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폐허의 속삭임

잿빛 하늘 아래, 지아는 낡은 배낭을 멘 채 무너진 고가도로 옆을 걷고 있었다. 신발 밑창에 밟히는 파편들이 으스스한 소리를 냈지만, 그녀의 귀에는 이미 익숙한 배경음악이 된 지 오래였다. 공기는 오래된 먼지와 알 수 없는 금속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무거웠다. 도심은 거대한 뼈대만 남은 유령도시와 같았다. 앙상한 철근 구조물들이 뒤틀린 채 하늘을 찌르고, 검게 그을린 건물 잔해들은 마치 거인의 공동묘지처럼 을씨년스러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빌어먹을… 오늘은 제발 운이 좋기를.”

메마른 입술 사이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목적지는 저 멀리, 간판마저 떨어져 나간 채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백화점 건물이었다. 이 넓은 폐허에서 아직 쓸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 그만큼 위험도 따랐지만, 물이 거의 바닥난 지금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폐백화점의 유리벽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녹슨 철골들이 흉터처럼 드러나 있었다. 지아는 무너진 외벽의 틈새로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한때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빛났을 매장들은 이제 텅 빈 마네킹들과 부서진 진열대의 잔해로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전등 불빛만이 가늘게 길을 찾아 나섰다.

툭. 툭.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적막을 깼다. 마치 건물이 느릿하게 숨을 쉬는 것처럼 들렸다. 지아는 낡은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폐쇄된 공간은 언제나 그녀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

“식료품… 식료품 코너는 어디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지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는 금이 간 콘크리트 계단처럼 변해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자, 쿵, 쿵, 하고 발걸음 소리가 폐쇄된 공간에 메아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지아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를 울릴 뿐.

지하 1층에 도착하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흥건했고, 천장에서는 녹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희미한 글씨로 ‘식품관’이라 적힌 간판을 비췄다. 희망이 일렁였다.

선반들은 텅 비어 있거나, 썩은 음식물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때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진열되었을 코너를 지나, 통조림 코너로 향했다. 그곳 역시 대부분은 비어 있거나 부식되어 있었지만, 깊숙한 곳, 선반의 가장 안쪽에 먼지가 쌓인 채 온전히 놓여 있는 통조림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찾았다…!”

육포 통조림 두 개, 그리고 물병 하나. 기적이었다. 지아는 서둘러 그것들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살짝 찌그러지긴 했지만, 분명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생수병도 함께였다.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던 그녀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통조림을 챙기고 막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싸악-

아주 미세한 소리. 마치 바닥을 스치는 나뭇잎 소리 같기도, 혹은… 물기 없는 비늘이 쓸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아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올랐다. 본능적으로 쇠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누구…야?”

목소리가 떨렸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비췄다. 낡은 냉장고 진열대 뒤쪽.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피로에 지쳐 환청을 들은 건 아닐까.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화악!

냉장고 진열대 뒤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짐승 같으면서도 기괴한 형체. 마치 거대한 곤충이 인간의 팔다리를 얻은 듯한 모습이었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몸은 흐릿한 손전등 불빛을 흡수하는 듯했고, 길게 뻗은 팔 끝에는 면도날 같은 발톱이 번뜩였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동자였다.

‘그림자 사냥꾼.’

지아의 머릿속에 이름이 떠올랐다. 폐허를 배회하는 포식자 중 가장 악명 높은 존재였다. 빠르고, 은밀하며, 잔인했다.

“크르륵…!”

괴물이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지아는 비명조차 지를 새 없이 본능적으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쾅! 파이프가 괴물의 단단한 비늘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괴물은 잠시 휘청였지만, 곧바로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왔다.

쉬익!

살을 찢을 듯한 발톱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섬뜩한 비린내가 풍겼다. 지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겨우 공격을 피했다. 좁은 통로에서 격렬한 사투가 벌어졌다. 그녀의 움직임은 비록 빠르지 않았지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궤적은 정확하고 매서웠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

괴물은 그녀의 팔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한 번이라도 잡히면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피했다.

“꺼져! 이 빌어먹을 괴물아!”

있는 힘껏 쇠파이프를 휘둘러 괴물의 다리를 찍어 눌렀다. 끽!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아는 곧장 등을 돌려 출구 쪽으로 달음박질쳤다.

터벅, 터벅, 쿵, 쿵!

괴물의 발소리가 뒤를 쫓아왔다. 금방이라도 그녀의 등을 찢어발길 듯이 가까워지는 위협. 지아는 무너진 잔해들을 뛰어넘고, 좁은 통로를 가로지르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폐백화점의 미로 같은 공간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괴물의 시야를 가리는 역할도 해주었다.

간신히 입구 쪽으로 향하는 무너진 에스컬레이터까지 도달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위로 올라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올랐고, 심장은 터질 듯이 울렸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야 해!

마침내, 그녀는 무너진 외벽 틈새로 몸을 던지듯 빠져나왔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강타했다. 지아는 곧장 바닥에 엎드려 숨을 헐떡였다.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낭을 끌어안고 주변을 경계했다.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빛을 싫어하는 습성 때문에 안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건물 안의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식료품 몇 개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상처투성이가 된 팔을 내려다보았다. 쇠파이프를 잡았던 손바닥은 쓸려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았다는 것. 그리고 통조림과 물병을 지켜냈다는 것.

지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잿빛 하늘은 여전히 그녀의 앞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불안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생존은, 이렇게 하루하루 벌이는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그리고 그곳에는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끝없는 질문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멀어져 가는 백화점 건물, 그 안의 어둠이 으스스하게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아는 다시 한번 배낭을 고쳐 메고, 발길을 재촉했다.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또 다른 건물들의 실루엣을 향해서. 삶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이 모든 것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