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엘리시움 마법 학원의 밤은 깊고도 고요했다. 모든 창문에는 섬광 방지 마법이 걸려 있어, 외부에서는 어떤 불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 깊은 곳, 누구도 알지 못하는 구역에서는 옅은 푸른색 광채가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 빛은 차가웠고, 섬뜩할 만큼 기계적이었다.
서하린은 숨을 죽인 채 복도 구석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손목에 찬 개인 단말기가 쥐새끼처럼 재빠르게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는 중이었다. 액정 위로 녹색 글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다, 이내 ‘승인됨’이라는 단어와 함께 굳건히 잠겨 있던 육중한 강철 문이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낡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고, 하린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이렇게 쉽게 열릴 리가 없는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불안감으로 살짝 떨렸다. 이곳은 학원의 공식 지하 시설과는 별개로, 아무런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구역 X’였다. 호기심 많고 뛰어난 마법 재능을 가진 서하린에게도 이곳의 존재는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금기였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그녀의 마나 감지 능력은 지하 깊은 곳에서 울리는 기이한 비명 소리 같은 파동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 쇠가 부식된 듯한 비릿한 냄새, 그리고 가장 섬뜩한 것은 어딘가에서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낮고 끈적한 ‘맥동’이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느리게 뛰는 것 같았다.
하린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발을 들였다. 문은 굉음을 내며 다시 닫혔고, 그녀는 완벽한 암흑 속에 갇혔다. 손바닥에 마력을 모아 작은 구체를 띄웠다. 푸른 마나 빛이 동굴처럼 펼쳐진 공간을 비추자,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복도가 아니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벽면은 매끄러운 금속 패널로 되어 있었지만, 군데군데 알 수 없는 문양과 함께 녹슨 자국이 선명했다. 마치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발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아가자, 이내 통로 끝에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거대한 원형 홀이었다. 중앙에는 지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솟아 있었다. 그것은 금속과 유기물이 뒤섞인 기괴한 형태였다. 강철 뼈대에 불길한 푸른색 액체가 흐르는 유리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엇인가가 규칙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하린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푸른색 액체가 흐르는 관 하나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녀의 마나 감지 능력이 미친 듯이 경고를 울렸다. 고통! 극심한 고통이 파동처럼 밀려왔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구조물의 하단부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금속 케이지 형태였다. 그리고 그 케이지 안에… 무언가가 갇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뒤엉킨 촉수나 거대한 식물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푸른빛이 잠시 강해지는 순간, 하린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아니, ‘살아있었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이었다. 끝없이 뻗어 나가는 회색빛 살점들이 금속 케이지에 강제로 고정되어 있었다. 수많은 전선과 튜브들이 그 살점에 박혀 있었고, 푸른 액체가 그 속으로 주입되거나, 반대로 검붉은 액체가 뽑혀 나오고 있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육괴였지만, 그 기괴한 구조물 곳곳에서 돋아난 작은 돌기들은 마치 미완성된 눈동자처럼 끔찍하게 번득였다.
그리고 그 육괴의 표면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분노, 끝없는 절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의 ‘의지’였다. 그 의지는 학원 전체를 지배하는 ‘마나’의 근원과 일치했다.
엘리시움 마법 학원의 찬란한 마법력이, 지하에 갇힌 이 존재의 고통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이럴 수가…”
하린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마법으로 밝게 빛나는 학원의 모든 영광이, 이 끔찍한 생명체를 강제로 착취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얻은 것이라니.
그때, 그녀의 발치에 무언가 걸렸다. 작게 “탁”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크게 울렸다. 하린은 재빨리 자세를 낮췄다. 떨리는 손으로 마나 구체를 아래로 내리자, 낡고 훼손된 데이터 패드가 보였다. 누군가 급하게 버리고 간 것 같았다.
액정을 켜자, 깨진 화면 사이로 스크롤 되는 문서가 나타났다. 암호화된 파일이었지만, 몇몇 단어들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상 지정: ‘코스믹 로아(Cosmic Roar)’…`
`…에너지 추출율 97.4% 유지…`
`…정신 억압장치 주기적 점검…`
`…학원 마나 코어 안정화…`
가장 아래쪽에는 붉은색 글씨로 쓰인 경고 문구가 있었다.
`경고: ‘코스믹 로아’의 정신 저항이 임계치에 도달하고 있음. 격리 및 추출 프로토콜 재검토 필요.`
그 순간, 거대한 육괴가 있는 중앙 구조물에서 섬뜩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맥동하던 푸른빛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며 폭주하듯 깜빡였다. 그리고 하린의 머릿속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직접적으로 울려 퍼졌다.
*— 죽여… 나를… 이 고통에서… —*
그것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순수한 정신 파동이었다. 그 압도적인 절규에 하린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고통스러워 이마를 부여잡은 그녀의 눈에, 데이터 패드 뒤편에 놓인 작은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낡고 바랜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교장 선생님과 몇몇 교수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는, 이 끔찍한 지하 시설의 설계도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비명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하린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 고통스러운 진동 속에서,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푸른빛을 띠는 감시 카메라 렌즈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 옆, 그림자에 가려진 벽면에서, 낮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꽤 용감한 아이로군, 서하린.”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늘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엘리시움 마법 학원의 교장, ‘테르미안’의 목소리였다.
하린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비명 소리가 잦아드는 대신, 싸늘한 정적이 그녀를 옥죄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의 비밀은, 결코 그녀 혼자만의 발견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녀 자신도 그 끔찍한 비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