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메마른 바람의 비명

칙칙한 회색 구름이 잿빛 산맥 위를 낮게 깔렸다. 이따금 날카로운 칼날처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조차 메마른 땅의 상처를 도드라지게 할 뿐, 온기를 주지 못했다. 린은 바싹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관목 숲에 몸을 숨긴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얼굴에는 지독한 피로와 함께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보이지 않아?” 낮은 목소리가 린의 귓가에 닿았다. 잭스였다. 그의 굵은 손가락이 닳아빠진 나뭇잎 사이로 멀리 보이는 평원을 가리켰다. 제국의 병력이 지나갔던 길은 마치 흉터처럼 넓고 황량했다.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째 발자국이 선명해. 평소보다 훨씬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그들이 뭘 찾는지 알 수 없어.” 잭스가 혀를 찼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좋은 징조는 아니지.”

아래쪽 평원에는 폐허가 된 마을의 잔해가 망자의 뼈대처럼 뒹굴고 있었다. 한때 활기 넘치던 삶의 흔적은 이제 연기처럼 사라지고, 불에 그을린 벽과 무너진 지붕만이 그 참혹했던 밤을 증언했다. 제국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물도, 양식도, 그리고 희망마저도.

“식량은 얼마나 남았지, 잭스?” 린이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폐허에 박혀 있었다. 저 마을은 반란 초기, 제국에 맞서 싸우다 전멸한 첫 번째 거점 중 하나였다. 그때의 불길이 아직도 린의 가슴을 태우는 듯했다.

잭스는 배낭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이틀치, 많아야 사흘치. 물은 더 부족해. 동쪽으로 우물을 찾아야 하는데, 제국 순찰이 너무 잦아졌어.”

그때, 멀리서 희미한 쇳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린과 잭스는 동시에 몸을 낮췄다. 날카로운 시선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오른쪽 능선. 제국 병사들.” 린의 목소리는 속삭임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긴장이 배어 있었다. “셋… 아니, 다섯이다. 무장 상태는?”

잭스는 작은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렌즈 너머로 제국의 정예병들이 보였다. 짙은 검은 갑옷과 빛나는 투구, 그리고 허리춤에 찬 긴 칼날이 위압적이었다. 그들은 느리지만 빈틈없는 걸음으로 수색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기병은 없어. 하지만 보병 다섯이면… 우리 셋으론 벅차. 게다가 저들은 십인장 휘하의 특수 순찰대 같아. 놈들의 표식, 못 보던 건데.” 잭스는 망원경을 내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매복인가?”

린의 옆에는 막내 동료인 카이가 바짝 엎드려 있었다.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전사였다. 그의 손은 낡은 활을 꽉 쥐고 있었지만,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카이는 반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살벌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카이,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 린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녀는 카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들키면 모든 게 끝장이야.”

제국 병사들은 능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숲 안쪽을 살폈다. 린 일행이 숨어 있는 관목 숲은 그들의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다. 바람의 방향마저 이들을 돕는 듯, 병사들은 린 일행 쪽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흙을 밟는 육중한 군화 소리, 갑옷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무미건조한 대화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이곳에 있을 리 없어. 그들은 늘 비겁하게 숨어 다니는 쥐새끼들이지.” 한 병사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십인장께서는 이 근방에 반란군의 주요 거점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최근 보급로 교란이 심해진 것도 이 근처 소행이다.”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젠장.’ 린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제국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했다. 정보가 새고 있거나, 아니면 제국의 첩보망이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이 침투해 있다는 뜻이었다.

병사들이 린 일행이 숨어 있는 관목 숲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린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카이의 옆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잭스는 칼자루에 손을 얹고 있었다. 한 놈이라도 숲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질 터였다.

그때, 선두에 서 있던 병사가 멈칫했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무슨 냄새 안 나나? 희미하게… 피 냄새 같기도 한데.”

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젯밤, 순찰대를 피하다가 긁힌 상처에서 피가 조금 흘렀었다.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이 문제였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착각이겠지요.” 동료 병사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계속 전진하시죠. 곧 해가 질 겁니다.”

하지만 선두 병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숲 안쪽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의 시선이 린이 숨어 있는 곳을 정확히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숲 깊은 곳에서 갑자기 매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놀란 병사가 고개를 돌린 사이, 잭스는 재빨리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던졌다.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소리를 냈다.

“저쪽이다!” 선두 병사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쥐새끼들이 저기로 도망친다!”

병사들은 린 일행이 숨어 있던 곳에서 등을 돌려 나뭇가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린은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젠장, 간담이 서늘했군.” 잭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매는 네가 시킨 건가, 린?”

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연이었지만… 운이 좋았어.” 그녀는 카이를 돌아보았다. 카이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이전보다 단단한 빛이 돌았다. 위기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자책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누님?” 카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린은 병사들이 사라진 방향을 잠시 응시했다. 제국의 눈은 이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리해진 듯했다. 단순히 숨어 다니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었다.

“동쪽 우물은 포기한다.” 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국 병력이 그쪽으로 움직인다면 분명 매복 병력이 더 있을 거야. 돌아간다. 서쪽으로.”

“서쪽은 이틀 거리인데, 물이 바닥나면…!” 잭스가 반문했다.

“알아.” 린은 굳게 다물린 입술 사이로 차가운 결의를 뱉어냈다. “하지만 그곳에는 우리를 도와줄 이들이 있어. 오래전, 제국에 등을 돌린 ‘고요한 숲의 부족’을 찾아갈 거야.”

잭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요한 숲의 부족? 그들은 외부인과 절대 교류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는데. 게다가 그들의 숲은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돌지 않나? 살아 돌아온 이가 없다고…”

“소문은 언제나 진실을 가린다, 잭스. 우리는 이제 소문에 의지할 때가 아니야. 물도 식량도 없이 이대로 죽어가느니, 희미한 가능성에 걸어야 해.” 린은 차가운 눈으로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는 방향이었다. 핏빛 노을이 지평선을 물들이며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카이, 너는 이번 여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야.” 린은 카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우리의 고향을 되찾기 위해서.”

카이는 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남아있던 공포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는 작은 불씨 같은 결의가 피어났다.

“네, 누님. 따르겠습니다.”

린은 낡은 단검을 허리에 단단히 고쳐 맸다. 메마른 바람이 뺨을 스치며 귀를 스쳐 지나가는 듯, 과거의 비명과 미래의 속삭임이 뒤섞여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어둠이 짙어지는 숲 속으로, 세 명의 그림자가 결연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국의 눈을 피해, 희미한 희망을 찾아 나선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