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망자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 비운각(飛雲閣).
연회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웅장한 대청은 오색영롱한 비단과 금실로 수놓아진 휘장으로 장식되었고, 천장에 매달린 용연등(龍淵燈)은 영롱한 빛을 뿜어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황금빛으로 번들거리는 술잔에서는 희귀한 영주(靈酒)가 넘쳐흘렀고, 산해진미가 가득한 상차림 위로 기분 좋은 담소와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연회의 중심에는 백륜(白輪)이 있었다. 빛나는 백의(白衣)를 걸치고, 그에게 헌정된 연단을 마치 왕좌처럼 차지하고 앉은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칭송과 아첨의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백륜 대협께서 아니셨다면, 어찌 천하제일문의 영광이 이토록 찬란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백륜 대협의 혜안과 무력이야말로 우리 문파의 기둥이십니다!”
백륜은 잔을 들어 가볍게 흔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 지 십 년. 십 년 전, 그는 모두에게 존경받던 선배이자 친구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그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십 년이라는 시간은 과거의 추악한 진실을 완벽하게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그를 칭송했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천무진(天武眞). 네놈이 없어져 준 덕분에, 내가 이 모든 것을 얻었지. 어리석은 놈.’
백륜은 속으로 비웃었다. 천무진은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었지만, 너무나도 순진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바보 같은 친구.
그때였다.
화려한 연회장의 모든 불꽃이 일순간 스러지듯 사그라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용연등의 영롱한 빛마저 거짓말처럼 희미해졌다. 찬란했던 대청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식되었고, 영기를 머금은 연회장의 공기는 마치 심장이 멎는 것처럼 차갑고 무겁게 변했다.
왁자지껄했던 대청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웃음소리는 목구멍 속에서 갇혔고, 담소는 불완전한 파편이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연회 참석자들은 저마다 기(氣)를 끌어올리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감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찢어질 듯한 정적만이 대청을 짓눌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가장 먼저 백륜의 연단 앞, 정확히 영기(靈氣)가 가장 응집된 중심에 그림자가 자리했다. 그림자는 서서히 형체를 갖춰갔다. 길고 날카로운 기운이 그림자로부터 뿜어져 나오자, 그제야 모두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냉기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살기(殺氣)였다.
검은색 도포 자락이 바닥에 쓸리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검은 복면이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섬뜩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마치 심연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얼음 결정처럼 차가웠다. 등 뒤에는 검은 천으로 감싼 장검이 꽂혀 있었다.
그의 등장에 비운각의 모든 수호진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영기의 격류가 솟구쳤고, 비운각 전체를 감싸던 보호막이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모든 격렬한 저항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인 양,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누, 누구냐!”
경계심을 풀지 않던 백륜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이런 살기는 평생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와 마주한 것 같았다.
검은 복면의 사내는 미동도 없이 백륜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백 년 묵은 얼음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낮고 건조했다.
“오랜만이군, 백륜.”
그 한마디에 백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 목소리는… 설마… 천무진? 그럴 리가! 네놈은 분명 죽었…!”
백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이제 공포로 뒤덮였다. 죽었다고, 아니, 죽였다고 확신했던 자의 목소리였다. 착각일 리 없었다. 그 저주받은 목소리를 백륜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검은 복면의 사내, 천무진은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영기(靈氣)가 실타래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영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마치 수많은 원혼들의 울부짖음이 담겨 있는 듯한, 극도로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네놈이 내 등을 찌르고, 나를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을 때… 나는 절규했다. 친구라는 이름이 비웃음으로 변하는 순간을, 뼛속 깊이 새겼지.”
천무진의 목소리에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오직 무한한 허무와 차가운 분노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백륜의 뒤에 서 있던 문파의 고수들이 참지 못하고 무진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백륜 대협 앞에서 무례를 범하느냐! 죽어라!”
세 명의 장로급 고수들이 동시에 무형의 장풍을 날렸다. 영기(靈氣)가 응축된 푸른 기류가 비운각의 허공을 찢으며 무진에게로 쇄도했다. 그들의 도력은 연회장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다.
하지만 천무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손목을 가볍게 꺾었을 뿐이었다.
‘콰아앙-!’
천무진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움직이며 세 명의 장로들이 날린 장풍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푸른 기류는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기운은 멈추지 않고 역방향으로 쇄도했다. 장로들은 자신들이 날린 도력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어둠의 파도에 그대로 휩쓸렸다.
“크아아악!”
세 명의 장로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피와 살점이 뒤섞인 채 비운각의 벽에 처박혔다. 그들이 의지하던 영력(靈力)의 보호막은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부서졌고, 그들의 심법(心法)으로 다져진 육신은 단숨에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들의 생사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분쇄된 육체는 그들의 죽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대청은 다시 한번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공포가 모든 이들을 짓눌렀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문파의 기둥이라 불리던 세 명의 장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악귀가 현신한 것만 같았다.
“네놈은… 어떻게…?”
백륜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그의 무골이 오싹하게 떨렸다. 저 힘은 자신이 알던 천무진의 것이 아니었다. 십 년 전, 나락으로 밀어 넣었던 그 어리석고 순진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 선 존재는, 지옥에서 끓어오른 증오와 복수심으로 빚어진 파괴의 화신이었다.
천무진은 천천히 백륜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비운각의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마치 대지가 그의 발아래에서 숨 쉬는 듯했다.
“백륜. 네놈은 나를 죽였다. 내 심혈(心血)을 기울여 일궈낸 문파를 빼앗고, 내 모든 것을 짓밟았지.”
그의 눈빛은 백륜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는 듯했다.
“하지만… 네놈은 내게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을 주었다. 지옥의 나락에서, 뼈와 살이 깎이는 고통 속에서, 나는 네놈의 이름을 수백, 수천 번도 더 외쳤다.”
천무진은 백륜의 연단 앞에 멈춰 섰다. 그 거리는 단 한 발짝에 불과했다. 백륜은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바위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그의 사지를 마비시켰다.
“나는 돌아왔다. 네놈이 내게 안겨준 고통을, 이제 네놈에게 돌려줄 시간이다.”
천무진의 오른손이 검은 천으로 감싼 장검의 검집으로 향했다. 그의 손가락이 검집을 스치자, 검은 천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르륵 풀려나갔다. 드러난 검은 영검(靈劍)은 주변의 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한 칠흑 같은 빛을 뿜어냈다. 검의 칼날에는 마치 수억의 원혼이 서려 있는 듯,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네놈이 내게서 빼앗아 간 이 모든 것… 네놈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이 모든 영광… 하나도 남김없이 부숴주마. 네놈의 목숨보다 귀하다 여기는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산산조각 내주겠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맹렬한 증오는 비운각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네놈은 고통 속에서 날마다 나의 이름을 외치게 될 것이다. 마치 내가 지옥에서 네놈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이것이, 나의 새로운 시작이자, 네놈의 영원한 저주가 될 것이다.”
천무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칠흑 같은 영검이 허공을 가르며 섬광처럼 번뜩였다. 백륜은 눈을 감았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은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천무진의 마지막 절규였다.
‘쉬이이익- 콰창!’
검은 영검이 허공을 찢는 소리와 함께 비운각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영검의 기운은 백륜의 앞을 막아서려는 무형의 보호막을 마치 종이처럼 찢어버렸다. 백륜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은 오지 않았다.
백륜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선 천무진은 여전히 냉혹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륜은 그제야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을 깨달았다.
자신의 배에 박혀 있는 것은 영검이 아니었다. 그의 몸, 정확히는 단전(丹田)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마치 뿌리 뽑힌 나무의 상처처럼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영검은 그의 단전을 정확히 꿰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의 온몸을 휘감던 막강한 영기(靈氣)가 마치 새는 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도력(道力)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백륜은 분명하게 느꼈다.
“크, 크아악…!”
백륜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온몸의 힘이 거짓말처럼 빠져나갔다. 그의 내공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그는 더 이상 문파의 기둥이 아니었다. 천하제일문의 백륜 대협도 아니었다. 그저 한낱 범인(凡人)보다도 못한, 모든 것을 잃은 존재가 되었을 뿐이었다.
천무진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백륜. 네놈은 이제 살아서 지옥을 맛볼 것이다.”
천무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영검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비운각의 연회장은 피비린내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십 년 만에 돌아온 망자가 시작하는 피의 복수극의 서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