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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7화: 그림자의 포위

바깥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끝없이 몰아치는 모래폭풍은 수백 년 전 문명의 흔적조차 집어삼키려는 듯, 낡은 방공호의 콘크리트 틈새로 끊임없이 흙먼지를 밀어 넣었다. 카엘은 팔뚝으로 간신히 코와 입을 가리며 숨을 쉬었다. 찢어진 천 조각과 닳아빠진 가죽으로 만든 마스크는 이제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한 지 오래였다.

“젠장….”

낮게 읊조린 욕설은 부서진 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에 묻혔다. 겨우 지켜내고 있는 이 임시 거처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며칠 전, 보급품을 찾아 나섰던 로한의 팀이 돌아오지 못한 후, 남은 식량은 사실상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남은 건 카엘과 레나, 그리고 팔이 부러진 채 사경을 헤매는 늙은 샤먼, 테미 뿐이었다.

레나는 벽에 기대어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어린 얼굴에는 피로와 공포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희미하게 타오르는 기름 램프 불빛에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간신히 드러났다. 램프의 심지는 너무 짧아졌고, 기름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쓰고 있었다.

“카엘 오빠…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레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바싹 마른 육포 한 조각과 흙탕물을 겨우 걸러낸 미지근한 물 한 모금뿐이었다.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메마른 사막 같았다.

“아니. 이 근처는 이미 털릴 대로 털렸어.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론 무리다.”

더 깊이. 그 말은 곧 ‘위험의 심장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과 동의어였다. 잿빛 황야를 떠도는 포식자들, 그리고 더욱 지독한 인간의 무리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식량을 찾아 나서는 것은 매번 목숨을 거는 도박이었다.

“테미 할아버지는…?”

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엘은 침낭처럼 둘러싼 낡은 천 조각 아래 웅크린 테미를 돌아보았다. 늙은 샤먼은 옅은 신음 소리를 내며 고통에 잠겨 있었다. 그의 팔은 며칠 전, 낡은 건물 잔해에 깔려 완전히 으스러졌다. 감염은 이미 깊숙이 퍼져 있었고, 그들은 변변한 약조차 없었다.

“버티고 계셔. 하지만… 오래는 힘들 거다.”

카엘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들은 이 방공호에 갇힌 쥐나 다름없었다. 나가자니 위험천만하고, 버티자니 서서히 죽어가는 꼴이었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모래폭풍의 굉음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크륵… 크르륵….**
굵은 뼈를 긁는 듯한, 혹은 돌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불쾌한 소음.

카엘의 몸이 순식간에 경직됐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에 찬 낡은 단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날은 무뎠지만, 수없이 많은 밤을 함께 버텨온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뭐… 뭐지?” 레나의 눈이 공포로 크게 뜨였다. 그녀는 모포를 더욱 끌어안았다.

**쿵! 쿵!**

이번엔 훨씬 크고 명확한 소리였다. 방공호의 낡은 철문이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그 철문을 무언가 거대하고 둔탁한 것이 내리찍는 듯한 충격음이 낡은 콘크리트 벽을 따라 진동하며 전해져 왔다. 천장의 작은 돌멩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젠장… 벌써 온 건가.”

카엘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밤그림자. 이 잿빛 황야를 배회하는 흉측한 포식자들. 어둠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저주받은 존재들. 평소에는 깊은 밤이나, 극한의 모래폭풍 속에서만 나타났던 놈들이 어쩐 일인지 해질녘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콰아앙!**

철문이 안쪽으로 움푹 파이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가다간 철문이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카엘은 즉시 움직였다. 방공호의 안쪽, 그나마 안전한 통로로 향하는 출구를 가로막고 있던 낡은 선반과 부서진 장비들을 발로 차내며 길을 만들었다.

“레나! 테미 할아버지 부축해! 빨리 통로 안으로!”

그의 목소리는 명령조였다. 레나는 얼어붙은 듯 망설이다가, 카엘의 날카로운 시선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테미에게 다가가 팔을 그의 목에 걸었다. 테미는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크륵, 크르륵, 크르르르….**

철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마치 철문을 뚫고 들어오려는 듯, 끈질기게 문을 긁고 있었다. 곧이어 틈새로 삐죽이 튀어나온 것은 잿빛의 날카로운 발톱이었다. 햇빛에 노출되지 않은 지하의 짐승처럼 창백한 색이었지만, 흙먼지에 뒤덮여 더욱 흉측해 보였다.

“서둘러!” 카엘은 벽에 걸려 있던 낡은 횃불을 움켜쥐었다. 횃불은 기름이 부족해 제대로 타오르지 않았지만, 불꽃은 밤그림자를 잠시나마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레나는 테미를 거의 끌다시피 하며 좁은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소리가 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카엘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낡은 철문은 이제 반쯤 찢겨나가기 직전이었다. 문틈 사이로 엿보이는 검은 형체가 분명했다. 크고 길쭉한 머리,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 그리고 짐승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 **밤그림자**였다. 그것은 철문 너머에서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킁킁거리며 그들의 냄새를 쫓고 있었다.

**쿵! 콰자자작!**

결국 철문은 부서졌다.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고, 나무와 금속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대한 형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였다. 놈들은 마치 굶주림에 미친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방공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단검을 고쳐 쥐고, 남은 횃불을 높이 들었다. 희미한 불꽃이 어둠을 잠시 몰아냈지만, 놈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이 빌어먹을 괴물들!”

카엘은 가장 먼저 달려드는 밤그림자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단검은 놈의 잿빛 가죽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오히려 카엘의 팔을 스치며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팔뚝에 길고 뜨거운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두 번째 밤그림자가 덤벼들었다. 카엘은 횃불을 휘둘러 놈의 얼굴을 지졌다. 괴물은 잠시 움찔하며 주춤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 번째 밤그림자가 찢겨나간 철문 너머에서 나타났다. 놈의 뒤를 따르는 더 많은 그림자들도 보였다.

**크르르르르릉!**

방공호 안이 밤그림자들의 포효로 가득 찼다. 카엘은 통로 안쪽으로 밀려났다. 레나가 테미를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고립되었다.

“오빠!” 레나의 비명에 카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통로 입구를 막아설 생각으로 뛰어가던 그의 발 밑에서, 낡은 콘크리트 바닥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카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바닥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균열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구멍.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었다.

놈들은 이미 그들의 퇴로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카엘은 자신이 빠져나온 구멍 아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수십 개의 밤그림자 울음소리를 들으며 몸을 굳혔다.
포위였다.
그들은 이제 사방에서 조여드는 어둠의 덫에 걸린 셈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살아남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는 횃불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희미한 불꽃이 그의 얼굴에 길고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남은 건, 싸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테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카…엘… 저, 저기… 벽… 그림….”

테미는 힘겹게, 그러나 분명히 손가락을 들어 어둠이 짙게 드리운 통로의 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밤그림자들의 그림자가 미처 닿지 않는 희미한 곳에, 어렴풋이 그려진 낡은 그림이 있었다.
오랜 시간의 풍화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붉은색으로 덧칠된 **기이한 문양**.
마치… 고대의 봉인이라도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