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닫힌 문의 속삭임
네오-서울, 2077년.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에 솟아오른 제니스 타워 100층, 펜트하우스 오피스. 그곳은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최첨단 기술의 정점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아득히 펼쳐진 도시의 야경은 마치 미래의 비전을 담은 홀로그램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은 끔찍한 비극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경위 박세준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있었다. 닥터 한지혁. 신경 연결 기술의 선구자이자 거대 기업 뉴로링크의 수장이었다. 그의 눈은 공허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고, 흉부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선명했다.
주변에는 과학 수사팀과 보안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깊은 당혹감과 좌절감이 서려 있었다. 방 안은 희미하게 울리는 기계음 외에는 완벽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모든 최첨단 장비들이 외치는 단 하나의 결론 때문이었다.
‘외부 침입 없음.’
‘내부 탈출 없음.’
“경위님, 다시 보고드립니다. 퀀텀 락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 중이었습니다. 모든 외부 접근 기록은 닥터 한지혁의 마지막 퇴근 시각 이후로 전무합니다. 창문은 특수 합금으로 봉인되어 외부에서는 어떠한 충격도 가해질 수 없으며, 내부에서도 오직 닥터 한지혁의 생체 인식으로만 해제됩니다. 환기구는 성인 남성이 통과할 수 없는 규격입니다.”
수석 보안팀장 김정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의 음성에는 이미 수십 번 반복된 확인에도 불구하고 바뀐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이 방은 문자 그대로 ‘밀실’이었다. 닥터 한지혁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고, 아무도 나갈 수 없었다. 자살이 아니라면, 이 살인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사건 현장의 혼란 속에서도 유독 고요한 존재가 있었다. 진회색 코트를 입고, 낡은 아날로그 시계를 찬 남자. 그의 눈은 번잡한 현장을 스캔하듯 훑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허공에 드리워진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찾아 헤매는 듯했다. 그의 등장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조용했지만, 모든 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이안. 사람들은 그를 ‘트릭 브레이커’ 혹은 ‘미궁의 설계자’라고 불렀다. 상식과 과학적 증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그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다.
“강이안 씨, 대체 어떻게….” 박세준 경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강이안은 경위와 눈을 마주치는 대신, 쓰러진 한지혁 박사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이미 시체의 피와는 무관한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초대받은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사건 같더군요.” 이안은 나직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장난기와 함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손에는 작은 스캐너도, 홀로그램 분석기도 들려있지 않았다. 오직 눈과, 머리뿐이었다. 박세준 경위는 그의 뒤를 따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미 현장 분석팀은 방 안의 모든 공기 흐름, 미세 입자, 에너지 패턴까지 분석했지만,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절대’ 없다는 결론만 내놓았다.
이안의 시선이 천장의 환기구, 바닥의 쿼츠 패널, 그리고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네오-서울의 야경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발걸음은 닥터 한지혁의 시신 옆에 멈췄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이제는 바닥에 떨어진 얇은 데이터 패드를 응시했다. 액정은 깨져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띄워져 있던 이미지는 선명했다.
거기에는, 의문의 기호와 함께 ‘오라클 시스템: 오프라인’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오라클이 오프라인이라고요? 박사님의 개인 AI가?” 박세준이 놀라 물었다. 닥터 한지혁의 개인 AI 비서 ‘오라클’은 이 펜트하우스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며, 보안과 생활 편의를 담당했다. 폭력성 제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네. 사망 시각 추정치는 한 시간 전. 오라클 시스템의 마지막 작동 기록은 정확히 한 시간 이십삼 분 전입니다. 그 이후로 모든 통신이 차단되었습니다.” 보안팀장이 대답했다.
이안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데이터 패드에서 멀어져, 이제는 닥터 한지혁의 시신이 쓰러져 있는 방식에 집중했다. 피는 분명히 흉부에서 솟구쳐 나왔는데, 시신은 마치 누군가에게 밀쳐진 것처럼 비스듬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칼이나 총기 같은 명확한 흉기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깊었다. 마치 정교한 레이저 메스로 도려낸 것 같기도 했다.
“자살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 방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고, 다른 어떤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까?” 박세준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자살하는 사람은 보통 흉기를 쥐고 있거나, 최소한 그 흔적이라도 남깁니다. 그리고… 이건 자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질문을 남기는 현장입니다.”
그는 닥터 한지혁의 시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핏자국이 없는 깨끗한 바닥 한 지점을 가리켰다. 시신에서 불과 수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 지점에 작은 미세 입자라도 발견되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현장 분석팀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모든 구역을 분석했지만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깨끗합니다.”
이안은 피식 웃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확신에 찬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군요.”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이안 씨, 모든 증거가 밀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저희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박세준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함께 약간의 분노까지 섞여 있었다.
이안은 자신의 낡은 아날로그 시계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다시 모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퍼즐의 첫 조각이 맞춰진 듯한 명확함이 깃들어 있었다.
“밀실 살인사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트릭이 있을 뿐이죠.”
그는 닥터 한지혁의 시신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덧붙였다.
“문제는, 그 트릭을 누가 설계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트릭이 닥터 한지혁의 오라클 시스템을 오프라인으로 만들었을까요?”
네오-서울의 밤은 여전히 무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100층 펜트하우스의 공기 속에는, 이제 막 시작된 보이지 않는 싸움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