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한낮의 밀실

장맛비가 한창이던 음울한 오후였다. 유리창을 쉼 없이 두드리는 빗소리는 고도현 저택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낡은 돌담을 따라 솟아오른 넝쿨식물들은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보이는 저택은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미르, 이거 완전 ‘사건 현장’ 분위기 아니냐?”

내 옆에 둥실 떠 있던 미르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미르는 밤하늘의 작은 별 조각을 닮은 마법 생명체로,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파트너다. 보통은 인형 탈을 쓰고 다니지만, 이런 날은 그저 투명하게 주변에 녹아들어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곤 했다.

“뻔한 소리. 초고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사건 현장이고, 골목길에서 칼 맞아도 사건 현장이야. 중요한 건 ‘어떤’ 사건 현장이냐는 거지.”

“흐음, 그럼 지금은 딱… ‘고독한 천재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밀실 살인 사건 현장’ 정도? 너무 길다, 녀석.”

나는 우산을 반쯤 접어 들고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 경위님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은 건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밀실 살인’이라는 세 글자가 내 호기심을 한순간에 자극했고, 미르 역시 내 들뜬 마음에 공감하는지 옆에서 꼬리를 살랑거렸다.

고도현 저택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대 자산가의 저택이었다. 고도현 씨는 특이한 취미를 가진 은둔형 외톨이로 유명했다. 수백 년 된 골동품 시계와 기계 퍼즐을 수집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저택, 특히 개인 서재는 최신 보안 시스템과 미로 같은 구조로 악명이 높았다.

서재 문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경찰관과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 경위님이 나를 보자마자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짙은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한별 양, 와줘서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면 이 사건은 정말 미궁에 빠질 걸세.”

“말씀만으로도 힘이 나네요, 경위님.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요?”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어냈다. 최 경위님은 깊은 한숨을 쉬며 서재 문을 가리켰다.

“피해자는 고도현 씨일세. 집사 김정호 씨가 발견했고. 가장 큰 문제는… 밀실이야.”

“밀실이요?”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그의 말을 굳이 되물었다.

“그래. 서재는 안에서 잠겨 있었어. 굳건한 참나무 문에 앤티크 황동 빗장이 채워져 있었지. 밖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일세. 창문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는데, 역시 안에서 철창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게다가 오래 전에 시멘트로 밀봉까지 해두었더군. 통풍구조차 쥐 한 마리 들어갈 틈이 없었어. 유일한 출입구는 이 문 하나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밀실 살인 사건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자살’로 결론 내리려고 하겠지만, 최 경위님의 심각한 표정은 그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인은요?”

“칼에 찔렸어. 그의 심장에… 서재에 있던 앤티크 편지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지. 자살로 보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방식이고, 피해자의 손에는 그 어떤 칼자국이나 저항의 흔적도 없었네. 즉, 타살이 분명해.”

“타살인데… 밀실. 흥미롭네요.”

미르는 내 옆에서 쯧쯧 혀를 찼다. “네놈에게만 흥미롭겠지. 다른 사람들은 지금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천재 탐정님.”

나는 미르의 말에 보이지 않는 발길질을 날려주고는 최 경위님을 따라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 안은 마치 중세 시대의 도서관처럼 고풍스럽고 육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에는 빼곡하게 책과 고서들이 꽂혀 있었고, 중앙에는 육중한 참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묵직한 가죽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은… 피비린내였다.

책상 위, 수집품인 복잡한 기계 퍼즐들 사이로 고도현 씨가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낡은 편지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흥건한 핏자국이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책상 주변으로 다가가 피해자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손은 책상 위로 축 늘어져 있었고,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던 듯 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

“피해자의 손에 칼이나 다른 흉기가 없었던 건 확인했고요?”

“물론이지. 모든 것을 다 확인했어. 그리고 가장 미스터리한 건… 이 열쇠일세.”

최 경위님이 가리킨 곳은 책상 한쪽이었다. 오래된 서류 뭉치 위에, 서재 문을 잠그는 데 사용되는 앤티크 황동 열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열쇠가 저기에요?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요?”

“그래. 피해자가 자살을 가장하려 했다면 열쇠를 쥐고 있었거나, 아니면 빗장을 잠근 후 던져 버렸을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등에 칼이 박힌 채 스스로 빗장을 잠그고 열쇠를 저렇게 둘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하지. 자네도 알겠지만, 이 빗장은 손잡이를 돌려야 잠기는 형태라 쉽게 잠글 수도 없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와 문, 그리고 주변을 번갈아 살폈다. 미르는 내 어깨 위에 살포시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법의 잔류물이나 기운을 탐지하는 중일 터였다.

“흠… 빗장 손잡이에 지문 채취는요?”

“있었네. 고도현 씨의 지문과… 놀랍게도 집사 김정호 씨의 지문도 나왔지. 하지만 김정호 씨는 문을 열기 위해 여러 차례 손잡이를 만졌다고 진술했고, 그의 지문이 묻는 건 당연해. 문제는 피해자의 지문인데… 아주 미세하게 번져 있었어.”

번져 있는 지문이라. 나는 빗장 손잡이를 다시 한번 주의 깊게 바라봤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번짐.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서재 전체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았다. 책장, 벽난로, 낡은 세계 지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밀실을 만들기 위한 어떤 도구도, 도망치기 위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 시선이 책상 한쪽 구석에 멈췄다. 거대한 앤티크 지구본이 놓여 있었다. 아름다운 황동 장식이 돋보이는 지구본은 보통이라면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 받침대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아주 미세한 기울기였지만, 내 눈에는 명확하게 포착되었다.

“최 경위님, 이 지구본… 원래 이렇게 기울어져 있었나요?”

최 경위님과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내 시선을 따라 지구본을 바라봤다.

“글쎄요. 평소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만… 고정대가 느슨해졌을까요?”

“아니요, 이건 단순히 느슨해진 게 아닙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구본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지구본이 놓인 책상 표면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주 희미한, 거의 보이지 않는 얇은 실금 같은 자국이 지구본 바닥과 책상 표면 사이에 보였다. 마치 무언가가 끌려갔다가 사라진 듯한 흔적이었다.

“미르.”

나는 나직하게 미르를 불렀다. 미르는 이미 무언가를 감지한 듯, 그의 작은 몸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봐, 한별. 여기 이상한 마력 잔류물이 있어. 아주 희미하지만… 냉정하고 계산적인 에너지의 흔적이야. 문틈에서부터 이 지구본까지 이어지고 있어.”

미르의 말이 내 추리를 확신으로 바꾸었다.

“알겠습니다, 경위님. 범인의 트릭을 깨달았습니다.”

내 말에 최 경위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학수사대 요원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 잠깐만요, 한별 양. 벌써요?”

“네. 범인은 밀실을 완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밀실은… ‘사후 밀실’입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범인은 고도현 씨를 이 방에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방을 나갔죠. 문은 굳게 닫혔지만, 빗장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고도현 씨는 죽음의 문턱에서, 혹시라도 범인이 다시 들어올까봐, 혹은 방 안에 있는 소중한 수집품을 보호하려 했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다해 빗장 손잡이를 잡고 잠그려고 했어요. 빗장 손잡이에 희미하게 번져 있던 그의 지문은 바로 그때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그는 빗장을 완전히 잠그지 못하고…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모두가 숨죽인 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범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깥에서 문이 완전히 닫히고 빗장이 잠기지 않은 것을 확인했겠죠. 그리고 이 지구본을 이용한 겁니다.”

나는 지구본의 미세한 기울기, 그리고 책상 위 희미한 흔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범인은 미리 준비해둔 얇고 튼튼한 끈을 사용했습니다. 그 끈을 문 아래 틈새로 밀어 넣거나, 아니면 빗장 손잡이와 지구본 사이에 교묘하게 연결했겠죠. 그리고 문 바깥에서 그 끈을 조종했습니다. 지구본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책상 위를 움직여 빗장 손잡이를 밀어 올리도록 말이죠.”

내 설명에 최 경위님의 눈이 점점 커졌다.

“빗장 손잡이에 남아있던 고도현 씨의 ‘번진 지문’은 그가 죽어가면서 빗장을 잠그려고 했던 흔적이고, 범인이 끈으로 지구본을 움직여 빗장을 ‘완전히 잠그면서’ 그의 지문 위에 미세한 마찰을 일으켜 더욱 번지게 만든 겁니다. 그리고 열쇠는… 애초에 피해자가 잠그지 않았으니, 범인이 방을 나간 후, 이미 책상 위에 놓여있던 것을 그대로 두거나, 아니면 마치 피해자가 직접 놓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조용히 놓아둔 것이겠죠.”

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냉정하고 계산적인 마력의 잔류물은, 범인이 바깥에서 지구본을 움직여 빗장을 잠갔을 때 생긴 거야. 정말 지독한 놈이군.”

나는 다시 서재 문을 바라봤다. 굳게 닫힌 문은 이제 더 이상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다. 인간의 탐욕과 치밀함이 빚어낸 가짜 밀실이었다.

“범인은… 이 저택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도현 씨가 사망하는 순간까지, 빗장이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던 인물일 겁니다. 아마도… 고도현 씨를 찾아왔던 방문객이거나, 아니면…”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장에 있던 집사 김정호 씨에게로 향했다. 그는 늘 그렇듯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밀실은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진실을 끌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혀낼 용기는… 마법소녀 루미나, 바로 나 한별에게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지만 말이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다음 퍼즐 조각을 향한 강렬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