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잿빛 새벽의 그림자

고철 덩어리가 빗물에 녹아내리는 듯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장이 뻥 뚫려 비가 들이치는 낡은 정비소 안, 강하준은 웅크린 채 거대한 기계의 회로를 만지고 있었다. ‘여명’. 그가 붙인 이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긁히고 녹슬고 온갖 부품이 덕지덕지 붙은 낡은 메카였다. 제국이 버린 스크랩 더미에서 건져 올려, 손수 재조립하고 개조한 하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준아, 또 그거 붙들고 있냐?”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하준은 고개만 살짝 돌렸다. 이설이었다. 검게 그을린 작업복을 입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나는 다부진 몸매와 날카로운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이설은 한 손에 깡통 음료를 든 채 정비소 입구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여명의 여기저기를 훑다가, 결국 하준의 등 뒤에 놓인 공구 상자에서 멈췄다.

“이게 있어야 우리가 살아남으니까. 넌 내일 식량 배급 줄이나 잘 지키고 와.” 하준은 시선은 여명의 내부 모니터에 고정한 채 대꾸했다.

이설이 혀를 찼다. “살아남아? 제국의 사냥개들이 들이닥치면 이 고철 덩어리로 뭘 할 수 있는데? 지난번에도 겨우 도망쳤잖아. 그 일 때문에 ‘황무지 구역’ 전체가 사흘 동안 물 배급도 못 받았어. 다들 죽어갔다고!”

하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가 일으킨 작은 소요 때문에 수많은 이웃이 고통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코르부스 제국은 끝없이 확장하며 모든 행성을 집어삼켰고, 그들의 기술력과 군사력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층민들은 그들의 부와 번영을 위한 연료일 뿐이었다. 감히 제국에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짓밟혔고, 그 대가는 주변 모두에게 돌아왔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뭘 할 수 있지? 그냥 당하고 있으라고?” 하준은 격앙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제야 여명의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이설을 돌아봤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그들이 우리를 가축처럼 부리고, 조금이라도 불복하면 때려죽이는데, 이대로 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이설은 잠시 말없이 하준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다가와 깡통 음료를 하준의 손에 쥐여줬다. 차가운 캔이 손바닥에 닿자 하준은 살짝 움찔했다.

“나도 알아. 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무모하게 덤비는 건 우리를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릴 뿐이야. ‘새벽별’ 멤버들도 그걸 걱정하고 있어. 네가 너무 앞서 나간다고.”

‘새벽별’. 제국의 잔혹한 통치 아래서 숨죽여 저항하는 하층민들의 작은 모임. 그들은 과거 제국에서 이탈한 기술자들이 남긴 설계도를 바탕으로 낡은 메카를 개조하고, 몰래 식량을 배분하며 언젠가 찾아올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준은 그 선봉장이자 가장 무모한 파일럿이었다.

하준은 음료 캔을 따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새벽이 언제 올 줄 알고?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뼛속까지 빨아먹을 거야. 여명이 없었다면 지난번 그놈들한테 다 죽었을 거라고.”

바로 그때, 정비소 너머에서 희미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망치가 지면을 내리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이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설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묻어났다.

하준은 재빨리 여명의 조종석에 올라탔다. 낡은 패널의 버튼들이 깜빡거리며 부팅 신호를 보냈다.
“제국의 순찰 메카야. 어째서 여기까지…….”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쿵! 쿵! 이제는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정비소 밖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제국의 표준형 전투 메카, ‘절멸자’의 실루엣이었다. 20미터에 달하는 강철 거인은 시커먼 외장으로 뒤덮여 있었고, 양팔에는 고출력 에너지 캐논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경량형 정찰 메카 두 대가 맴돌고 있었다.

이설은 급하게 하준에게 달려와 조종석 바로 아래에 매달렸다. “하준아, 설마! 이설아, 제발 이번만은…….”

하준은 굳은 얼굴로 응답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저들이 여기 온 건, 단순한 순찰이 아니야. 분명 뭔가 노리고 있어.” 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밖으로 나가.”

“하준아!”

“나가란 말이야!” 하준의 외침에 이설은 이를 악물고 정비소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여명의 동력 코어가 굉음과 함께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준은 능숙하게 조이스틱을 쥐고 발밑의 페달을 밟았다. 낡은 금속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듯 끼익거렸지만, 하준의 의지에 따라 여명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비소의 뚫린 천장 틈으로 비치는 빛이 여명의 여기저기 덧대진 강철 부품 위로 번쩍였다.

밖에서는 ‘절멸자’가 거친 전자음성으로 경고를 내뱉고 있었다.
“불법 기체 발견. 즉시 작동을 중단하고 파일럿은 하차하라. 불응 시, 제국법에 의거하여 파괴될 것이다.”

하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파괴될 건 너희들 고철덩어리겠지.”

여명이 정비소의 낡은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섰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제국의 ‘절멸자’와 경량 메카들이 비웃듯이 서 있었다. ‘절멸자’의 조종석에서 한 제국군 장교가 피식 웃었다. 홀로그램 통신으로 그의 얼굴이 여명의 모니터에 희미하게 잡혔다.

“꼴에 감히 덤비는 건가? 이 하찮은 스크랩이? 저항은 무의미하다, 하층민. 네가 벌인 소요는 이미 ‘황무지 구역’ 전체를 폐쇄시켰고, 모든 자원 흐름을 끊어놨다. 이제 저놈의 고철을 넘겨라. 그럼 너의 삶은, 아주 조금은 더 비참하게 지속될 수 있을 테니.”

하준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조롱은 매일 듣던 일이었다. 그는 묵묵히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여명의 팔에 달린 커스텀 개틀링 건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젠장, 네가 그렇게 미쳐 날뛰는 바람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이제 이 낡은 쓰레기들을 회수해서 본부에 보고해야지.” ‘절멸자’가 왼팔의 에너지 캐논을 하준에게 겨눴다. 캐논 끝에서 푸른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량 메카 두 대가 동시에 하준의 양옆으로 빠르게 기동하며 협공 태세를 갖췄다. 그들의 팔에 달린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섬뜩하게 빛났다.

하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어디 한번 회수해봐라. 피바다가 될 테니.”

하준은 망설임 없이 개틀링 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굵은 탄환들이 쏟아져 나갔다. 경량 메카 중 한 대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탄환 세례를 정면으로 받았다. 강철 외장이 찌그러지고 스파크가 튀면서, 메카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어리석은 놈!” ‘절멸자’가 푸른 에너지를 발사했다.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하준을 향해 날아왔다.

하준은 재빨리 여명을 옆으로 기울여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에너지 파동은 여명 뒤편의 낡은 건물 외벽을 갈라놓았다. 거대한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먼지와 잔해를 흩뿌렸다.

남은 경량 메카 한 대가 접근해왔다. 날카로운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여명의 어깨를 겨냥했다. 하준은 침착하게 여명의 왼팔을 들어 방패처럼 막았다. 콰앙! 금속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여명의 낡은 방패가 깊게 패였지만,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준은 반격했다. 방패로 공격을 막아낸 동시에 여명의 오른팔에 달린 거대한 너클로 경량 메카의 몸통을 후려갈겼다. 꽝! 육중한 금속 충격음이 빗속에 울려 퍼졌다. 경량 메카는 갈비뼈라도 부러진 듯 옆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고작 이런 잔챙이들이 상대라고?” 하준은 비웃었다. 그의 여명은 겉모습은 낡았지만, 그 어떤 제국 메카보다도 하준의 의지를 잘 따르는 유기체 같은 존재였다. 스크랩 더미에서 발견한 고성능 동력 코어를 몰래 이식하고, 제국 메카의 약점을 파악해 특화된 무기들로 개조한 결과였다.

‘절멸자’가 다시 한번 에너지 캐논을 충전하는 것을 본 하준은 전략을 바꿨다. 정면 돌파는 무리였다. 그는 여명을 고철 더미가 쌓인 건물 사이로 몰고 들어갔다.

“겁먹고 도망치는군! 예상했던 바다!” ‘절멸자’의 파일럿이 조롱했다. “두 대의 경량 메카는 추격하여 격파해라! 나는 이곳에 남아 혹시 모를 지원군을 차단한다!”

경량 메카 두 대가 하준의 뒤를 쫓아 건물 틈새로 뛰어들었다. 하준은 좁은 골목길을 맹렬히 질주했다. 여명의 발소리가 지면을 울렸다.

“하준아! 함정이야!” 이설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려왔다. 그녀는 몰래 숨어 근처 통신망을 해킹해 하준과 연결된 모양이었다.

“알고 있어!” 하준은 거친 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가 향한 곳은 ‘황무지 구역’의 가장 깊숙한 곳, 거대한 폐기물 처리장이었다. 그곳은 메카들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위험한 지형이었다.

경량 메카 중 한 대가 빠르게 접근하며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하준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블레이드가 여명의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다.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외장이 녹아내렸다.

“젠장!” 하준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였다. 하준은 미리 준비해둔 함정을 발동시켰다. 폐기물 처리장의 거대한 고철 더미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고철들이 경량 메카의 퇴로를 막았고,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여기야, 이설!” 하준은 외쳤다.

“알았어!” 이설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작은 드론들이 나타나 경량 메카들을 향해 EMP 폭탄을 투하했다. 펑! 펑! 두 대의 경량 메카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지금이다!” 하준은 여명을 돌려 너클을 휘둘렀다. EMP로 무력화된 경량 메카의 머리 부분을 정확히 강타했다. 콰앙! 메카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내부 회로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다른 경량 메카에게는 개틀링 건을 난사했다. 낡은 고철 덩어리들이 터져 나가며 메카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봐, 너무 쉽게 끝내지 마. 난 너한테 할 말이 많다고.”

그때였다. 폐기물 처리장 입구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절멸자’였다. 하준이 경량 메카들을 처리하는 동안, ‘절멸자’는 이미 이곳으로 이동해온 것이었다.

“하찮은 속임수에 놀아났군.” ‘절멸자’의 파일럿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저 쓰레기 더미들과 함께 너희를 영원히 매장해주마.”

‘절멸자’의 양팔에 달린 에너지 캐논에서 동시에 푸른 섬광이 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준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 발의 에너지 파동은 폐기물 처리장 전체를 휩쓸 기세였다.

“이설! 비상 탈출!” 하준은 급하게 외쳤다.

“너는!?” 이설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들려왔다.

하준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메카는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순간 그는 그저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는 여명의 모든 동력을 방패로 집중시키며,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쿵! 쿵! 두 발의 에너지 파동이 여명의 방패와 몸통에 동시에 명중했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여명의 조종석 내부가 붉은 경고등으로 번뜩였다. 하준은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메카의 외장이 녹아내리고, 내부 회로들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하층민?” ‘절멸자’의 조종사는 비웃었다. “네가 가진 건 그저 낡은 고철일 뿐이다. 이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절멸자’의 등 뒤에서 갑자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불꽃과 파편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절멸자’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준은 고통 속에서도 겨우 고개를 들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낡은 수송선 한 척이 불꽃을 뿜으며 이륙하고 있었다. 수송선 꼬리에는 ‘새벽별’의 상징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준아! 넌 할 수 있어! 다음 전투에서 보자!” 이설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힘겹게 들려왔다.

하준은 피 묻은 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절멸자’는 등 뒤의 폭발로 인해 완전히 시야를 빼앗긴 채 분노에 찬 전자음을 내뱉고 있었다.

이설의 기습 덕분에 그는 잠시의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여명의 동력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메카는 여전히 건재했다.

하준은 흐릿한 시야로 여명의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젠장, 도망치지 않아. 아직이야.”

하준은 고통을 참고, 마지막 남은 동력을 짜내 여명을 일으켜 세웠다.

‘절멸자’의 파일럿은 분노로 격분하여 다시 캐논을 겨눴다. “감히 건방진 하층민이! 이대로 죽여주마!”

하준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고장 난 개틀링 건을 질질 끌며, 불타는 여명을 이끌고 ‘절멸자’를 향해 전진했다. 그의 눈앞에는, 오직 지긋지긋한 제국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버릴 ‘새벽’만이 존재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단지, 거대한 반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