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폭풍의 서막

흙먼지 가득한 골목, 시든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땅이었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나무들이 비틀린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아래 웅크린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 대신 잿빛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천룡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가 이 작은 마을, 벽오촌(碧梧村)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되는 양 고개를 숙인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앙을 기다리는 죄인들처럼 보였다.

“이봐, 늙은이! 어제 바친 공물은 쥐새끼들의 먹이로도 부족했어! 어디서 감히 황제의 은혜를 이리 값싼 것으로 더럽히느냐!”

천룡 제국의 금빛 갑옷이 햇빛에 번쩍이며 눈부신 위압감을 뿜어냈다. 갑옷 속 병사들의 얼굴은 기름기로 번들거렸고,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마을 사람들을 훑었다. 그들이 손에 든 육중한 강철 곤봉은 이미 피로 얼룩진 지 오래였다. 그들의 뒤에는 검은 가죽 옷을 입은 감찰관이 차갑게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미약하지만 확실히 영기(靈氣)의 파동이 느껴졌다. 저들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다. 제국의 하급 무관, 약하지만 일반인에겐 재앙과도 같은 존재들.

하진은 찢어진 광목 조끼를 걸친 채, 낡은 오두막 그림자 속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은 돌처럼 굳은 채 주먹을 쥐고 있었다. 닳고 닳은 낫자루를 쥐었던 손바닥은 이미 수없이 물집이 잡히고 터져 갈라진 지 오래였다. 며칠 밤낮을 산을 헤매며 겨우 찾아낸 산삼 뿌리 두어 개와 야생 열매가 그들이 모을 수 있었던 전부였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저들은 ‘영초(靈草)’나 ‘정기석(精氣石)’을 바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귀한 것이 평민의 손에 들어올 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나리… 제발… 가진 것이 없습니다. 며칠째 제대로 된 한 끼도 먹지 못했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노인이 바닥에 엎드려 빌었다. 그의 옆에는 두 살 남짓한 어린 딸을 품에 안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마른 기침을 연신 터뜨리는 아이의 등만 필사적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없다고? 그럼 네 목숨이라도 내놓던가! 황실의 옥룡기가 너희 같은 천한 것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있는 줄 아느냐!”

갑옷을 입은 병사 하나가 발길질로 노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뼈와 가죽만 남은 노인의 몸이 흙바닥을 굴렀다. 끄윽, 하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메마른 바람을 타고 퍼졌다. 아이는 놀라 자지러질 듯 울음을 터뜨렸다.

하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의 뇌리에는 언제나 그랬듯 똑같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 제국군에 끌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리고 그 후로 한 번도 돌아오지 못한 어머니. 이 지긋지긋한 고통의 굴레는 끝이 없는 것일까.

“쯧쯧… 저 하늘의 용들도, 언젠가는 땅으로 떨어지는 법이지.”

그때, 하진의 등 뒤에서 웅 노인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웅 노인은 낡은 나무 조각을 능숙한 손길로 깎고 있었다. 한 평생을 벽오촌에서 나무꾼으로 살아온 노인은 늘 저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의 눈은 깊은 강물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풍파를 견딘 피로와 함께, 어떤 굳건한 의지가 스며 있는 듯했다.

“웅 노인, 저들이 또…” 하진은 이를 악물었다.

“어찌 되겠는가. 힘 없는 백성은 그저 발밑의 흙과 같은 것. 짓밟혀도 소리 한 번 지를 수 없지.” 웅 노인은 무심한 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깎고 있는 나무 조각은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의 형상을 띠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비명 소리가 마을을 찢었다. 어린 딸을 안고 있던 여인이 병사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중이었다.

“내 딸입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여인은 울부짖으며 병사의 다리에 매달렸지만, 병사는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바닥에 내던졌다. 아이는 날아가듯 땅에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품에서 굴러 떨어진 옥빛 작은 조약돌이 흙바닥에 박혔다. 병사는 그것이 거슬린다는 듯 발로 짓밟아 버렸다.

“천한 것들! 어디서 감히 비명이나 지르고 있어! 다 큰 여자아이면 제국에 바칠 수 있을진 몰라도, 이런 갓난아이는 쓸모가 없어! 짐만 될 뿐!”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이 비웃었다. 아이는 흙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울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병사들은 여인을 끌고 가며 다른 마을 사람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영초 열 뿌리와 정기석 한 덩이를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이 여인처럼 모두 끌려갈 것이다!”

그들의 발길이 마을 어귀를 벗어나자마자, 마을은 더욱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도 감히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그저, 메마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진의 심장은 용암처럼 들끓었다. 무언가 뇌리에서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도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득였다.

“웅 노인…” 하진의 목소리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웅 노인은 조각칼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동자가 하진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네 안에… 뜨거운 것이 있구나.”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지만, 확고했다.

하진은 웅 노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절망에 젖어 있지 않았다. 분노와 함께, 희미하지만 확실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새로운 생명과도 같았다.

“예. 타고 있습니다.” 하진은 핏발 선 눈으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향했다. “이대로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진은 품속에 숨겨두었던 낡은 낫을 움켜쥐었다.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지켜보지만 않을 것이다. 이젠, 그가 나설 차례였다. 그의 발걸음이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오두막 그림자 밖으로 향했다. 메마른 흙먼지가 그의 발걸음에 맞춰 흩날렸다.

바람이 불었다. 이제, 폭풍이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