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 13화. 사라진 기억, 비틀린 공간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가상현실 속 현대 도시, 그중에서도 가장 평범해 보이는 13층 아파트의 1304호. 고요함은 턱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만큼이나 무거웠다. 강민은 손에 쥔 스마트폰 모양의 가상 인터페이스를 꾹 쥐었다. [남은 탐사 시간: 03:27:11].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려?” 지혜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속삭이듯 들리는 건, 어쩌면 그녀도 이 공간이 주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까 그… ‘삐걱’ 소리 이후로는.”
거실 한가운데 놓인 낡은 탁자 위에는 정체불명의 오래된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게임 내에서 ‘사라진 기억의 조각’이라 불리는 이 아이템을 발견한 이후로, 이 아파트는 기묘한 생명력을 얻은 듯했다.

그때였다.
“…읍!”
지혜의 짧은 비명에 강민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거실 한쪽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이… 마치 수백 번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희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행복하게 웃던 아이의 얼굴은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 만큼 일그러져 있었고, 부부의 눈동자는 검은 구멍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뭐야?” 강민의 목소리에도 당혹감이 역력했다. “버그인가?”
지혜는 천천히 액자에 손을 뻗으려다 흠칫 놀라 손을 거뒀다. “버그라고 하기엔… 너무 섬뜩한데. 사진… 기억. 일기장. 이 모든 게 연결된 것 같지 않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민의 등골로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보일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손가락이 그의 척추를 훑고 지나간 듯한 기분.

“어어… 뭐야 이거?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강민이 몸을 움츠렸다.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가상현실에서 이런 물리적인 반응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었다.

지혜는 벌써 거실 중앙에 우뚝 선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주방 쪽으로 향해 있었다.
“아니야, 강민아. 단순히 추운 게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한 톤 더 낮아져 있었다. “저기 봐.”

강민의 시선이 지혜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주방 싱크대 수도꼭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뭐야? 내가 잠갔잖아?” 강민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조금 전 주방을 탐색하며 모든 수도를 확인하고 잠갔었다.

그때, 갑자기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식기가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민과 지혜는 동시에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뒤로 뺐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냄비 뚜껑이 바닥에 부딪히며 불안한 소리를 냈다.

“이건… 게임 속 환경 효과가 아니잖아.” 지혜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누군가… 우리 말고 다른 존재가 있는 것 같아.”

강민은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말도 안 돼. NPC도 아니고. 다른 플레이어는 여기에 못 들어오잖아. 파티 초대도 안 되어 있는데.”
그의 말대로, 이 ‘잊혀진 아파트’ 탐사 퀘스트는 1인 또는 2인 파티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싱크대에서 멈췄던 물줄기는 다시 거세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콸콸콸! 물이 넘쳐흐르며 주방 바닥을 적셨다. 동시에, 거실의 조명이 갑자기 ‘틱!’ 하는 소리와 함께 깜빡이기 시작했다. 환했다가 어두웠다가, 눈을 자극하는 불규칙한 빛의 파동.

“강민아… 저기…”
지혜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거실 베란다를 가리켰다. 강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베란다 통유리 밖은, 분명 맑은 오후의 가상현실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풍경 위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길고, 비쩍 마른 형상.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기괴한, 마치 그림자가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실루엣이었다. 아파트 외벽에 비친 그림자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외부에서 오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마치 통유리 *안쪽*에서 *밖으로* 드리워지는 듯한 느낌.

그림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한 사람의 형상이었다가, 이내 여러 개의 팔다리가 뻗어 나오는 것처럼 흐물거렸다. 마치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깥세상과 이 아파트를 구분 짓는 경계선에 달라붙어 있는 듯한 모습.

“저게 뭐야…” 강민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게임 속에서 수많은 몬스터와 보스들을 상대해봤지만, 이런 식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공포는 현실적인 형태로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그때였다. 일기장이 탁자 위에서 스스로 펄럭였다. 찢어진 페이지 사이로, 희미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가… 나를 따라와….]
찢어진 페이지는 마지막 문장을 내보이며, 다시 빠르게 펄럭였다. 마치 눈앞에서 어떤 존재가 급하게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얇은 종잇조각 하나가 튀어나왔다.

지혜가 조심스럽게 그 종잇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종잇조각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_나… 여기에… 있어._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동시에 등 뒤에서, 아주 가깝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나를… 찾아?”**

강민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은 이제 심장을 꽉 붙들어 맨 채 놓아주지 않았다. 지혜 역시 얼어붙은 듯 미동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침묵 속에 갇힌 채, 그 목소리의 근원을 더듬어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등 뒤였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