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 같은 밤, 삐걱이는 일상
김현우는 늦은 밤, 불 꺼진 아파트 704호 거실에 널브러진 채 스마트폰만 응시하고 있었다. 낡은 소파 가죽이 몸을 받쳐주는 감촉은 익숙했지만, 오늘의 피로를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학도를 꿈꾸며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의 현실은 고작 데이터 정리와 문서 작성이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주말에 조립하다 만 로봇 팔 키트가 해체된 부품들을 뽐내듯 펼쳐져 있었다. 취미는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젠장, 오늘도 새벽이네.”
나직이 중얼거린 현우는 손가락을 움직여 웹툰 다음 화를 넘겼다. 밤 11시 37분. 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그의 몸은 이미 침대 속으로 가라앉고 싶어 아우성쳤다. 그때였다.
*깜빡.*
거실 천장의 LED등이 한 번 깜빡였다. 현우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압 불안정인가? 아니면 전등 수명이 다 됐나.’
이사 온 지 3년째,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낡은 건물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노후 현상이라 생각했다. 피곤한 머리는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했다.
*깜빡.* *깜빡.*
두 번째와 세 번째 깜빡임은 좀 더 빨랐다. 거의 동시에, 현우의 눈을 가늘게 뜨게 할 만큼 짧은 간격이었다. 이제야 좀 거슬리는군.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너까지 이러냐.”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천장을 올려다보자, LED등은 거짓말처럼 다시 안정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웹툰에 집중하려 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팅.*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현우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는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그는 혹시나 싶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식기 건조대에 올려둔 접시가 제대로 놓이지 않아 떨어진 걸까? 하지만 그 소리는 유리잔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얇고 가벼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가까웠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식기 건조대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싱크대 위, 찬장 안,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때 그의 시선이 바닥에 닿았다. 싱크대 하단 수납장 문틈으로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현우는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오래된 건전지였다. 아마도 오래전에 버려진 것 같은데, 왜 이곳에? 그리고 왜 지금 나타난 걸까?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건전지를 한참 들여다보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은 떨쳐내기 어려웠다. 현우는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스마트폰을 다시 쥐는 순간, 이번에는 거실 테이블 위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현우가 즐겨 마시는 머그컵이 놓여 있었다. 그 컵이 아주 미세하게,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그러나 분명히 스스로 움직였다. 그것은 책상 위를 *스르륵* 하고 아주 천천히, 불과 몇 밀리미터 정도 미끄러졌다. 그의 눈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뭐야…?”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지진이라고 하기엔 다른 물건들은 고요했다. 천장의 전등도, 벽에 걸린 액자도, 창밖의 풍경도 모두 멈춰 있었다. 오직 그 머그컵만이 기이하게 움직였다. 그는 손을 뻗어 컵을 움켜쥐었다. 컵은 차갑고 단단했다. 특별한 진동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우는 컵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눈을 부릅뜨고 컵을 주시했다. 1분, 2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심장 박동 소리가 고요한 아파트 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인 건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현우에게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낡은 건물이라 밤에는 유난히 미세한 진동이 심하다든가, 아니면 그의 시야가 착시를 일으켰다든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눈이 본 것은 명백한 움직임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낮고 불쾌한 *웅-* 하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현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지? 냉장고? 아니, 세탁기? 하지만 모두 꺼져 있었다. 진동음은 점차 커졌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소리는 벽 안쪽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현우는 소파에서 내려와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웅- 지직- 웅- 틱.*
기계가 작동하는 듯한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소리였다. 마치 고장 난 서버 룸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소리는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벽을 따라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듯했다. 소리가 움직일 때마다 벽 안쪽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긁히는 듯한 *끽-* 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현우는 섬뜩한 기분에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했다. 증거가 필요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을.
그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는 순간, 거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로봇 팔 키트의 부품들이 갑자기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품들은 마치 조립되지 않은 채로 스스로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보였다. 작은 나사못들이 스스로 굴러다니고, 플라스틱 암(arm) 부분이 미세하게 떨렸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가 그의 이성을 잠식하려 했다. 그는 벽을 등지고 뒷걸음질 쳤다. 그때, 가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실 중앙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현우의 머그컵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투명한 손에 쥐어진 것처럼,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윙- 웅-*
떠오르는 컵 아래에서 희미한, 금속성의 마찰음과 진동음이 들려왔다. 컵은 바닥에서 약 30cm 정도 떠올랐다. 중력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현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컵에 고정되어 있었다.
컵은 잠시 공중에 멈춰 있었다. 마치 그 현상을 연출한 존재가 현우의 반응을 살피는 것처럼. 그리고 이내, 컵은 급가속하여 반대편 벽을 향해 날아갔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컵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유리와 도자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충격으로 벽에는 작은 금이 가고, 벽지가 살짝 찢어졌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목에서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어떤 과학적인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기괴함 그 자체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컵 파편이 흩뿌려진 벽에 닿았다. 찢어진 벽지 틈새로 콘크리트 벽의 단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아주 희미하게 번들거리는 금속성의 표면을 보았다.
그때, 현우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위협적이었다. 마치 벽 안쪽에 숨겨진 거대한 기계 장치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굉음이었다.
*웅- 지지지직- 콰르르릉!*
그것은 유령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거대한 엔진이 예열을 마친 후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기 직전의, 차갑고 기계적인 비명에 가까웠다. 그의 아파트 벽 안에서, 대체 무엇이 깨어나고 있는 것일까.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그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공포에 질린 눈을 고정했다. 그의 평범한 일상은, 이 칠흑 같은 밤과 함께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