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헬리오스, 1142년 10월 27일, 심우주 섹터 감마-7**

깊고, 아주 깊은 우주. ‘헬리오스’는 검은 심연 속을 유영하는 외로운 한 점이었다. 무한한 침묵과 별들의 차가운 빛만이 가득한 곳에서, 헬리오스호는 인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수십 년째 표류 중이었다. 길고 고된 항해는 승무원들의 얼굴에 피로를 새겼지만, 동시에 어떤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했다. 헬리오스, 즉 ‘태양’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곳은 영원한 밤의 영역이었다.

“선장님, 에너지 감지 센서에 이상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탐사관 최서하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함교 전체에 울렸다. 서하의 평소 차분한 어조에도 미세한 동요가 느껴졌다. 선장 이한은 고개를 들어 메인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한한 암흑 속에 오직 별빛만이 점점이 박혀 있던 화면 한가운데에, 이제는 희미한 주황색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상 징후라고? 뭘 감지한 거지?” 한의 목소리에도 긴장이 스몄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이상’하다는 건 종종 ‘위험’과 동의어였다.

“기록된 바 없는 에너지 패턴입니다. 기존 항성계의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주변 시공간에 미세한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 서하?” 부함장 박준호가 나섰다. “우주 먼지라도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건가? 아니면 감지 오류?”

“아닙니다, 부함장님. 감지기는 완벽히 작동 중입니다. 그리고… ‘접근’이 아닙니다. 저 에너지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 저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은 한참 동안 스크린을 노려봤다. 인류가 이 우주에서 마주한 것은 대부분 생명 없는 암석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물리 현상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하가 보고하는 것은 달랐다. 미지의, 고정된 에너지원.

“항로를 수정한다. 목표 지점으로 최단 거리 이동. 속도는 최대로.” 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함교에는 일순 긴장감이 고조됐다.

수 시간의 항해 끝에, 헬리오스호는 문제의 지점에 도달했다. 스크린에 포착된 것은, 예측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거대한 행성도, 뿜어져 나오는 성운도 아니었다. 대신,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홀로 떠 있는,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장님… 저게… 대체 뭡니까?” 최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완벽한 구도 아니었고, 정교한 정육면체도 아니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든 그 형태가 미묘하게 변하는 듯한, 시각적인 착시를 일으키는 물체였다. 표면은 흡사 거울처럼 매끄러웠으나, 반사되는 것은 주변 우주가 아니라 그 너머의, 알 수 없는 색과 형상이었다. 끊임없이 뒤틀리는 심연과도 같은 색, 동시에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는 무늬.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러나 동시에 완벽한 인공물처럼 보였다.

“탐사정 발진 준비. 과학팀, 의료팀 대기. 최대한의 데이터 수집을 지시한다. 하지만… 어떤 직접적인 접촉도 금지한다. 일단은 관찰이다.” 한의 지시는 단호했다.

탐사정 ‘갈매기’가 헬리오스의 격납고에서 분리되어 미지의 물체로 향했다. 무인 탐사 드론들이 먼저 전방으로 나섰고, 곧이어 과학팀장 아냐 박사가 이끄는 소규모 탐사팀이 뒤를 따랐다. 아냐 박사는 인류가 마주한 우주적 미스터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선장님, 표면에서 어떠한 구성 물질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스캔 자체가 통과되는 느낌입니다.” 아냐 박사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 같습니다.”

“이상이 감지될 시 즉시 귀환한다, 아냐 박사.” 한은 불안한 예감을 애써 눌렀다.

탐사정은 미지의 유물 주변을 맴돌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유물은 침묵 속에 떠 있었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탐사정 내부의 승무원들은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탐사팀원 중 한 명인 공학자 김민준이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웅웅거리는… 낮은 진동 같은…”

“민준 씨, 착각일 겁니다. 진동 센서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아냐 박사가 답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미묘한 불안감이 스쳤다.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는 먹먹함과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물의 표면에 새겨진, 끊임없이 변하던 무늬가 갑자기 멈칫했다. 마치 숨을 들이쉬는 듯한 정적. 그리고는…

팟!

유물의 한가운데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은 탐사정 내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동시에 통신이 끊어졌다.

“아냐 박사! 민준 씨! 들리십니까?!” 한의 다급한 외침이 메아리쳤다.

화면은 이내 암전 되었고, 헬리오스호의 함교에는 공포에 질린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메인 스크린을 응시했다. 빛이 사라진 자리, 유물은 여전히 그곳에 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표면의 무늬는 사라지고, 대신 검은 색의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실루엣이 비쳤다.

“선장님! 저것 좀 보세요!” 최서하가 비명을 질렀다.

유물의 검은 표면에서, 탐사정 갈매기 내부의 아냐 박사와 민준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허공에 뜬 채로, 눈을 크게 뜨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유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닌,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과 동시에 기괴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물은… 아주 미세하게, 헬리오스호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다음 먹이를 향해.

한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이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그 순간, 헬리오스호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깜빡이며 꺼졌다. 함교 전체가 암흑 속에 잠겼고, 이내 비상등이 붉은빛을 토해내며 간신히 시야를 확보했다.

“젠장! 무슨 일이야?!” 박준호가 소리쳤다.

“메인 전원 상실! 보조 전원도 불안정합니다!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에요!” 최서하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우주의 침묵을 찢고 들어오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웅웅거리는 진동음. 그것은 아까 민준이 말했던 바로 그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을 쉬는 듯한 소리.

아니, 어쩌면 그 소리는… 헬리오스호가 아닌, 그들의 뇌 속에서 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함교 바깥의 복도에서,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무언가가 벽을 긁는 듯한 섬뜩한 마찰음이 이어졌다. 한은 불안한 시선을 문 쪽으로 향했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 속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어딘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헬리오스호의 승무원복을 입고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한 우주선이 아니었다. 인류의 희망이던 헬리오스호는, 심우주에서 발견한 그 알 수 없는 유물에 의해, 지옥의 문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존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