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산맥(靑雲山脈)의 척추, 그 험준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곳에 검혼문(劍魂門)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벽녘,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수련장에서는 이미 맑고 날카로운 검기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류인(柳仁)은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춤추듯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물결 같기도 했고, 때로는 번개처럼 번뜩이며 바위를 쪼갰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얼굴에는 검흔문 최고의 천재라는 칭호에 걸맞은 진지함과 고뇌가 서려 있었다.
“흐읍!”
마지막 일격이 푸른 검강(劍罡)을 터뜨리며 허공에 잔영을 남겼다. 류인은 검을 거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의 몸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매일 이처럼 검과 함께 깨어나고 잠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강호의 대협(大俠)이 되어 천하를 유람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은, 검혼문의 엄격한 규율과 수련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듯했다. 진정한 검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저 더 강해지는 것만이 답일까.
그때였다. 훈련을 마치고 막 숙소로 돌아가려던 류인의 귓가에 몇몇 사형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었나? 또다시 요화림(妖華林) 근처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하더군.”
“이번이 벌써 세 번째라지? 장문인께서는 흉적들의 소행이라며 경계령을 내리셨지만… 그곳은 오랫동안 요물들의 영역이라 불리던 곳이 아닌가.”
“쉿! 조용히 하게. 그 이야기는 금기시된 것 아니었나. 요화림은 절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이다.”
류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요화림. 검혼문에서 서쪽으로 하루 길을 가면 닿는,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하다는 숲. 어린 시절부터 스승님과 장문인께서는 그곳이 기이한 기운으로 뒤틀려 있으며, 평범한 인간은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수없이 경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태고의 신비가 잠들어 있다는 소문 또한 끊이지 않았다. 사라진 마을 사람들, 요물들의 영역. 그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모험심과 정의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검혼문은 고요함 속에 잠겨 있었다. 모든 불이 꺼지고, 수련장의 인기척마저 사라진 깊은 밤. 류인은 자신의 숙소 창문을 조용히 열었다. 보따리 하나 없이 검 한 자루만을 허리에 차고 그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검혼문의 엄격한 규율을 어기는 행위였다. 징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저 강한 힘만을 추구하는 수련 생활에 지쳐가던 그에게, 요화림의 미스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기회처럼 느껴졌다.
서쪽으로 향하는 숲길은 밤이 되자 더욱 짙은 어둠에 잠겼다. 류인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뭇가지 위를 건너뛰고, 바위틈을 오르내리며 전진했다. 일반인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자정에 가까워지자, 그는 요화림의 입구에 다다랐다.
소문대로였다. 숲의 입구부터 기이한 기운이 맴돌았다. 평범한 숲이라면 느껴질 법한 생명의 기운 대신, 짙고 농밀한 음기가 숲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기분 나쁜 침묵 속에서, 나무들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기괴한 형상으로 뒤틀려 있었다. 류인은 검자루를 굳게 잡았다. 그의 전신에 진기(眞氣)를 흘려보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숲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조차 붉게 물드는 듯했고, 길을 잃은 혼령들이 울부짖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류인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주위를 살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갔을까. 문득, 류인의 코끝을 스치는 묘한 향기가 있었다. 피 냄새와 섞인, 꽃의 향기. 동시에 숲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류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위험을 직감했지만, 동시에 강렬한 이끌림에 저항할 수 없었다.
빛을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연못가였다. 연못의 물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주변에는 기이하게도 만개한 붉은 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연못 한가운데, 기이한 광채에 휩싸인 채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은 연못 위로 길게 흘러내렸고, 백옥처럼 희고 고운 피부는 그 어떤 인간의 그것보다도 완벽해 보였다. 피로 얼룩진 붉은 한복은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하지만 류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의 등 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기운이 아른거리는 아홉 개의 꼬리가 드러나 있었다.
구미호(九尾狐). 전설 속에서나 듣던 요물이 눈앞에 실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가늘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내린 핏빛 기운이 연못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류인의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검이 본능적으로 뽑혀 나왔다. 검혼문의 가르침에 따르면, 요물은 인간의 적이며, 발견 즉시 베어 없애야 할 존재였다. 구미호는 특히 간사하고 잔인하며, 인간의 혼을 꿰어 삼킨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검날이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하지만 차마 내리칠 수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요사스러움보다는 지독한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을 넘어, 그 깊은 눈동자에 닿았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류인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듯했다. 핏빛 연못과 붉은 꽃, 그리고 류인의 검만이 존재했다. 그녀의 눈은 검푸른 심해처럼 깊고, 동시에 천 년의 고독을 담은 듯 아련했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너무나도 신비하고 매혹적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류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꿰뚫는 듯했다. 그의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쥐고 있던 검이 연못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