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또다시, 그 지독한 푸른빛이었다.

강태준은 흐릿한 시야를 비집고 들어오는 병원 천장의 낯익은 문양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 귀를 울리는 심전도 기계의 규칙적인 소음. 지루하리만치 완벽하게 재현된 상황이었다.

“강 형사님, 정신이 드세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는 후배 이나영 형사의 모습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나영은 그의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과장님께 연락드릴게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라니.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태준은 눈을 감았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시간은 다시 일주일 전, 그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으로 되감겼다.

강태준은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 소속이었다. ‘천재 탐정’이라는 과분한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집요하고, 조금 더 미쳐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그의 자만심을 산산조각 냈다.

한진우 화백 살인 사건.

고립된 산속 대저택,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밀실. 창문은 안에서부터 굳게 잠겨 있었고, 현관문은 몇 겹의 빗장과 사슬로 봉인되어 있었다. 심지어 화백이 죽음을 맞은 방은 내부에서 잠가버린 채 어떤 흔적도,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완벽한 밀실 살인이었다.

첫 번째 루프에서 그는 좌절했다. 온갖 추리 기법과 과학 수사를 동원했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그리고 그가 사건 현장에서 쓰러지던 순간, 시간은 되감겼다.

두 번째 루프에서는 기억을 되찾자마자 서둘러 사건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무시당했고, 한진우 화백은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밀실의 트릭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또다시, 똑같은 병원에서 눈을 떴다.

이것은 기회인가, 아니면 지독한 형벌인가.
태준은 고통스럽게 눈을 떴다. 이번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했다.

“나영아, 지금 몇 월 며칠이지?” 태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대답했다. “10월 23일입니다, 형사님. 왜 그러세요?”

10월 23일. 한진우 화백이 살해당하기 정확히 하루 전이었다.
태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형사님! 아직 퇴원도 안 하셨잖아요!”
나영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태준은 이미 병실을 박차고 나섰다.

***

다음날 새벽, 태준은 한진우 화백의 저택으로 향하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 속,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았다.

이번 루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한진우 화백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어제 병원에서 탈출한 태준은 곧장 한 화백의 저택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를 경계하는 화백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고, 태준의 간절한 경고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그는 ‘예언을 하는 미친 형사’ 취급을 받으며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또다시 같은 비극이 벌어졌다.

지금쯤이면, 이미 한진우 화백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을 터였다.
어제 저녁, 태준은 나영과 함께 화백의 저택 근처에 잠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새워 지켜봤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커녕, 조그만 인기척조차 없었다. 완벽했다. 밀실의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했다.

태준은 이미 두 번의 루프를 통해 범행 수법과 살인 도구, 그리고 화백의 죽음 시각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흉기는 작은 단검. 사인은 심장을 꿰뚫는 일격. 사망 시각은 어제 밤 11시 32분.’
이번에는 시간도 지킬 수 없었다. 남은 건 오직 하나, 완벽한 밀실의 트릭을 깨부수는 것뿐이었다.

태준이 저택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경찰차 몇 대가 도착해 있었고 경광등이 붉은색과 푸른색을 번갈아 흩뿌리고 있었다. 나영이 그의 옆에 바싹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형사님… 정말….” 나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어.”
나영은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쩌면 태준의 기묘한 직감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놀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현장으로 들어섰다. 으리으리한 저택 내부는 공포영화 세트장처럼 서늘하고 음침했다. 2층, 화백의 작업실이자 침실이었다. 문이 부서진 채 열려 있었다.

“강 형사님!”
사건 현장에서 과장과 동료 형사들이 태준을 맞았다. 과장은 한진우 화백의 시신을 가리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진우 화백,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심장 관통. 흉기는 이 단검으로 추정됩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비닐봉투 안에는 손잡이에 보석이 박힌 화려한 단검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현장은….” 과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태준은 침착하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두 번이나 봐왔던 장면이었다.
시신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푸른색 작업복 위로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왔고, 그의 손에는 붓이 굳게 쥐여 있었다. 마치 죽음의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듯이.

경찰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고, 빗장까지 완벽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한 형사가 말했다.
“문은 저희가 강제로 개방했습니다. 안에서 잠겨 있었죠.” 또 다른 형사가 덧붙였다.
“유족도, 외부인도 최근 일주일간 화백과 접촉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혼자 고립되어 지냈던 모양입니다.”
“CCTV는요?” 나영이 물었다.
“저택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어제 밤 11시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동안 모두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원인을 파악 중입니다.”

모든 것이 지난 두 번의 루프와 똑같았다.
태준은 고개를 숙여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길은 손에 쥐여진 붓과 푸른색 작업복, 그리고 그 위에 흩뿌려진 피를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바닥에 멈췄다.

피가 굳어 있는 바닥 한편에, 흐릿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운동화 자국.
‘화백은 신발을 벗고 작업하는 습관이 있었어.’
태준은 두 번의 루프에서 이 발자국을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현장 감식 결과, 발자국은 화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심지어 화백이 죽기 직전까지 신고 있었던 신발은 작업실 신발장에 고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럼 이 발자국은 언제 찍힌 것이지?’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다른 의문들에 파묻혀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 번째 루프, 태준의 눈은 더 예리해졌고, 그의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그는 천천히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발자국은 벽면을 향해 이어져 있었고, 벽에는 화백의 마지막 작품으로 보이는 추상화가 걸려 있었다. 아직 미완성인 그림. 푸른색과 붉은색이 뒤섞여 마치 격렬한 싸움의 흔적처럼 보였다.

태준은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림은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 모서리,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 붉은색 선 안에 작은 점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언뜻 보면 물감 방울처럼 보였다. 하지만 태준은 확신했다. 저것은 단순한 물감 자국이 아니었다.

‘이전에 내가 놓쳤던 단서.’
그 순간, 태준의 머릿속을 스치는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
밀실의 트릭은, 항상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그는 그림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림 속 붉은 점은, 마치 어떤 표식처럼 그를 유혹하는 듯했다.
그리고 태준은 그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디어 깨달았다.

“찾았다.”
태준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불타올랐다.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밀실의 비밀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