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서울, 빌딩 숲의 첨단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숨구멍을 찾아냈다. 낡은 상가 건물의 옥상. 허물어진 벤치와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한 그곳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윤은 류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의 단단한 품은 어떤 한기보다 따뜻했다.

“괜찮아, 서윤아.”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서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류진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어둠을 다스리는 야행족. 인간과는 공존할 수 없는, 철저히 분리된 세상의 존재. 그러나 그는 지금, 인간인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서윤은 고개를 들어 류진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애정, 걱정,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체념의 그림자. 지난밤의 일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류진의 종족이 사는 그림자 세계의 문턱까지 발을 들였던 아찔한 순간. 그들의 관계가 세상의 금기를 깨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밤.

“류진아… 정말 괜찮을까, 우리?”

서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여린 인간일 뿐이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들이 그들을 찢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류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은 차가웠지만, 닿는 순간 온몸으로 전율이 퍼졌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단호한 그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그 말에 서윤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뛰었다. 그의 확고함이 그녀의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웠다. 하지만, 그 순간, 류진의 몸이 미세하게 경직되는 것을 서윤은 느꼈다. 그의 어깨가 굳었고,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가운 빙하처럼 변했다.

“왜…?”

서윤이 불안하게 물었다. 류진의 시선이 옥상 난간 너머, 그림자가 짙게 깔린 빌딩 숲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왔군.”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윤은 그의 시선을 따라갔지만,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류진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은 마치 칼날이 목을 스치는 듯한 섬뜩함을 안겨주었다.

어둠이 짙어지는 듯했다. 멀쩡하던 가로등이 깜빡거리더니 이내 꺼졌다. 순식간에 옥상은 깊은 어둠에 잠겼고, 오직 빌딩들의 불빛만이 멀리서 점점이 박혀 있었다.

서윤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인간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내지 못했구나, 류진.”

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 류진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류진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경고의 기운이 서윤을 얼어붙게 했다.

“가람 삼촌.”

류진의 목소리에서 싸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류진과 같은 야행족 특유의 창백한 피부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지만, 그의 눈은 류진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존재 자체가 주변의 모든 열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람은 류진의 품에 안긴 서윤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었다. 그 시선은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했다. 서윤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네가 감히 금기를 어기고 택한 존재인가?” 가람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경멸은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 계집. 너는 어째서 이토록 어리석은 길을 택했느냐.”

류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서윤을 등 뒤로 숨겼다. 그의 어깨가 굳건하게 버티고 섰다.

“삼촌,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없다고? 인간과의 접촉, 인간에게 향한 정. 그것이야말로 우리 종족에게 가장 엄격히 금지된 죄악이다, 류진. 잊었느냐? 오랜 옛날,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가람의 목소리가 점차 위압적으로 변했다. 그의 발밑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했다. 서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류진의 삼촌이라는 자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 전체가 억눌리는 느낌이었다.

“그 비극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너는 이 인간 계집 하나 때문에 그 모든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 야행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는 것이냐?”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삼촌의 편협한 사고방식입니다!” 류진이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과거의 그들이 아닙니다!”

“변했다? 어리석은 소리! 인간의 본질은 언제나 같았다. 탐욕과 파멸. 네가 겪었던 그 짧은 시간이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가람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계집을 놓아라, 류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을 지우고,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다.”

서윤은 류진의 등 뒤에서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너무나 생생했다.

류진은 가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자비? 삼촌, 저에게 자비는 오직 서윤과 함께하는 삶뿐입니다.” 류진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저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야행족의 모든 존재와 맞서는 일이라 할지라도.”

류진의 말에 가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내 그의 얼굴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네 이놈! 감히! 너의 어리석음이 어떤 파멸을 불러올지 상상도 못 하는군!”

가람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거대한 뱀처럼 솟아올랐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류진과 서윤을 향해 덮쳐들었다. 옥상의 난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순식간에 금이 가고 부서졌다.

류진은 서윤을 자신의 등 뒤로 완전히 숨긴 채 몸을 돌렸다. 그의 손에서 검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며 가람의 그림자 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강한 충격파가 옥상을 휩쓸었다. 서윤은 비틀거렸지만, 류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등에서 거대한 그림자 날개가 솟아났다. 날카로운 깃털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빛났다. 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형상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의 야행족 전사의 모습, 어둠의 심장을 가진 자의 진정한 형상이었다.

“서윤아, 눈 감아!”

류진의 외침에 서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감은 눈꺼풀 너머로도 류진과 가람의 거대한 힘이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옥상의 바닥이 흔들리고, 강풍이 몰아쳤다. 건물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너의 어리석은 고집이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류진!” 가람의 목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그리고 그 파멸은 너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 계집과의 금기를 깨트린 대가로, 머지않아 ‘심판의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의 어리석은 사랑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깨닫게 될 테지!”

가람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거대한 어둠의 폭풍이 옥상을 휩쓸었다. 서윤은 류진의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그 폭풍이 지나가고, 모든 것이 잠잠해졌을 때,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가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옥상은 폭풍이 할퀴고 간 듯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류진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 한쪽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류진!”

서윤은 급히 그의 뺨을 감쌌다. 따뜻한 그녀의 손길이 그의 차가운 피부에 닿았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 큰 상처는 아니다.” 류진은 애써 미소 지으려 했지만, 그의 눈빛은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삼촌이… 심판의 날이라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서윤의 목소리는 떨렸다.

류진은 서윤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의 눈빛은 깊은 슬픔과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서윤아… 너와 내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가람 삼촌의 말은… 우리 종족에게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예언과 관련된 경고였다.”

“예언?”

“그래. 인간과 야행족의 금지된 결합이… 두 세계의 균열을 불러오고, 결국 모든 존재에게 심판을 가져다줄 거라는 예언.”

서윤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두 세계의 균열. 모든 존재의 심판. 그녀의 존재 자체가, 류진과의 사랑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럴 리 없어.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류진은 슬프게 웃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죄가 되는 세상이야.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옥상 저 멀리서 희미한 빛들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것은 가람 삼촌의 공격과는 또 다른, 훨씬 더 거대하고 불길한 기운이었다.

류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이건… 야수 일족의 징표다. 그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어.”

서윤은 류진의 품에 안겨 그의 단단한 심장 박동을 느꼈다. 심판의 날. 두 세계의 균열. 그리고 또 다른 종족의 등장. 그들의 사랑은 이제 세상의 모든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이 지독한 금기된 사랑이,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라는 것을.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