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어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고, 대지는 생기를 잃어갔으며, 강물은 탁류로 변해 썩은 내를 풍겼다. 인간의 세상은 필멸의 존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위협 아래 신음했다. 그것은 단순한 역병이나 기근이 아니었다. 존재 그 자체를 뒤흔드는 심연의 그림자였다.

이 지옥 같은 혼돈 속에서,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천하의 모든 무림 세력은 하나로 뭉쳐, 마지막 수단을 강구했다. 이름하여, **창천무탑대회(蒼天武塔大會)**.
더 이상 강호의 패권을 다투는 영광의 대회가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피와 죽음의 결전이었다.

대회는 강호의 심장이라 불리는 현무산(玄武山) 정상에 위치한 고대 유적, ‘운명각(殞命閣)’에서 열렸다. 수천 년간 봉인되어 있던 이 거대한 석조 건축물은, 이제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무덤이 될지도 모를 장소가 되었다. 육중한 암벽들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쳐 참가자들의 깃발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무영(無影).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 혹은 스스로 그림자를 버린 자.
그는 삭막한 계단을 묵묵히 올랐다. 그의 등 뒤에는 검은 천으로 감싼 낡은 목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천하제일의 무위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먹빛 눈동자에는 세상의 모든 피로와 상실감이 서려 있었다. 수십 년 전, 홀연히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그였다. 그러나 세상이 끝을 향해 치닫는 지금, 그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운명각의 거대한 광장은 이미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각 문파의 기치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이름만 들어도 전율하는 강호의 대협들과 기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저마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들 사이에서 무영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여 눈에 띄지 않는 듯했으나, 그의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어딘가에서 낯선 시선들이 꽂히는 것을 느꼈다.

“흥, 저자가 감히 다시 나타났군.”

등 뒤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흑풍문(黑風門)의 문주, 백우(白牛)였다. 예전에도 무영과 몇 차례 검을 겨루었던 악연 깊은 자였다. 그의 주위에는 거대한 근육질의 무사들이 삼엄하게 서 있었다.

무영은 여전히 말없이 광장의 중앙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거대한 대리석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무림맹(武林盟)의 맹주인 현무대사(玄武大師)가 굳건히 서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승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함께 세상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었다.

현무대사는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마침내 무영의 텅 빈 눈동자와 스치듯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현무대사의 눈빛에서 희미한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 그의 표정은 다시 굳건한 평정을 되찾았다.

“천하의 무림인들이여, 그대들이 이곳 운명각에 모인 이유를 묻지 않겠다.”
현무대사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지만,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맑은 종소리 같았다.
“허나, 그대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상은 지금 파멸의 문턱에 서 있다. 저 심연의 어둠이 깨어나,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운명각의 거대한 창문 틈새로 검붉은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섬광은 대기 중에 끈적한 악취를 남기며 빠르게 사라졌지만, 그 잠시 동안의 출현만으로도 모두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웅성거림이 광장에 퍼졌다.

“저것이 바로, 마신(魔神)의 그림자다. 우리가 이 대회를 여는 이유이자, 우리가 죽음으로써 막아야 할 존재다.”
현무대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창천무탑대회는 단순히 무를 겨루는 장이 아니다. 마신에게 대항할 최후의 영웅을 찾아, 그에게 천하의 모든 염원을 담아 힘을 불어넣을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 대회에서 승리하는 자는 무림의 패자가 되는 동시에, 마신과 맞설 천하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광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은 현무대사를 향해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야망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마신을 물리칠 영웅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곧 지옥 같은 고통과 죽음의 길을 의미했다.

“대회의 규칙은 간단하다. 오직 승리만이 존재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모든 비겁한 술수와 잔인한 수단은 허용된다. 다만, 대회장에 들어선 이상, 살아남아 운명각을 나설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현무대사의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금부터, 천하무림의 운명을 건 창천무탑대회를 시작한다.”

현무대사가 손을 들어 올리자, 광장 주위에 세워진 거대한 석상들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땅이 낮게 울리며, 운명각의 거대한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통로가 드러났다. 죽음의 입구였다.

“첫 번째 대결을 발표한다.”
현무대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흑풍문 문주, 백우. 그리고… 무영.”

무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굳이 놀라지 않는 척하지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만남이 찾아온 것이다. 백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영을 노려보았다.

“드디어 만났군, 그림자 없는 자. 이번엔 네 그림자를 영원히 지워주마.”

무영은 아무 말 없이 백우를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오랜 침묵 끝에 다시 타오르는 희미한 불꽃이 보였다. 그의 손은 등 뒤의 목검으로 향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