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속삭임
어둠이 지배하는 우주의 심연, 탐사선 아라호의 분석실은 오직 기기들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희미한 작동음으로만 가득했다. 서유진 박사는 투명한 격리막 너머에 놓인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물’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생경하고, ‘물체’라 하기에는 알 수 없는 의지가 깃든 듯한 존재감. 발견 이후 일주일, 아라호의 모든 첨단 기술은 그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여전히 반응이 없습니까, 박사님?”
과학장교 이한솔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며칠 밤샘 연구로 인한 핏발이 선명했다.
“네. 비접촉 스캔은 물론, 미세 진동, 전자기파, 심지어 양자 얽힘 신호까지. 그 어떤 자극에도 꿈쩍하지 않아요. 흡수하는 것도, 방출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이죠.”
서유진은 얇은 장갑 낀 손으로 격리막을 짚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유물은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마치 검은 유리를 깎아낸 듯 매끄러운 곡선은 완벽에 가까웠고, 각진 부분은 없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한 짙은 색감은 주변 조명을 왜곡시켰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무수한 별들이 깜빡이는 것 같기도 했다. 만져보면 늘 일정한 온기, 혹은 냉기가 느껴졌다. 그것마저도 예측 불가능했다.
“재미있군요. 우주의 모든 법칙을 비웃는 존재라니.” 한솔은 냉소를 띠면서도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함장님은 초조해하십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본부에선 이 유물을 폐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유진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실렸다. “이건 인류가 최초로 접한 외계 문명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버려질 물건이 아니에요.”
그녀는 유물에 더욱 다가섰다. 격리막 사이로 흐르는 공기마저 묘하게 변색되는 듯한 착각. 그 순간, 분석실의 조명이 팟, 하고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아주 짧은 순간의 깜빡임이었지만, 두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설마… 유물 때문인가요?” 한솔이 주위를 살폈다.
“전력 계통과는 무관합니다. 비상 전력으로 바로 전환되었어요.” 서유진은 고개를 저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최근 이런 사소한 오류가 너무 잦아요. 단순한 노후화라고 하기엔…”
그녀의 말대로였다. 며칠 전부터 아라호 내에서는 크고 작은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빈 식당에서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는 보고, 갑자기 특정 구역의 중력 장치가 불안정해지거나, 통신망에 알 수 없는 잡음이 섞이는 일들. 기관장 김민준은 시스템 로그를 아무리 뒤져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유물을 함선에 들인 시점과 묘하게 겹쳤다.
***
그날 밤, 서유진은 분석실에서 혼자 유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솔은 지쳐 쓰러져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갔지만,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 유물은 단순히 정지된 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유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격리막을 통과시켜, 직접 만져볼 참이었다. 함장 강태준의 엄명으로 금지된 행위였지만,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만약 이 유물이 의지를 가진 존재라면, 접촉이야말로 유일한 소통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손끝이 차가운 격리막에 닿았다. 막이 사라지고, 유물의 매끄러운 표면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어떤 생명체의 피부처럼 느껴지는 묘한 감촉이었다. 그 순간, 서유진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진동이 울렸다. 마치 수만 개의 유리 조각이 한꺼번에 부서지는 듯한 소음.
그녀는 비틀거렸지만, 손을 떼지 않았다. 이명 속에서, 그녀는 희미한 속삭임을 들었다. 특정 언어도, 음성도 아니었다. 어떤 감정, 어떤 의미의 파편들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 *오랜… 잠… 끝에…*
— *찾았다… 너희…*
— *우리… 하나… 될…*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파동들이었다. 하지만 그 파동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 유물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검은 표면 아래로 흐릿한 빛의 줄기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유물 자체가 심장처럼 뛰는 것 같았다.
“젠장, 뭐야…!”
그때였다. 통신 시스템에서 비명과 함께 지직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함장 강태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전 대원, 비상! 지금 즉시 각자 위치를 사수하라! 보안팀, 즉시 함교로! 박지혁 보안팀장, 무슨 상황인지 보고하라!”
서유진은 유물에서 손을 떼고 통신 장치로 달려갔다. 화면에 박지혁 보안팀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등 뒤로는 난장판이 된 함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함장님, 큰일 났습니다! 김상병이… 김상병이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였습니다! 자기가 우주가 전부 보이는 것 같다고, 우리 모두가 곧 하나가 될 거라고 중얼거리더니… 통신망을 해킹해서 어디론가 좌표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막 저를 공격하고…!”
화면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박지혁 팀장의 얼굴이 사라졌다. 통신은 끊겼고, 함선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아라호의 모든 내부 조명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바뀌며 섬뜩하게 깜빡였다.
서유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유물을 만졌던 손끝이 욱신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 속삭임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 *우주… 하나의… 의지…*
아라호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항로를 틀고 있었다. 이 침묵의 바다 한가운데서, 그들은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아니, 이미 그들은 침식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