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고철 더미 속 심장의 고동
낡은 공구통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강하준은 시커먼 기름때가 눌어붙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퀴퀴한 쇳내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작업장은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유독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탁한 공기 속에서 그가 수리 중인 낡은 작업용 메카, 일명 ‘고철 딱지’의 삐걱거리는 관절은 그의 처지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했다.
“젠장, 이것도 이제 한계인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함께 희미한 투지가 섞여 있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거대한 쓰레기 산, ‘폐기장 7구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고철 덩어리라도 온전히 작동해야 했다. 폐기장 7구역은 금지된 구역이었다. 과거 문명의 잔해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그곳은 위험한 유해 물질과 불안정한 고대 동력원의 흔적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희귀한 고철이나 재활용 가능한 부품을 찾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곳이었다. 물론, 살아 돌아온 자는 드물었다.
하준은 도시의 변두리, 낡은 주거 블록 틈새에서 작은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때는 촉망받는 메카 파일럿을 꿈꿨지만, 현실은 낡은 기체를 뜯어 고치고, 버려진 부품을 주워 생계를 잇는 고철 사냥꾼에 불과했다. 밀린 임대료 독촉장과 텅 빈 식량 저장고는 그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렸다. 폐기장 7구역. 그곳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밤이 깊어지고 도시의 불빛이 희미해질 무렵, 하준은 수리가 끝난 ‘고철 딱지’에 몸을 실었다. 투박하고 투박한 조종석은 몸을 구겨 넣어야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낡은 엔진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진동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지만, 하준은 오히려 익숙한 안도감을 느꼈다. 유일하게 그를 폐기장 속으로 이끌어줄 친구였다.
폐기장 7구역으로 향하는 길은 황량했다. 과거의 고층 빌딩 잔해가 흉물스럽게 솟아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빈민가의 판잣집들은 위태롭게 바람에 흔들렸다. ‘고철 딱지’는 묵묵히 흙먼지를 흩뿌리며 나아갔다. 외부 센서에 잡히는 지형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도로, 뒤틀린 구조물, 그리고 정체 모를 금속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폐기장 입구에 다다르자, 녹슨 경고문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출입 금지. 생명 유지 장치 없이는 생존 불가.”
하준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산다는 것 자체가 매일매일 생존 투쟁이었다. 그는 폐기장 입구의 낡은 철문을 부수고 ‘고철 딱지’를 밀어 넣었다. 거대한 고철 더미들이 층층이 쌓여 거대한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부서진 차량, 녹슨 산업용 기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금속 뼈대들이 어둠 속에서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준은 숙련된 솜씨로 ‘고철 딱지’를 조종했다. 그의 목적은 단순한 고철이 아니었다. 폐기장 7구역 깊숙한 곳에는 한때 ‘잃어버린 문명’이라 불리던 고대의 유물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했지만, 하준은 그 희미한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을 미로 같은 고철 더미를 헤매던 끝에, 하준은 평소와 다른 기운을 감지했다. 주변의 고철들은 녹슬고 부식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다른, 고요하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다. ‘고철 딱지’의 센서가 경고음을 울렸다. 미지의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이게 뭐야…?”
하준은 조심스럽게 ‘고철 딱지’를 멈추고 조종석에서 내렸다. 손전등을 비추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기 어려웠다. 거대한 고철 더미의 가장 깊숙한 곳, 붕괴된 콘크리트 구조물에 기댄 채 웅크리고 있는 존재. 그것은 메카였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어떤 메카와도 달랐다.
높이는 족히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겉모습이었다. 짙은 회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외장 장갑은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듯했지만, 그 위에는 녹 하나 없이 매끄럽게 흐르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표면은 흡사 검은 현무암 같았으나, 빛을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오묘한 푸른색 광택을 뿜어냈다. 인간적인 실루엣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전설 속의 거대한 맹수를 연상시키는 유려하고도 위협적인 형태였다. 동력원은 꺼진 지 오래인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그 거대한 존재감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게 아직 남아 있었다고?”
하준은 말을 잃었다. 고대 병기에 대한 전설은 많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메카에 다가갔다. ‘고철 딱지’의 스캐너는 여전히 미지의 에너지 반응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고대병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압력을 내뿜었다.
메카의 거대한 다리 부분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부서진 콕핏 해치가 드러났다. 누군가 억지로 열려고 했던 흔적이 있었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하준은 자신의 공구들을 꺼내들었다. 이런 유물은 통째로 옮길 수는 없어도, 핵심 부품 하나라도 건진다면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 전에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수십 년간 쌓인 먼지와 이물질을 걷어내며 해치를 살펴보던 중, 하준의 손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 표면 한가운데, 매끄럽고 둥근 돌기가 박혀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그것은 단순한 돌기가 아니었다. 고대 문자의 형태로 새겨진, 마치 버튼과도 같은 것이었다. 문양 주위에는 육각형의 홈이 섬세하게 파여 있었다.
하준은 망설였다. 그의 직감은 그것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고대 병기의 핵심 기동 장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거나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에잇,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때가 아니지.”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이내 결심한 듯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둥근 문양을 눌렀다.
그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하준을 덮쳤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푸른빛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오더니, 이내 메카 전체를 휘감았다. 고요했던 폐기장 7구역에 거대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웅장하면서도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 메카의 짙은 회색 장갑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하나둘씩 푸른빛을 뿜어내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고대병기의 잠들어 있던 혈관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메카의 내부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진동은 폐기장 전체를 뒤흔들었고, 불안정하게 쌓여 있던 고철 더미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준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땅이 꺼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쿠오오오오오!
정면에서 메카의 콕핏 해치 부분이 천천히, 그리고 거대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푸른빛은 하준의 눈을 멀게 할 지경이었다. 빛이 걷히자, 드러난 콕핏 내부는 그 어떤 첨단 기기나 복잡한 조종 패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중앙에 떠 있는, 마치 살아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색의 거대한 결정체만이 존재했다.
그 결정체는 끊임없이 미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그 안에서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빛의 흐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준이 그 푸른 심장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뇌리에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벼락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언어가 아닌, 순수한 감각과 개념의 형태로.
*힘. 고대. 연결. 조화. 파괴.*
그는 압도적인 정보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듯한 느낌,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 이 푸른 심장은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모든 고대병기를 움직이는, 살아있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었다.
그때였다.
“활동 감지! 폐기장 7구역, 미확인 고에너지 반응! 무장 메카 접근 중!”
‘고철 딱지’의 통신 시스템에서 긴급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하준은 정신을 차렸다. 외부 센서에는 거대한 그림자 세 개가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군사용으로 보이는 정찰 메카들이었다. 폐기장 7구역의 봉인된 영역에서 이런 반응이 잡혔으니,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하준은 푸른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결정체에 닿는 순간, 거대한 메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 거대한 몸체가 지축을 뒤흔들며 서서히 일어섰다.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의 거인처럼. 푸른빛이 그 몸체를 휘감고, 거대한 어깨에서부터 등 뒤로 알 수 없는 빛의 촉수들이 솟아났다.
“젠장, 이게 무슨…!”
하준은 본능적으로 콕핏 안으로 뛰어들었다. 조종간은 없었다. 대신 푸른 심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의 의식이 심장과 연결되자, 놀랍게도 메카의 움직임이 그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메카의 거대한 팔이 움직여 거대한 고철 더미를 밀어냈다.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폐기장 상공을 가로지르는 세 대의 정찰 메카였다. 그들은 하준이 타고 있는 고대병기를 향해 조준 사격을 시작했다. 붉은색 레이저 광선이 밤하늘을 갈랐다.
하준은 패닉에 빠졌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푸른 심장이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그는 생각했다. *피해야 한다.*
그의 의지가 전달되자, 거대한 메카는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다. 육중한 몸체가 믿을 수 없는 민첩함으로 레이저 광선을 피했다. 뒤이어 반대편으로 거대한 팔을 휘두르자, 메카의 팔에서 푸른빛의 잔영이 뒤따랐다. 단순한 잔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듯한 섬광과 함께, 정찰 메카 중 하나를 정확히 강타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정찰 메카는 산산조각이 나며 폭발했다. 하준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이렇게나 강력하다고? 그것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남은 두 대의 정찰 메카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감히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서둘러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당한 것이다.
하준은 거대한 메카의 푸른 심장에 연결된 채, 숨을 헐떡였다. 그의 손바닥은 뜨거운 열기에 후끈거렸다. 폐기장 깊숙한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유물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난 고대병기와 함께, 세상이 알지 못하는 거대한 비밀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힘이 그에게 가져올 미래는 알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제부터, 이 푸른 심장의 고동이 이끄는 대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대병기의 푸른 눈동자가 불길하게 빛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