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금단의 월하(月下) 밀회**

달빛이 짙게 깔린 자하림은 고요했다. 천년 묵은 고목들이 엉켜 하늘을 가렸고, 그 틈새로 새어든 은빛 그림자들이 땅 위를 춤추듯 일렁였다. 청련은 숲 깊숙한 곳, 달빛조차 들지 않는 바위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심장이 조약돌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매번 찾아오는 순간이었지만, 단 한 번도 익숙해진 적 없는 긴장감이었다.

“설아…….”

나직이 읊조린 이름이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그는 이 자하림에 발을 들인 지 한 시간도 넘었다. 선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계의 경계에 위치한 이곳은 그 어떤 감시의 눈길도 쉽게 닿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은신처란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청련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금지된 사랑. 그 단어가 가진 칼날 같은 위험이 매 순간 그의 목을 조여 왔다.

스르륵, 바람조차 없는 숲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기운이 공간을 가르며 다가오는 기척이었다. 청련의 얼굴에 굳어 있던 표정이 삽시간에 풀어졌다. 동시에 그의 몸을 휘감던 선력(仙力)의 보호막도 저절로 약해졌다.

“기다렸나요, 청련 도사님?”

목소리였다. 달콤하고, 때로는 장난스러우며, 허공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아련한, 그녀의 목소리.
그림자 속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더니, 이내 눈부신 은발을 휘날리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옅은 달빛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자태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붉은 입술, 그리고 바람결에 살랑이는 아홉 개의 꼬리. 설아였다. 구미호족의 여인이자, 청련의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청련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두 팔을 벌려 품에 안자,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안겼다. 설아의 머리에서 풍기는 복숭아꽃 향기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도사님이라니. 설아, 벌써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텐가.”
청련이 나직이 투덜거렸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불만보다는 깊은 애정이 묻어 있었다.

“호호, 그럼 무엇이라 부를까요? 서방님?”
설아가 그의 품에 기대어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숲의 정령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청아했다. “그것도 썩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도사님’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어울리지 않아.” 청련은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올려 자신의 눈과 마주하게 했다. 금빛 눈동자 속에는 깊은 장난기와 함께 자신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어울리지 않아, 설아. 우리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연인’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족쇄였다. 신선과 요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존재. 그들의 사랑은 천계의 법도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알아요, 청련. 금지된 사랑이라는 것.” 설아가 그의 손을 깍지 끼어 잡았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그녀의 손이 그의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게 했다. “그래서 더 애틋한 것 아닌가요?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을 넘보는 짜릿함. 매 순간이 영원이 될 것만 같은 조마조마함.”

“짜릿함이라니.” 청련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매 순간이 지옥 같다. 네가 위험에 처할까 봐, 혹은 내 미련함 때문에 네가 상처 입을까 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너를 지켜주고 싶지만, 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무슨 소리예요.” 설아가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당신은 이미 저에게 세상 전부를 주고 있어요. 제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당신이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 종족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지요.”

그녀의 말에 청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의 사랑 때문에 설아가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다른 종족과 섞일 수 없는 고귀한(?) 혈통을 가진 존재들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선계의 수장들은 요괴와의 통혼을 불경하고 혼탁한 피를 섞는 행위로 간주했다. 구미호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인간이나 다른 요괴들과는 어울려도, 신선들과는 깊은 인연을 맺는 것을 꺼렸다. 혹여라도 자신들의 순수한 혈통이 훼손될까 염려해서였다.

청련은 설아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내게 너는 그 어떤 불경함도, 탁함도 없어. 그저 빛이고, 생명이고…… 내 존재의 이유다.”

설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청련. 당신은 저에게 빛이요, 어둠 속을 헤매던 저의 유일한 길이었어요. 당신을 만난 후, 저는 제가 그저 요물(妖物)이 아니라, 사랑을 할 줄 아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한참을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숲의 정령들이 부르는 밤의 노래는 그들의 슬픈 사랑을 위로하는 듯했다.

“청련.” 설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제 부친께서 절 찾아오셨어요.”

청련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설아의 부친, 구미호족의 족장은 강력한 요력(妖力)을 지닌 냉혹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설아의 행방을 좇기 시작했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해질 터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청련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금 긴장감이 서렸다.

“요즘 신선계에서 요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대요. 특히 서역 자하림 부근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혹 저와 관련이 있을까 봐 불안해서 오셨다고요.”

청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스승, 연화진인(蓮花眞人)이 얼마 전 그에게 경고를 준 적이 있었다. “청련아, 네 수련에 게으름이 생긴 듯하구나. 너의 기운이 어수선하니,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특히 자하림 쪽으로는 발걸음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게다. 최근 그쪽에 심상찮은 요기(妖氣)가 감지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스승은 그들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도.

“설아, 당분간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청련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다.

설아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 돼요, 청련! 저는 당신 없이…….”

“위험해, 설아.” 청련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내 스승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다. 자하림에 감지되는 요기가 너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일 거야. 만약 내가 너와 밀회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선계의 엄격한 법도 앞에서,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터였다. 최악의 경우, 설아는 요력을 봉인당하거나 소멸될 수도 있었다. 자신 또한 신선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영원히 봉인되는 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당신이 벌을 받게 되는 것은 싫어요.” 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처럼 창백해졌다. “하지만 당신을 보지 못하는 것은…… 저는 견딜 수 없어요. 청련.”

“견뎌야 해. 우리 둘 모두를 위해서.” 청련은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강렬한 포옹이었다. “이대로 발각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 거야. 나는 차라리 너를 잠시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너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어.”

“정말…… 정말이에요?” 설아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이슬이 맺혔다.

“맹세코. 너 없이 존재하는 세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청련은 그녀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그러니 잠시만, 잠시만 이 시련을 견뎌주라. 나는 반드시 방법을 찾을 거야. 우리 둘이 함께, 당당히 설 수 있는 세상을.”

그의 말은 공허한 약속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신선계의 고고한 법도와, 요괴족의 편견 어린 시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 청련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설아와 함께할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약속해요.” 설아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꼭…… 꼭 그렇게 해줄 거라고.”

“약속한다.” 청련은 그녀의 이마에 길게 입을 맞추었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그때였다. 숲의 먼 곳에서 희미하게 영력이 감지되는 듯했다. 청련의 얼굴에 순간 긴박감이 스쳤다.

“어서 가야 해, 설아.” 그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떼어놓으며 말했다. “내 기운으로 너의 흔적을 감출 테니,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돌아가거라.”

“청련!” 설아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 마. 나는 괜찮을 테니.” 청련은 손을 뻗어 설아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이상 몰래 숨어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거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청련의 몸에서 푸른빛의 선력(仙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선력은 설아의 몸을 감싸 안았고, 그녀의 요기(妖氣)를 완벽하게 은폐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신비로운 부적 하나가 생성되어 설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이것이 너를 보호해 줄 거다. 절대 잃어버리지 마.”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했지만, 애써 웃음을 지었다. “몸 조심해요, 청련.”

그리고는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그녀는 바람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져 갔다. 은빛 꼬리 아홉 개가 마지막으로 반짝이더니, 이내 자하림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청련은 그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축 늘어진 어깨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품에서 설아의 복숭아꽃 향기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밤공기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기다려라, 설아.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할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직이 읊조린 그의 맹세는, 달빛 아래 홀로 남은 청련의 굳은 의지를 담아 숲 속으로 깊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먼 미래를 향해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신선계의 엄격한 규율과 요괴족의 뿌리 깊은 불신. 그 모든 것을 넘어서야만 이룰 수 있는 금지된 사랑을 위해서.

이 밤은 길고, 그들의 여정은 더욱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