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철근이 뼈대만 남긴 채 앙상하게 드러난 고층 빌딩 사이로 잿빛 하늘이 도려낸 듯 걸려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폐허의 거리엔 먼지 섞인 정적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발아래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나의 움직임에 맞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신경이 곤두선 채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이지, 이 망할 도시의 모든 것은 녹슬고 부서지고, 또 다시 부서지고 있었다. 살아남은 건 오직 나 자신뿐인 것처럼.

벌써 닷새째였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열량을 섭취했던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지경. 한때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을 이 대형마트는 이제 거대한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선반은 텅 비어 있었고, 유리창은 모조리 깨져 있었다. 캔 하나, 하다못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과자 부스러기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나마 오늘 밤은 견딜 수 있을 터였다.

내 손에 쥐인, 녹슨 나이프만이 유일한 동반자이자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언제나처럼, 허기는 가장 치명적인 적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내부로 한 발짝 내딛자, 어딘가에서 ‘뚝, 뚝’ 하는 물방울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천장에서 새는 물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본능적으로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나는 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폐허가 된 이곳에서 소리만큼 위험한 것은 없었다. 소리는 곧 그림자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림자는… 죽음을 의미했다.

그 ‘그림자’라는 것들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형체도 없이 일렁이는 검은 연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팔다리 없이 기어 다니는 형상을 띠기도 했다. 빛을 싫어했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번 들키면 끝이었다. 그 촉수에 닿는 순간, 살점은 얼어붙고 영혼까지 빨려 나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그 그림자의 일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도시가 이렇게 변한 지 벌써 5년. 아직도 그 지옥 같은 첫날의 악몽이 선명했다. ‘그림자의 날’… 젠장.

천천히, 정말이지 고요한 움직임으로 나는 냉장 코너를 향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 아직 전력이 끊어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어딘가에 전기가 남아 있어서 냉동 보관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기대였다.

‘끼이익…’

낡은 냉동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심장이 철렁했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얼어붙은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절망적인 공허함만이 나를 반겼다.

그때였다.

내 등 뒤에서, 희미하지만 확실한 ‘스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진열대 너머, 희미하게 빛바랜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형체는 일렁이며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크기는 성인 남성만 했다. 온몸을 뒤덮은 검은 연기 속에서 붉은 두 개의 점이 번뜩였다. 눈동자였다. 놈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끈적하고 소름 끼치는 침묵 속에서 나를 향해 기어왔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나는 손에 쥔 나이프를 앞으로 내밀었다. 녹슬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이 비상등 빛을 반사하며 섬광을 뿜어냈다.

그림자는 물리적인 타격에는 무딘 반응을 보였다. 일반적인 칼날로는 놈의 형체를 흐트러뜨릴 순 있어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5년 동안 이 지옥에서 살아남으며 나만의 방식을 터득했다.

놈의 기척이 가까워지는 순간, 나는 심호흡을 했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놈의 ‘흐름’을 읽었다. 놈들은 형체가 없지만, 분명히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 흐름이 가장 약해지는 찰나. 그때를 노려야 했다.

‘지금이야!’

나는 나이프를 쥔 손목에 힘을 싣고, 놈의 붉은 눈이 있는 곳을 향해 칼날을 찔러 넣었다.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었다. 칼끝에 나의 ‘기운’을 실어 놈의 ‘흐름’을 억지로 비틀었다.

‘쉬이이익…!’

칼날이 그림자의 형체를 찢고 지나가자, 놈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놈의 몸체가 잠시 흐물거리며 일렁였다. 놈의 붉은 눈이 잠시 흐려졌다. 기회였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연이어 칼날을 휘둘렀다. 한번 흐트러진 놈은 잠시 제 움직임을 잃었다. 마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허공에서 몸부림쳤다.

‘하나… 둘… 셋!’

세 번의 연속적인 찌르기. 칼날이 놈의 몸을 가를 때마다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고, 놈의 형체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마지막 일격은 놈의 정수리 부근을 정확히 노렸다.

‘푸욱!’

마치 허공을 찌르는 듯한 감촉.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꿰뚫렸다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크르르르…’

낮고 끔찍한 울음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놈의 형체가 일그러지더니, 결국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 쥔 나이프가 달달 떨렸다. 아슬아슬했다. 언제나 이랬다. 한 끗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렸다.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겨우… 겨우 살아남았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던 비상등마저 깜빡이다 꺼져 버렸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손전등을 꺼내 비췄다.

빛이 닿은 곳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선반, 널브러진 잡동사니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마치 기적처럼, 찌그러져 있지만 내용물은 온전해 보이는 캔 하나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정도는 ‘신선함’의 영역이었다. 손에 든 캔의 무게가 이토록 든든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오늘 밤은 이걸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내일은 또 다른 어둠과 허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고개를 들어, 한때 화려했을 마트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고, 먼지가 소복이 쌓인 그곳. 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그림자들.

나는 언제까지 이 잿빛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할까. 언제쯤 이 지옥 같은 생존이 끝날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에게 먹히느니, 차라리 이 나이프를 쥔 채 끝까지 발버둥 칠 것이다.

나는 캔을 품에 안고, 희미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폐허의 심장부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