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2호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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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장소]** 서울 시내 낡은 아파트 702호 거실. 밤 11시.
**[인물]** 김민준 (29세, 직장인)
**[지문]** 늦은 밤, 김민준은 지친 어깨를 늘어뜨린 채 현관문을 열었다. 낡은 복도에서부터 풍겨오는 희미한 곰팡이와 먼지 냄새는 그에게 일상의 씁쓸한 향수와도 같았다. 뻑뻑하게 열리는 문을 밀고 들어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어둠 속에 잠긴 거실의 실루엣이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야경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지만, 민준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가방을 대충 소파 위에 던져놓고는 낡은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자 노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였다.
**[지문]** 정적을 깨고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민준:** (피곤에 절어 나직이) 뭐야?
**[지문]** 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윗집에서 늦게까지 소란을 피우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 밤은 유독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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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장소]** 민준의 702호 부엌. 밤 11시 5분.
**[인물]** 김민준
**[지문]** 민준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발끝에 차이는 작은 조각에 시선을 내리자, 식탁 아래 바닥에 산산조각 난 유리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오늘 아침 물을 마셨던 컵이었다. 민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컵 조각들을 내려다봤다. 분명히 식탁 중앙에 제대로 놓아두었을 텐데.
**민준:** (혼잣말, 당황한 목소리) 떨어질 리가 없는데… 제대로 놨는데. 설마… 지진?
**[지문]** 그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 앱을 확인했지만, 지진 특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컵이 스스로 떨어졌을 리는 만무했다. 낡은 아파트라 진동이 있었나? 아니면 고양이라도 있었던가? 민준은 고개를 젓는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피곤함이 그를 지배했다. 대충 빗자루로 조각들을 쓸어 담고는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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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3]**
**[장소]** 민준의 702호 침실. 밤 11시 30분.
**[인물]** 김민준
**[지문]**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민준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묘한 위화감이 침실 전체를 감싸고도는 듯했다. 천장에서 ‘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낡은 나무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였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겠거니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가, 1초도 안 돼 다시 켜졌다. 민준은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민준:** (짜증 섞인 목소리) 아, 진짜! 오래됐다고 별게 다 말썽이네.
**[지문]** 그는 스탠드를 툭툭 쳤지만, 조명은 멀쩡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의 등을 스쳤다. 오늘 밤은 영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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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4]**
**[장소]** 민준의 702호 거실. 다음 날 아침 7시.
**[인물]** 김민준
**[지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민준은 어젯밤 일들을 대충 잊으려 노력했다. 피곤해서 예민했던 것일 뿐이라고, 낡은 아파트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토스트를 굽기 위해 빵을 넣고 잠시 뒤돌아섰을 때였다. 냉장고 문이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저절로 활짝 열렸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토스트 굽는 것을 멈추고 냉장고를 응시했다.
**민준:** (식은땀을 흘리며) 이거… 너무하잖아.
**[지문]** 민준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창문도 닫혀있었다. 바람이 들어올 틈도 없었다. 냉장고 문은 어젯밤에 분명히 잘 닫아두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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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5]**
**[장소]** 민준의 702호 거실. 밤. (그로부터 며칠 후)
**[인물]** 김민준
**[지문]** 며칠째 이상 현상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컵이 떨어지거나 냉장고 문이 열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물건들이 제자리를 이탈하고, 전등이 제멋대로 깜빡이며, 때로는 없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노후화’나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잠은커녕, 집 안에 머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그는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였다.
**[지문]** 오늘 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침대 끝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현듯, 침대 맞은편 벽면에서 희미한 무늬가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림자려니 생각했지만, 그림자 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윤곽이 느껴졌다.
**민준:** (눈을 비비며, 떨리는 목소리) 뭐지…?
**[지문]** 자세히 보니 벽지가 희미하게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젖은 자국 위로,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촉수 같기도 했고,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의 상형문자 같기도 했다. 점차 선명해지는 문양들은 방 전체에 불경하고 섬뜩한 기운을 퍼뜨렸다.
**민준:** (경악에 질려 숨을 헐떡이며) 이게… 뭐야…?
**[지문]** 공포가 그의 목을 조여왔다. 본능적으로 이것이 인간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벽 속에서, 혹은 벽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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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6]**
**[장소]** 민준의 702호 거실. 밤.
**[인물]** 김민준
**[지문]** 이성을 놓기 직전의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현상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광기가 서려 있었다. 벽에 나타난 무늬들은 더욱 선명해졌고, 방안의 공기는 지하실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지문]** 갑자기, 거실 한편에 놓인 오래된 TV 화면이 ‘쉬이이이익’ 하는 백색 소음과 함께 섬광처럼 번쩍였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노이즈는 마치 수많은 비명이 뒤섞인 듯한 불협화음으로 들렸다.
**민준:** (떨리는 목소리) 젠장… 녹화되고 있어…
**[지문]** 그때, 거실 중앙의 오래된 샹들리에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그러다 점점 격렬하게. 샹들리에의 유리 조각들이 부딪히며 ‘짤랑, 짤랑’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깨지는 유리처럼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민준:** (흐느끼듯) 제발… 멈춰…
**[지문]** 샹들리에는 한 바퀴, 두 바퀴, 점점 더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휘두르는 것 같았다. 민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동시에 방안의 모든 전등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민준:** (비명) 흐아아악!
**[지문]** 완벽한 어둠 속에 갇힌 민준. 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동시에, 하지만 불규칙하게, 마치 깊은 바다 속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로 속삭였다. 그 소리는 언어가 아니었다.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없는 불경한 음파의 덩어리였다. 그의 고막을 찢고 들어오는 소리는 그의 이성을 산산조각 내는 듯했다.
**민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쉰 목소리로) 안 돼… 안 돼…!
**[지문]** 그리고 그때, 벽에 드리웠던 기이한 문양들이 어둠 속에서 발광하기 시작한다. 희미한 푸른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핏줄 같은 섬뜩한 빛. 그 빛을 따라 벽이 일렁인다. 마치 벽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벽면의 석고가 부풀어 오르고, 떨어져 나가며, 안쪽에서 어둡고 축축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실루엣을 드러냈다. 민준은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눈앞의 현실이 아니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그의 이성을 침범했다.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심해의 아가리였다.
**[지문]** (클로즈업: 민준의 눈동자. 공포와 광기가 뒤섞여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아파트 벽이 아닌, 끝없는 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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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