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심연의 조각
우주선 ‘아스테리아’는 검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리병 같았다. 주변에는 별도, 행성도, 그 어떤 우주의 장식물도 없었다. 오직 침묵과 무한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항해 일지에는 ‘심우주 미개척 구역 – 좌표 알파-719’라는 건조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인류의 지도가 닿지 않는 곳, 문명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진정한 심연이었다.
“강함장님, 오늘 식단은 어떠셨습니까? 김치찌개는 역시 최고죠?”
함장 강태오의 귀에 기관장 박준호의 넉살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창을 통해 준호의 푸짐한 얼굴이 씨익 웃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식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였다.
“자네 덕분에 늘 호강하네, 박기관장. 우주에서 이런 진수성찬이라니.”
태오도 희미하게 웃었다. 기나긴 항해 동안 crew들의 사기를 유지하는 것은 함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고, 준호의 이런 소탈함은 그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하, 제가 별 거 했겠습니까. 어머니 레시피로 만든 건데. 아, 오늘 오후에 외부 방열판 점검해야 하는데, 서박사님 팀은 아직도 그 망할 ‘미지의 에너지원’ 스캔 데이터에 매달려 있겠죠?”
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과학 연구실 쪽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지의 것에 대한 약간의 경외심과, 그보다는 훨씬 큰 ‘귀찮음’이 섞여 있었다.
“서박사는 늘 그렇지. 새로운 미지의 것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지 않나.”
태오가 농담조로 답했을 때였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이 갑자기 푸른색 경고음과 함께 깜빡이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알람 소리에 태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함교의 자동 통신 시스템이 서지아 수석 과학자의 목소리를 연결했다.
“함장님! 긴급 보고입니다! 방금 전 저희 고정밀 스캔 센서가… 예상치 못한 패턴을 감지했습니다!”
지아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차분함 대신, 흥분과 긴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보물을 마침내 발견한 탐험가처럼.
“자세히 보고해라, 서박사.”
태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메인 스크린 중앙에 떠오른 것은 희미한 녹색 점이었다. 주변의 모든 별과 은하가 사라진 검은 우주 한가운데, 그 점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솟아난 유령 같았다.
“이곳은 알파-719. 주변 10만 광년 이내에 항성계는 물론, 먼지 구름조차 없는 완벽한 공허 지대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함장님. 이 녹색 점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최소한… 저희가 아는 어떤 물리 법칙으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지아는 숨이 가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에너지 반응은? 크기는?”
“에너지 반응은…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물체 같습니다. 하지만 크기는… 엄청납니다. 직경이 대략 15킬로미터… 그리고 형태는… 스캔 데이터가 불완전하지만, 인공물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구형도 아니고, 불규칙적인 암석 덩어리도 아닙니다. 일종의… 거대한 다면체 같다고 해야 할까요?”
15킬로미터. 아스테리아 호 전체 길이의 10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인류가 만든 구조물 중 그런 크기는 없었다. 그것도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죽은’ 물체라니.
“박기관장, 현재 항해 속도 유지하면서 목표 지점까지 얼마나 걸리지?” 태오가 준호에게 물었다.
“함장님! 제가 뭘 할지 아실 줄 알았습니다! 지금 최대 가속으로 계산 중입니다만… 물체가 너무 멀리 있어서요. 현재 속도에서 풀 스로틀로 밀어붙이면… 약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준호의 목소리에는 불만 대신 오히려 신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심우주 항해의 단조로움을 깨는 사건이라면, 사소한 고장이라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3시간 20분. 좋다. 전 승무원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즉시 전원 최고 경계 태세로 전환한다. 서박사, 계속해서 스캔 데이터 분석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고해라.”
“예, 함장님! 이대로라면 인류 최초의 외계 인공물과의 조우가 될 겁니다!”
지아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태오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했다. 이 불확실한 우주에서, 미지의 것이 주는 경외감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것은 언제나 위협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세 시간 반의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아스테리아 호는 속도를 줄이며 미지의 물체에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메인 스크린에 드디어 그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해상도로 잡히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함교에 모인 모든 승무원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혹은 욕설에 가까운 감탄사였다.
“스캔 데이터보다 훨씬… 기묘합니다.”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다면체였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빛을 삼키는 듯했으며, 어떤 부분은 날카로운 각을 이루고 어떤 부분은 불가능한 곡률로 이어져 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수십억 년 동안 거대한 힘으로 깎이고 다듬어진 것처럼 보였다. 가장 기이한 점은, 아무리 고해상도 카메라로 확대해도 그 물질의 질감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검정색이었다. 빛을 반사하지도, 흡수하지도 않는, 그저 ‘존재’하는 검정색.
“저게… 살아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준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에너지 반응은 여전히 없습니다. 완전히 정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순한 암석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지아가 답했다.
태오는 물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직감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마치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의 ‘조각’ 같았다.
“근접 스캔을 시작해라. 모든 센서를 총동원해서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뽑아내. 하지만 절대 물리적인 접촉은 하지 마.”
태오의 명령에 따라 아스테리아 호는 거대한 다면체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센서들이 윙윙거리며 미지의 물체로부터 데이터를 빨아들였다.
몇 분 후, 지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함교를 갈랐다.
“함장님! 믿을 수 없는 데이터입니다! 물체 표면에서… 균열이 감지됩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인공적인 흔적입니다.”
스크린이 확대되자, 검은 다면체의 한쪽 면에 마치 섬세한 조각처럼 새겨진 선들이 보였다. 그것은 균열이라기보다는, 어떤 문양이나 문턱 같았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였다.
“빛…?” 태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너지 반응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요! 이 푸른빛은… 매우 약하지만, 분명히 그곳에서 방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함장님! 저희 탐사선의 센서가 내부로 접근 가능한 틈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작지만… 출입문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습니다!”
지아의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그 미지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함장님, 외부 조사팀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겁니다!”
그녀의 간청에 태오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눈에는 거대한 검은 다면체의 한쪽에서 깜빡이는 푸른빛이 선명하게 박혔다. 저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닐 것이다. 저것은 아마도, 인류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거나… 혹은 끝일 수도 있었다.
“박기관장, 현재 아스테리아 호의 모든 시스템 상태 보고해.” 태오가 침묵을 깨고 명령했다.
“모든 시스템 정상입니다, 함장님. 기관부 문제없고, 동력원도 안정적입니다.” 준호가 즉시 보고했다.
“서박사, 외부 조사팀 인원과 장비 목록을 준비해. 하지만 함부로 접촉하지 말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탐사선을 운용한다. 박기관장, 탐사선 준비를 돕고,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전력 시스템을 최대한 확보해 놔.”
“함장님… 직접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준호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태오는 스크린 속 푸른빛을 응시했다. 이 미지의 존재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함장의 의무이자, 운명이었다.
“그래. 이 배의 함장은 나다. 그리고 나는 인류의 호기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의 눈에 결의가 서렸다. 이 검은 심연의 조각이 무엇이든 간에, 아스테리아 호는 이제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참이었다. 우주선을 뒤덮은 정적 속에서, 승무원들은 숨죽인 채 다가올 미지의 조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함교의 모든 전등이 일제히 깜빡이더니, 완전히 암전되었다. 함선의 비상등만이 붉게 번쩍이며 어둠을 갈랐다.
“뭐야?! 무슨 일이야?!” 준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고! 전력 시스템 불안정! 보조 전력 가동! 메인 동력원 과부하 감지!” 자동 음성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메인 스크린 속의 거대한 검은 다면체는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서 깜빡이던 푸른빛은 이제 거대한 파동처럼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동이 아스테리아 호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선체 전체가 둔탁하게 울렸다.
“젠장! 서박사, 무슨 일이야?!” 태오가 소리쳤다.
지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려왔다. 이번에는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함장님! 방금 그 물체에서… 강력한 전자기파가 방출되었습니다! 저희 함선의 시스템과… 공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상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됩니다! 함선 내부에… 알 수 없는 공간 왜곡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오의 발밑에서부터 섬뜩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함교의 금속 바닥이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메인 스크린 한쪽 귀퉁이에서,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함선의 시스템 자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조각이 잠에서 깨어나, 그 거대한 미지의 힘을 드러내는 첫 번째 신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