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거대한 암흑 속, ‘아르고스’는 한 점 희미한 불빛처럼 떠 있었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는 생명의 흔적 없는 절망적인 고요함 그 자체였다. 함교의 차가운 금속성 공기는 늘 미세한 기계음으로 가득했지만, 강태준 함장의 귀에는 그 모든 소음이 침묵처럼 느껴졌다. 그는 관자놀이 옆 피부에 박힌 신경 포트를 긁적였다. 피로가 쌓일수록 이식된 뉴럴 인터페이스가 간질거리는 건 고질병이었다.

“함장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인공지능 ‘오라클’의 것이다. 차분하고 기계적인 어조는 때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위안을 주기도 했다.

“잠이 오지 않는군. 오늘도 특별한 것 없는 심해어의 일상이지.”

태준은 모니터의 데이터를 훑어보았다. 아르고스는 성간 물질이 거의 없는 심우주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인류가 이만큼 멀리 진출한 것도 기적이었지만, 정작 발견한 것은 끝없는 공허뿐이었다. 탐사의 17년. 그의 삶의 절반이 이 낡은 함선 위에서 소진되었다. 육체는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로 연명하고, 정신은 고독과 싸웠다.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나?”

“네, 함장님.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선우 기술장의 최적화 덕분에 동력 효율은 0.003% 향상되었습니다.”

“그 양반은 아마 죽을 때까지 엔진룸에 박혀 있을 거야.”

태준은 피식 웃었다. 박선우 기술장은 이 함선 그 자체였다. 온몸에 중장비 부품을 이식한 듯한 육중한 체구와 기름때 낀 작업복,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정교한 손놀림을 가진 사내. 그가 없었다면 아르고스는 진작에 고철 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함교의 대형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갑작스러운 노이즈가 스쳤다. 오라클의 음성에는 미세한 동요가 섞였다.

“경고. 미확인 에너지 패턴 감지. 감지 범위… 궤도 이탈.”

태준의 시선이 날카롭게 모니터로 향했다. 미확인 에너지? 이 불모의 공간에서?

“서유진 항해사 호출해.”

“네, 함장님.”

몇 초 후, 함교 문이 스르륵 열리며 서유진 항해사가 들어섰다. 그녀의 눈은 이미 상황을 파악한 듯 형형하게 빛났다. 날카로운 턱선과 총명한 눈빛은 그녀의 뛰어난 분석력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녀의 왼쪽 눈에는 미세한 광학 렌즈가 박혀 있어, 데이터가 그녀의 시야에 직접 투사되는 것이 분명했다.

“함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라클의 경고는 정확합니다. 저희 현재 위치에서 약 2광초 거리에 이전에는 감지되지 않던 특이 에너지 신호가 포착되었습니다. 기존 탐사 데이터와 일치하는 천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이 에너지 신호라… 구체적으로?”

“기존에 알려진 어떤 유형과도 다릅니다. 방사능도, 전자기파도, 중력파도 아닌… 특정 주기를 가진 간헐적인 파동인데, 마치 이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는 듯한 느낌입니다. 센서가 혼란스러워합니다.”

서유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뭔가요, 유진 씨?”

“모릅니다, 함장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패턴입니다.”

그때, 함교 문이 다시 열리며 박선우 기술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번들거렸고, 굵은 강철 팔이 문틀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젠장, 오라클! 또 뭔 일이야?! 엔진룸에서 엿 같은 에너지 역류가 감지돼서 확인하러 왔더니 여기도 난리통이군!”

“선우 씨, 진정해요.” 이지아 의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그녀는 함교의 한쪽 구석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미세한 바이오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 승무원들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함장님, 승무원들의 스트레스 수치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태준은 모두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불안, 호기심, 경계심. 각자의 감정이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유진 씨, 스캔해봐. 정확한 위치와 형태로.”

“네, 함장님. 오라클, 광학 스캔 모드 전환. 원거리 분석 시작.”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푸른 빛으로 번쩍이며, 알 수 없는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얼룩에 불과했지만, 점점 선명해지면서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건… 뭐야?” 박선우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은, 물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가진 거대한 구조물.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듯, 주변의 별빛조차 흡수해 버리는 완전한 어둠의 결정체였다. 마치 우주에서 한 조각을 도려낸 듯한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크기는 아르고스보다 몇 배는 더 거대했다.

“인공물입니다.” 서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그럴 리가… 이렇게 완벽한 형태로 자연 발생할 수는 없습니다.”

“센서에는 뭐라고 뜨지?” 태준이 나직이 물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구성 물질도, 동력원도, 내부 구조도… 오직 완벽한 침묵뿐입니다. 하지만 중력파 분석 결과, 믿을 수 없는 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블랙홀과 같은… 하지만 안정적입니다.”

“블랙홀이 저런 모양이라고?” 박선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젠장, 저건 그냥 벽이잖아!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벽!”

이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존재가 지금까지 감지되지 않았다는 게… 더 불안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기에 있었던 걸까요?”

태준은 디스플레이 속의 검은 구조물을 응시했다. 인류가 상상할 수 없었던 존재. 인류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

“함장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유진이 망설이듯 물었다.

태준은 잠시 침묵했다. 이 모든 임무의 목적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이었다. 17년간의 허망한 항해 끝에, 마침내 그 가능성이 눈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존재해선 안 될 재앙일 수도.

“오라클, 아르고스 속도 최저로 낮춰. 최대 출력으로 탐사 드론 발진 준비해.”

승무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함장님! 위험합니다! 어떤 신호도 없는 미지와의 접촉은…” 이지아가 급히 반대했다.

“인류는 언제나 미지에 도전해왔어, 이지아.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바로 그거지.” 태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그의 사이버네틱 눈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가장 가까이 접근해서, 직접 확인한다.”

아르고스는 마치 거대한 고래처럼 느릿하게 몸을 틀었다. 검은 구조물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심연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 문이 약속된 낙원일지, 아니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지옥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직, 다가가는 자만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 작은 빛이 거대한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듯 모든 것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