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잿빛 도시의 붉은 복수

도시의 폐허는 언제나 익숙한 죽음의 냄새를 풍겼다. 눅눅한 곰팡이와 부패한 살점, 그리고 어딘가 스며들어 있는 차가운 쇳내. 지혁은 녹슨 철골이 앙상하게 드러난 2층 건물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거대한 백화점 건물은 마치 거인의 뼈대처럼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간판의 잔해가 바람에 흔들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음산한 소리를 냈다.

지혁은 품에 안고 있던 낡은 저격총의 개머리판을 어깨에 고쳐 댔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밤샘 수색은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보급품을 찾아 나선 게 어제저녁이었으니, 이젠 새벽이 다가오고 있을 터였다. 그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싸웠고, 그 싸움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민준.

그 이름이 지혁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강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입술을 깨물자 피 맛이 퍼졌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저주받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혁아, 빨리! 이쪽으로 와!”*

*민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뒤에서는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감염자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쫓아왔다. 썩은 살점과 내장의 악취가 코를 찔렀고,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폐 속으로 비린내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무너져 내린 고가도로의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도시는 이미 붉은 피와 회색 재로 뒤덮인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내가 소리쳤다. 팔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지반이 흔들리고, 난간마저 삐걱거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셀 수 없는 감염자들이 마치 거대한 꿈틀거리는 덩어리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순간이었다.*

*민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는 그것이 동반자로서의 결의라고 믿었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지혁아… 미안하다.”*

*그 말과 함께, 등 뒤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내 몸은 허공으로 솟구쳤고, 한순간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빠르게 멀어져 가는 민준의 얼굴.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아득한 바닥을 향해 뻗어 있는 수많은 감염자들의 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등에서부터 솟구친 불타는 듯한 배신감과, 곧 덮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가 뒤섞여 나의 숨통을 졸랐다.*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준은 내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살 길을 위해 나를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 버렸다는 것을.*

*그날, 나는 수많은 감염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피와 살점이 뒤엉킨 지옥에서 간신히 기어 나왔을 때, 내 몸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이 상처받은 것은 육체가 아니었다. 산산조각 난 믿음과, 심장에 박힌 배신의 비수였다. 그 순간부터, 나의 삶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흐르게 되었다. 민준에게,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것.*

***

“크윽….”

지혁은 다시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마음속 깊이 파인 상처는 여전히 곪아 있었다. 그는 총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지형이 대충 그려진, 조악한 지도였다. 빨간색 펜으로 표시된 작은 동그라미. ‘안식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그곳의 리더가 바로, 민준이었다.

며칠 전,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방송을 듣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생존자 그룹 ‘새벽녘’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더 이상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리더 민준을 중심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준의 목소리는 한때 지혁에게 희망이었던 그 목소리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독기 가득한 칼날처럼 심장을 꿰뚫었다. ‘새벽녘’이라니. 역겹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민준은 그의 배신 위에, 자신만의 ‘새벽녘’을 건설했던 것이다.

지혁은 이를 갈았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를 믿었던 자신은 개미만큼도 안 되는 존재였을까. 민준은 그렇게 나를 버리고, 자신은 보란 듯이 살아남아 훌륭한 리더 행세를 하고 있었다. 역겨웠다.

그때, 건물 아래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으읍… 으으읍….” 감염자 특유의 긁는 소리였다. 지혁은 지도를 접어 넣고 다시 총을 들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차갑고 건조한 그의 삶이었다.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향했다. 계단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터라, 그는 난간을 잡고 벽을 타고 내려가는 위험한 방법을 택했다. 낡은 콘크리트 조각들이 발아래에서 부스러졌다.

탁!

그가 발을 디딘 곳은 한때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을 듯한 행거였다. 그 소리에 놀란 감염자 두 마리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옷을 걸친 채,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풀어 오른 괴물들. 지혁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텅! 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감염자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녀석들은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이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혁은 감각 없이 시체를 훑어봤다. 혹시라도 쓸만한 게 있을까 해서. 아니나 다를까, 감염자 중 한 마리는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허리춤에 채워진 주머니에서 반쯤 찬 탄창 하나를 발견했다.

“젠장.”

지혁은 득템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전리품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지옥에서는 작은 것 하나도 소중했다.

그는 어둠 속을 헤치며 건물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옅은 회색빛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새벽녘’의 거점.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안전해 보이는 그곳. 한때는 그곳이 지혁에게도 꿈같은 장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곳은 복수의 무대였다.

지혁은 총을 다시 어깨에 멨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잠을 잘 틈은 없었다. 민준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때, 지혁의 모든 미래는 산산조각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길 뿐이었다. 그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의 핏발 선 눈이 섬광처럼 번득였다.

“기다려라, 민준. 네가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내가 다시 돌려줄 테니.”

차가운 맹세가 잿빛 새벽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복수의 칼날은 이미 뽑혔고, 이제 피를 보지 않고는 칼집에 들어갈 수 없을 터였다. 지혁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민준이 있는 ‘새벽녘’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의 심장은 고통과 증오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시작될 피바람 속에서, 누가 살아남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