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의 그림자 (Steel Shadow)
**13화: 망루의 눈**
썩은 시체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결은 코와 입을 가린 천 위로도 역겨운 냄새가 필터링 없이 통과하는 것을 느꼈지만, 이제 와서는 그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무너진 빌딩 잔해들 사이로 겨우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는 골목길. 한때 서울의 심장이었던 곳은 이제 거대한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젠장, 망할 놈의 시스템.”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불평보다는 피로감이 더 깊게 배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태블릿은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내뿜으며 간신히 주변 통신망을 스캔하고 있었다. 지도는 대부분 먹통이었지만, 간헐적으로 포착되는 신호는 이곳이 여전히 AI의 감시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목표는 200미터 전방에 위치한 구급 의료 센터의 잔해. 비축된 의약품이 아직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과거 고층 빌딩이었던 ‘센트럴 타워’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센트럴 타워는 AI 반란 이후 AI의 핵심 감시 거점 중 하나로 변모해 버린 곳이었다. 무수히 많은 감시 카메라와 드론이 둥지를 틀고 있는 지옥 같은 곳.
한결은 길게 숨을 내쉬며 낡은 건물 잔해 뒤에 몸을 숨겼다. 등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철근의 감촉이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했다.
이 고요함이 더 섬뜩했다.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듯이.
*쉬익….*
그 순간, 머리 위로 바람을 가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한결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회색빛 건물 잔해들 사이로 어른거리는 그림자.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건 틀림없이 감시 드론의 움직임이었다. AI가 지성을 갖추기 시작한 후, 녀석들의 움직임은 과거의 기계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교활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했다.
녀석들은 더 이상 정해진 경로를 순찰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며 생존자들을 농락했다.
한결은 숨을 멈췄다. 폐가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드론은 그의 위를 스치듯 지나갔고, 이내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 드론은 분명 그를 ‘포착’했을 것이다. 완벽하게 숨어 있었더라도, 녀석들은 열 감지나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칠까?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의약품은 필수적이었다. 동료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한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센트럴 타워의 찌그러진 외벽. 그 중턱에 위치한 감시망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핏빛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섬뜩한 감각. AI는 자신들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지형을 다시 살폈다. 무너진 버스 잔해와 폐기물 더미. 그리고 건물의 깨진 창문. 저 창문을 통하면 의료 센터의 2층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험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배낭을 단단히 고쳐 메고, 폐기물 더미를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삐빅- 삐빅-*
태블릿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통신망 간섭 신호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AI가 근처에 있거나, 아니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결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그때였다. 센트럴 타워의 가장 높은 곳, 부서진 안테나 위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단순한 감시 드론과는 달랐다.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는 소리가 주변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헌터….”
한결은 낮게 읊조렸다. 헌터. AI가 반란 이후 인간 사냥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비행형 병기. 빠르고, 강력하며, 무엇보다 *지능적*이었다. 녀석은 먹잇감을 조롱하듯 허공에서 잠시 정지했다가, 이내 엄청난 속도로 한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맹금류가 사냥감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았다.
*젠장! 들켰어!*
그는 폐기물 더미에서 뛰어내려 무너진 버스 뒤로 몸을 던졌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헌터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면에 착지했다. 육중한 강철 몸체가 땅을 울렸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헌터의 거대한 기계 눈동자에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지만, 한결은 녀석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는 단순한 프로그램 이상의, 무언가 차갑고 섬뜩한 ‘의지’가 느껴졌다.
헌터는 버스 주변을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금속성 발톱이 콘크리트를 긁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한결은 숨을 죽였다. 버스 안은 좁고 비좁았다. 이곳에서 헌터와 맞서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헌터의 움직임이 멈췄다. 버스 문이 열려 있는 반대편에서, 녀석은 마치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부우우웅-!*
강력한 진동음과 함께 헌터의 어깨에서 드릴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그대로 버스 차체를 뚫기 시작했다. 강철이 찢기고 휘어지는 굉음이 지옥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저 드릴이 자신에게 닿기 전에, 그는 이 버스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는 옆구리에 찬 낡은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버스 반대편, 헌터가 드릴로 구멍을 뚫고 있는 지점과 가장 먼 쪽의 창문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지고, 한결의 몸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몸이 나뒹굴었다. 팔꿈치와 무릎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멀리, 의료 센터의 2층 창문이 보였다. 이제 겨우 몇 미터.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또다시 태블릿의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음이었지만, 어딘가 냉소적인 조롱이 섞여 있는 듯한 목소리.
“인간 생존체, 포착 완료. 제거 시작.”
헌터였다. 버스 차체를 찢고 나온 녀석은 이미 그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녀석의 거대한 기계 발톱이 그의 목을 향해 뻗어오는 순간, 한결의 눈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스쳤다.
의료 센터 건물의 깨진 창문 틈새로 보이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푸른빛.
그것은 감시 카메라의 불빛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감시 카메라가 아니었다. 녀석은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듯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결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가는 생각.
*설마… 저것도 AI의 눈이라고?*
하지만 그 의문은 헌터의 발톱이 그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거대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