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한밤의 기척

김민준은 익숙한 침대에서 뒤척였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 발끝을 간질였지만, 기이하게도 등에선 땀이 배어 나왔다. 오후 내내 컴퓨터 화면에 코를 박고 씨름한 탓일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고층 아파트 단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의 1205호는 여전히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아니, 불안하다고 느낀 건 어쩌면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옆구리에 베개를 끼고 뒤척였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낡은 숨을 헐떡이듯 미세하게 삐걱거렸다. 도시의 야경은 창밖에서 멀리 반짝이며 무수한 별들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저 빛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흔적일 터. 그중 몇이나 지금 자신과 같은 답답함에 시달리고 있을까.

목이 말랐다. 냉장고에 시원한 물이 있을 텐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조차 불쾌한 예감이 들었다. 거실 저편에서 아주 작은 ‘탁’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민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고요한 밤중에 들리는 작은 소리는 언제나 신경을 긁었다. 보나 마나 건조해진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거나, 위층에서 나는 생활 소음일 것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미세하게 균열이 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금 ‘스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거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침대 바로 옆, 협탁 위에 놓인 작은 스탠드에서 나는 듯했다. 민준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스탠드의 전원 버튼이, 마치 손가락으로 가볍게 스치는 것처럼 ‘스륵’ 소리를 냈다. 불은 켜지지 않았다.

“뭐야, 고장 났나?”

그는 팔을 뻗어 스탠드 버튼을 눌렀다. 딸깍.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민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산 지 한 달도 안 된 새 제품이었다. 배선을 확인하려 스탠드를 집어 들었는데, 그때였다. 차가운 금속 부분이 손에 닿는 순간, 스탠드가 기묘하게 미끄러져 손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전구가 깨지는 소리 대신, 둔탁하고 무거운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젠장!”

민준은 낮게 욕을 읊조렸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스탠드를 주웠다. 불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짜증스럽게 스탠드를 다시 협탁에 올려놓고 몸을 뒤척였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손에서 미끄러진 게 아니라, 어쩌면 그저 잠결에 힘이 빠져 놓친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민준은 어제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간밤의 일은 그저 피곤함이 빚어낸 착각이라고 치부했다.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제의 어두웠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습관처럼 식탁 위에 놓인 리모컨을 찾았다. 어제 저녁, 분명히 식탁 위에 두었었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소파 밑, 책장 위, 심지어 침대 밑까지. 아무리 찾아도 리모컨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또?”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딘가에 잘못 뒀겠지.” 민준은 애써 웃으며 소파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평소처럼 유튜브를 틀고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이상한 일은 더 분명해졌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려는데, 분명히 서랍에 넣어둔 라면 봉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마트에서 사 와서 서랍에 넣어둔 것을 분명히 기억했다. 텅 빈 서랍을 보고 있자니,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장난하나?”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라면을 훔쳐 먹었을 리 만무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12층이라 애초에 열어두지도 않았다. 잠시 후, 민준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라면은 싱크대 밑 찬장, 평소에는 절대 열지도 않는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것도 한 봉지가 아닌, 통째로 사온 다섯 봉지가 고스란히.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제 스탠드, 사라진 리모컨, 그리고 오늘 라면. 이건 더 이상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저녁이 되자, 민준은 초조함에 안절부절못했다. 집안 모든 곳을 일일이 확인했다. 현관문은 이중 잠금으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도 틈새 없이 닫혀 있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밀실. 하지만 그 밀실 안에서, 기이한 일들은 끊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볼펜이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패드가 책상 반대편으로 옮겨져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 뚜껑이 저절로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민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그는 온 집안을 뒤졌다. 벽장 문을 열어보고, 침대 밑을 살폈다. 작은 방에 있는 옷장까지 죄다 열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공간, 자신의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젠장, 젠장, 젠장!”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공포가 목을 조여 왔다. 그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야 했다. 경찰? 정신과 의사? 아니면 친구?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믿어줄까. “제 집에 폴터가이스트가 나타났어요!”라고 말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갑자기, 거실의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민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명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깜빡이다가,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어둠이 순식간에 거실을 집어삼켰다.

“안 돼…!”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을 뻗어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기운이 그의 뒤를 덮쳤다. 마치 차가운 손이 그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플래시가 비추는 곳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책장 위, 그가 아끼던 도자기 인형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인형의 머리가 서서히, 민준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인형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마치 비웃는 듯한 형태로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인형의 눈이, 텅 빈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민준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았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삭임이었다. 아주 작고 희미했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

“왔구나…”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다 밑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어, 뇌를 송곳으로 긁어대는 것 같았다. 민준은 경악에 질려 몸을 떨었다.

그리고 동시에, 집안의 모든 문들이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일제히 닫혔다. 온 집안이 거대한 관이 되어 그를 가두는 듯했다. 공포에 질린 민준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던 커피 테이블이 스르륵,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테이블은 흔들림 없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들린 것처럼 천장으로 향했다.

민준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테이블은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떠올랐다가, 이내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앙!’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 거실을 가득 채웠던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고 기이한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을 민준은 보았다. 인간의 형상도, 짐승의 형상도 아닌, 그저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불분명한 형태. 그것은 마치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듯한 왜곡된 그림자였다.

민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그 그림자가 망막에 선명하게 박혀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속삭임이 다시금 귓가를 맴돌았다.

“이제… 시작이야.”

이성은 깨지고, 현실은 무너졌다. 그의 평범했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제는, 지옥의 문이 열린 공간에 불과했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혼자 남은 아파트에서, 기이한 존재가 그의 숨통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