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3: 피 묻은 방과 열쇠 없는 미궁
강유진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상에는 썩어가는 시체들이 득실거리고, 밤마다 놈들의 쉰 소리가 철판 벽을 긁어댔지만, 지금 느끼는 공포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 안전하다고 믿었던 지하 벙커 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밀실 살인.
“준비됐어?” 이준 대장의 굳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의 얼굴에도 피곤함과 함께 깊은 우려가 드리워져 있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시선은 옆에 선 한서준에게 향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살짝 내려앉은 다크서클,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 그는 마치 이 혼돈 속에서도 홀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의 비상한 두뇌만이 이 끔찍한 미스터리를 풀 수 있을 터였다.
“최 박사님이… 설마.” 박선영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그녀는 의료팀의 리더이자, 최 박사와 오랜 시간 함께 연구했던 동료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겹쳐 있었다.
김민호는 굳게 닫힌 강철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대형 강철 절단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안에서 잠긴 게 확실합니까? 혹시 다른 통로라도…”
“확실해.” 이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외부에서 용접된 강철판으로 막혀 있어. 환풍구는 사람 한 명 들어갈 틈도 없고. 누가 봐도 밀실이야.”
서준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마치 바이올린의 음색을 확인하는 연주자처럼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진동이라도 포착하려는 듯. 그의 눈은 희미하게 빛나는 복도의 전등 불빛 아래, 강철문의 이음새를 꼼꼼히 살폈다.
“일단 문을 엽시다.” 서준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평온했다. “안에 계신 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실은 항상 문을 열어젖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죠.”
김민호가 거대한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향해 다가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절단기를 작동시켰다. 굉음과 함께 절단기가 불꽃을 튀기며 강철 문을 파고들었다.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이 지하 벙커의 복도에 울려 퍼졌다. 놈들이 이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유진은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놈들의 위협보다, 지금 이 밀실 안의 진실이 더 시급했다. 이곳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끔찍한 예감에 유진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콰앙!
마침내 문이 떨어져 나갔다. 찢겨진 금속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방 안은 어둡고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낡은 형광등은 위태롭게 깜빡였고, 그림자가 춤을 추듯 일렁였다.
“젠장…” 이준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연구원복을 입은 최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가슴에 깊이 박힌 칼자국이 선명했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그의 몸 아래로 붉은 핏덩이가 마른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정체불명의 장비들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어수선한 연구실의 모습은 마치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흔적처럼 보였다.
서준은 마치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고고학자처럼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멈추는 곳이 없었다. 시체의 상태, 핏자국의 모양, 가구의 위치, 바닥의 먼지까지. 모든 것이 그의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 조각으로 보였다. 그는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흉기는… 아직 박혀 있군.” 서준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최 박사의 가슴에 박힌 부엌칼에 고정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칼자루에 지문이 거의 없어. 깨끗하게 닦인 것 같아.”
박선영이 조심스럽게 시체에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 슬픔이 어려 있었다. “사망 시간은… 대략 6시간 전쯤으로 보입니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혼자 작업하셨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혼자였다고?” 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해?”
“네. 최 박사님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셨고, 보안을 위해 늘 마지막까지 혼자 남으셨습니다. 문도 항상 안에서 잠그셨고요.” 선영이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최 박사를 잃은 상실감이 묻어났다.
서준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낡은 달력, 엉망진창인 책상 위 서류들, 그리고 눅눅한 공기를 맴도는 곰팡이 냄새. 그의 시선이 문득, 책상 한구석에 놓인 작은 액자에 닿았다. 어린아이와 함께 웃고 있는 최 박사의 사진.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비극이 유진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이곳이 한때는 생명과 연구의 열기로 가득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참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가슴 아팠다.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다른 출구는 정말 없습니까?” 서준이 다시 이준에게 물었다.
“절대 없습니다. 제가 직접 점검했습니다. 최 박사님이 죽은 이 연구실은 이곳 벙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외부와 연결된 통로는 오직 저 문 하나뿐입니다.” 이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그의 말에는 그만큼 이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서준은 손전등을 꺼내 천장을 비추었다. 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사람이 통과할 만한 틈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은 두꺼운 콘크리트였고, 벽은 강철판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밀실은 완벽해 보였다.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에서 범인은 대체 어떻게? 공중부양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시선은 최 박사의 시신에서 약 한 발짝 떨어진 바닥, 굳은 피가 흐르지 않은 깨끗한 부분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유진은 서준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주 미세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흠집이 콘크리트 바닥에 나 있었다. 누가 일부러 긁어놓은 것처럼 길게 이어진 자국이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간 게 아니야.” 서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히려, 이 방에서 벗어났다고 믿게 만든 거지.”
모두의 시선이 서준에게 집중되었다. 이준은 미간을 찌푸렸고, 선영은 경악한 표정이었으며, 민호는 입을 떡 벌렸다.
“무슨 말씀이시죠? 범인이 아직 이 안에 있다는 겁니까?” 이준이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손은 허리춤의 권총으로 향했다.
“아니.”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의 흠집에 머물러 있었다. “범인은 이미 이 방을 떠났어. 다만, 그 방식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뿐이야.”
그는 다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책상 위에 놓인, 최 박사가 쓰던 것으로 보이는 펜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펜이었지만, 서준은 마치 세상의 비밀이라도 알아낸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펜을 손가락 사이로 굴리며 방 안을 다시 한번 훑었다. 그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그는 비로소 모든 조각을 맞춘 듯 보였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야.” 서준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최 박사는 죽었지만, 사실 최 박사의 죽음은 이 트릭의 핵심이 아니야.”
“그럼… 범인은?” 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감으로 쿵쾅거렸다.
서준은 유진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이제는 어떤 확신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다. 적어도, 범인이 살인을 저지를 당시에는 말이지.”
그는 최 박사 시신 옆 바닥에 찍힌 미세한 자국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그의 눈이 방 안을 빠르게 훑더니, 특정 지점에 멈췄다. 책상 아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얼룩.
“저 자국은… 무언가를 끌고 갔을 때 생기는 자국이야. 그리고 저 얼룩은… 특정 화학 물질에 닿았을 때만 반응하는 표식이지.”
서준은 펜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진실의 모든 조각을 맞춘 듯 빛나고 있었다.
“밀실은 환영이었다. 범인은 최 박사를 죽이고, 이 방을 완전히 밀폐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후에, 사라졌다.”
“사라졌다니… 대체 어떻게?” 민호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의 굵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서준은 방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닿는 곳은, 최 박사의 시신이 굳어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범인은 이 방의 가장 큰 특징을 이용했어. 이곳이… 벙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연구실이라는 점을.”
그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그게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이준이 캐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함께 약간의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서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방의 한구석에 있는 작은 환풍구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작은 크기였지만, 그 너머로 희미하게 외부로 향하는 듯한 구조가 보였다.
“자, 이제부터 이 밀실의 진정한 트릭을 보여주지. 이 방은 밀실로 보였을 뿐, 사실은 언제든 열려 있었으니까.”
유진은 서준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밀실이 아니었다면, 대체 왜 범인은 이런 복잡한 속임수를 쓴 걸까?
그리고, 과연 서준은 이 밀실의 비밀을 완전히 풀 수 있을까?
그녀의 눈은 서준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