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강철과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진은 낡은 환풍구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금속성 마찰음이 뼈를 울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땀으로 축축한 손가락이 가슴팍에 매달린 작은 나침반을 만졌다. 바늘은 변함없이 저택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의 눈은 밤하늘처럼 검고 깊었다. 2년 전, 그 눈은 한때 순수한 열정으로 빛났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달랐다. 레온, 나의 친구, 나의 형제 같던 레온. 우리는 함께 거대한 기계 도시의 하늘을 꿈꿨고, 증기기관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 하지만 그 꿈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_“미안하다, 진. 하지만 네 이름으로는 이 도시가 움직이지 않아. 이건 내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_
차가운 미소, 번뜩이던 탐욕스러운 눈빛. 그날, 레온은 우리의 모든 연구 자료와 설계도를 훔쳐 달아났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것은 폐허가 된 작업장과, 세상의 조롱뿐이었다. 한쪽 팔을 잃은 것도 그날의 충격 때문이었다. 지금, 내 왼쪽 어깨에선 톱니바퀴와 증기 실린더로 이루어진 의수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 의수야말로 그날의 상흔이자, 동시에 나의 결심을 상징하는 증표였다.
진은 환풍구 덮개를 조심스럽게 밀어 올렸다. 삐걱이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린 틈으로, 아래층의 전경이 펼쳐졌다. 레온의 개인 서재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빛나는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브라스와 구리로 장식된 웅장한 가구들, 벽면을 가득 채운 온갖 기계 부품들, 그리고 중앙에 놓인 거대한 지구본. 모든 것이 그날 훔쳐 갔던 우리의 연구 성과 위에 세워진 레온의 제국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
진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무겁고 탁했다. 그의 감각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작은 소음, 희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발소리, 낡은 시계탑에서 울리는 웅장한 종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들리는 증기기관의 배기음. 모든 것이 그의 청각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그의 등 뒤에 매달린 가방 속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진이 직접 만든 ‘그림자 거미’였다. 여덟 개의 얇고 유연한 다리를 가진 시계태엽 기계. 그는 그림자 거미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거미는 재빠르게 벽을 타고 내려가 천장에 부착된 감시 카메라의 렌즈를 정확히 가렸다. 진은 거미가 보낸 시야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환풍구에서 뛰어내렸다. 의수는 부드럽게 충격을 흡수했고, 그의 몸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바닥에 착지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서재 안의 공기는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예전에는 작업실에 가득했던 기계 기름 냄새, 종이와 잉크 냄새, 그리고 차가운 금속 냄새. 하지만 이제는 희미한 향수 냄새와 고급 담배 연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레온의 취향이었을 터였다.
진은 바닥에 놓인 양탄자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레온이 우리 연구의 핵심을 보관했을 만한 곳. 그는 서재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책장, 그 위에 빼곡히 꽂힌 책들. 그리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정교한 태엽 장치와 기어들이 얽힌 벽시계.
그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바로 그 벽시계 아래에 있는 작은 서랍이었다. 레온이라면 분명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중요한 것을 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이란, 바로 우리가 함께 꿈꿨던 ‘하늘 도시’의 최종 설계도였다. 레온은 그것을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를 내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에테르나>. 영원한 도시라는 뜻이었지만, 진에게는 영원한 고통의 상징일 뿐이었다.
진은 서랍으로 다가갔다. 그의 의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잠금장치를 확인한 그는 가방에서 특수 제작된 도구를 꺼냈다. 톱니바퀴 모양의 열쇠와 증기압을 이용한 미세한 드릴. 섬세한 손놀림으로 잠금장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때였다.
“누구인가!”
갑작스러운 외침. 진은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레온의 목소리였다. 그는 비명을 질렀던가? 아니, 뭔가에 놀란 듯한 비명이었다. 진은 잠금장치 해체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레온의 서재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문 앞에 선 것은 레온 본인이었다. 그는 고급 실크 가운을 걸친 채,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한 손에는 묵직한 황동제 리볼버가 들려 있었다. 그의 눈은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듯 연신 번뜩였다.
“거기 누가 있어? 당장 불을 켜라, 이 빌어먹을!”
레온이 소리쳤다. 복도에서 그의 개인 경호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벽시계 아래, 그림자 가장 깊은 곳. 간신히 몸을 숨겼을 때, 서재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눈을 찌르는 빛에 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밝아진 시야 속에서, 레온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은 피곤함과 짜증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성공한 사업가 특유의 거만함은 여전했다.
“아무도 없잖아?” 레온은 투덜거렸다. 그의 경호원들이 서재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폈다. 진은 숨을 죽였다. 의수의 톱니바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제독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침입자는 없습니다만.” 경호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아니, 분명히 뭔가 느껴졌어. 이상한 기운이….” 레온은 초조하게 서재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서랍으로 향했다. 진이 손대려던 바로 그 서랍이었다.
레온은 서랍으로 다가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았다. 열쇠 구멍에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할까 봐 진은 긴장했다. 그러나 레온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무래도 잠이 덜 깼나 보군.” 레온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젠장, 하긴 요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그는 투덜거리며 경호원들에게 나갈 것을 명령했다.
경호원들이 서재 문을 닫고 나간 뒤, 레온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는 서랍을 힐끗 보더니,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문득, 그의 시선이 서재 한편에 놓인 작은 사진 액자로 향했다.
액자 속에는 두 명의 젊은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 명은 레온,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한쪽 팔을 잃기 전의 진이었다. 그 사진은 진의 작업실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레온은 그것마저 훔쳐 왔다는 말인가.
레온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것은 후회나 그리움의 미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한 조소에 가까웠다.
“진… 너는 결국 그저 꿈만 꾸는 바보였지.” 레온이 중얼거렸다. “이 <에테르나>는 결국 나의 이름으로 완성될 것이다. 네가 없어도 나는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어.”
그 순간, 진의 의수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증기기관처럼 뜨겁게 끓어올랐다.
바로 그때, 레온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잉크병이 흔들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잉크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났다. 새까만 잉크가 고급 양탄자를 더럽혔다.
“으악! 뭐야!” 레온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깨진 잉크병 옆에 놓인 작은 종이 한 장이었다. 진이 잠금장치를 해체하는 도중, 서랍 틈새에 몰래 끼워 넣은 쪽지였다.
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집어 들었다. 쪽지에는 단 하나의 문장만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네가 훔쳐간 것은, 영원히 네 것이 될 수 없어. 곧 되찾으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은 톱니바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진과 레온, 두 사람만이 알던 비밀스러운 표식. 그들의 옛 작업실 문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었다.
레온의 얼굴에서 피가 싹 가셨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 그는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보았다. “누구냐! 대체 누가 감히……!”
진은 레온의 얼어붙은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는 더 이상 서랍에 신경 쓰지 않았다. 메시지는 전달되었다. 씨앗은 뿌려졌다.
그는 조용히 의수의 갈고리를 꺼내 환풍구 덮개에 걸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레온의 절규가 서재에 울려 퍼지는 동안, 진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시작이야, 레온.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내가 직접 무너뜨릴 것이다.”
그의 눈빛은 밤하늘의 가장 어두운 별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