아니면 우리 센서가 감지할 수 없는 차원의 물질로 이루어졌거나.”
전 대원들에게 비상 상황이 전파되었다. 별빛호는 미확인 물체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붉은 점이 서서히 커져갔다.
“전방 스크린에 영상 송출.” 진호의 명령에 따라, 희미한 윤곽이 메인 스크린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저 검은 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별빛호가 킬로미터 단위로 접근할수록, 그 형태는 점차 선명해졌다.
“세상에…” 민아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정육면체였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주변의 별빛을 조금도 반사하지 않았다. 마치 그 공간의 빛을 전부 흡수하는 듯, 존재 자체가 어둠 그 자체였다. 크기는 대략 300미터 x 300미터 x 300미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거대한 우주 정거장과 맞먹는 규모였다.
“분석 결과는?” 진호는 목소리를 억눌렀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현재까지 어떤 종류의 에너지 방출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은서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물리적 스캔도 불가능해요. 스캐너 빔이… 마치 흡수되는 것 같습니다.”
준혁이 이마를 짚었다. “그럴 리가! 모든 물질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고. 스캔이 안 된다는 건 물질이 아니라는 뜻인가?”
“혹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뜻이죠.” 은서의 시선은 정육면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표면에 어떤 문양이나 구조도 없습니다. 완벽한… 무(無)의 결정체 같아요.”
정육면체는 우주 공간에 정지해 있었다. 아주 정교하게, 흔들림 없이.
“함장님, 무언가… 느껴집니다.” 민아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진호는 민아를 돌아보았다. “뭐가 느껴진다는 거지?”
“음… 설명하기 어려워요. 차가운 공포 같기도 하고… 동시에 엄청난 호기심 같기도 하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그녀는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소름이 돋은 듯했다.
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느껴집니다. 일종의… 인지 부조화 같네요. 저걸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비어버리는 것 같아요.”
진호는 다시 메인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저 검은 정육면체일 뿐인데, 왜인지 모르게 강렬한 존재감이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함장님! 긴급 보고!” 준혁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별빛호의 주 전력 공급 라인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감지됩니다! 시스템 안정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어요!”
“뭐라고?” 진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저 정육면체 때문이라는 건가? 분명 아무런 에너지도 방출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측정치는 그렇습니다만…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합니다. 지금 속도라면 5분 안에 보조 전력으로 전환될 겁니다! 그마저도 장담 못 해요!”
그때, 메인 스크린의 검은 정육면체 표면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가장자리가… 빛나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검은색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깊고 어두운 보랏빛으로. 마치 우주 자체의 정수가 그곳에 응축된 것처럼.
그리고 그 보랏빛 가장자리를 따라,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약한 진동이 별빛호의 선체를 타고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차 강해졌다. 별빛호 내부의 모든 물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원들의 심장 박동도 그 진동에 맞춰 불규칙하게 뛰는 것 같았다.
“함장님, 이건… 이건 위험합니다!” 은서가 외쳤다. 그녀의 눈은 정육면체의 빛나는 가장자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건… 물질이 아니에요. 이건… 존재 그 자체입니다!”
진호는 망설일 틈도 없이 소리쳤다.
“별빛호, 전속력으로 후퇴! 물체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벌려라! 비상 매뉴얼 1등급 발동!”
하지만 그의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육면체의 보랏빛 가장자리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마치 그 안쪽이 또 다른 우주인 것처럼, 한없이 깊고, 한없이 어두운.
균열이 벌어지는 순간, 별빛호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육면체의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보랏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함교의 모든 대원은 섬뜩한 환영을 보았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사람의 형상을 한, 하지만 너무나도 길고 뒤틀린 그림자.
셀 수 없는 그림자들이 정육면체의 균열 속에서 기어 나오는 듯했다.
그림자들은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뇌를 직접 파고드는 듯한 섬뜩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함장님… 저… 저것 좀 보세요…!” 민아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림자들이 별빛호의 함교를 향해 손을 뻗는 듯했다.
그리고 이진호 함장은, 그 그림자들 사이에서 아주 잠시, 아주 흐릿하게,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공포와 혼돈에 잠식된, 늙고 지친 자신의 얼굴을.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