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심연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탐사선 ‘헬리오스’만이 희미한 생명의 빛을 깜빡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선내 시계는 122703.04.18.23:59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구의 시간 개념으로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전의 그 옛날 우주선이 처음 발사되었던 날로부터 흘러온 아득한 시간이었다.
“하나, 전방 블랙홀 너머 성운 잔여물 데이터 분석 결과는?”
선장 카이사르의 목소리가 하나가 앉아있는 메인 콘솔로 흘러들어왔다. 이하나, 헬리오스호의 최연소 항해사이자 천체물리학자. 나른한 심우주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죄송합니다, 선장님! 어… 네. 장미 성운 외곽 잔여물은 예상보다 밀도가 낮습니다. 항로에는 문제가 없으며, 특이 은하 활동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지루함이 묻어났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규격화된 관측과 분석. 심우주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지루한 공간이기도 했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난 여정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들의 임무는 마치 이 거대한 우주의 무한한 공백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 수고했다.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미지의 영역은 언제나 위험을 품고 있는 법.”
카이사르 선장의 나지막한 경고음이 들렸지만, 하나는 이미 다음 업무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정적을 깨는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채웠다. 모두의 시선이 메인 스크린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시스템 오류인가?” 김대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헬리오스호의 보안 책임자였다.
“아닙니다! 미지의 에너지 신호 포착! 선장님, 감지되지 않던 영역에서 갑자기 강력한 파장이…”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스크린에는 거대한 에너지 곡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나는 얼어붙은 듯 스크린을 노려봤다. 그녀가 보았던 어떤 천체 현상과도 달랐다. 너무나도… 인위적인 느낌이었다.
“위치 특정! 장미 성운 중심부, 항해 기록에 없는 새로운 시공간 왜곡 현상입니다!”
“시공간 왜곡? 박사,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카이사르 선장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헬리오스호의 수석 과학자, 박 박사가 돋보기 안경을 고쳐 쓰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장님, 이건… 이건 엄청난 발견입니다! 이런 형태의 에너지파는 제가 아는 어떤 천체에서도 방출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미지의 문명, 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박 박사의 눈은 이미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하나는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지의 문명.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존재들. 하지만 동시에 인류가 가장 두려워했던 미지의 위협이기도 했다.
“함선 속도 감속! 탐색 모드 전환! 정비팀은 언제든 외부 활동 준비를 해라. 하나, 이 신호의 근원지를 추적해.”
선장의 단호한 명령에 함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헬리오스호는 거대한 몸체를 뒤척이며 미지의 신호가 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심우주 공간을 가르며 나아간 지 수십 분. 마침내 스크린에 미지의 물체가 포착되었다.
“선장님, 육안 확인 가능합니다! 신호의 진원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장미 성운의 붉고 푸른 가스들 사이로 홀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결정체가 떠 있었다.
“이게… 뭐야?” 김대위의 목소리가 넋을 잃은 듯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우주를 조각해 만든 예술품 같았다. 날카로우면서도 유려한 기하학적인 선들이 얽히고설켜 있었고, 육면체와 오면체, 그리고 그 어떤 도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크기는 헬리오스호의 족히 다섯 배는 되어 보였다. 결정체의 표면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내부에서부터 주기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는데,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는 듯했다.
“경이롭군… 이런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박 박사는 숨을 헐떡이며 스크린에 코를 박을 기세였다.
“외부 분석 결과는? 생체 반응은?” 선장의 목소리는 흥분보다는 경계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생체 반응은 없습니다, 선장님. 하지만 에너지 수치는 계속해서 상승 중입니다. 주변 공간의 시공간 왜곡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하나는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마치 잠자는 거인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접근 허가. 외부 탐사팀 준비시켜. 나와 박 박사, 그리고 김대위가 직접 나간다. 하나, 너는 함교에서 모든 시스템을 주시해.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즉시 보고하고, 내 명령 없이도 긴급 탈출 절차를 밟아라.”
선장의 말은 무거웠다. 그가 얼마나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탐사선은 조심스럽게 거대한 결정체에 접근했다. 헬리오스호의 탐사정 한 대가 분리되어 유물을 향해 나아갔다. 탐사정 안에는 카이사르 선장, 박 박사, 그리고 김대위가 타고 있었다.
“이게… 전부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건가? 이음매가 전혀 보이지 않아.” 박 박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탐사정은 결정체의 표면에 거의 닿을 듯이 근접했다. 거대한 수정 궁전과도 같은 그 존재 앞에서, 인류의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탐사정은 한낱 작은 먼지처럼 보였다.
“표면에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선장님. 어떤 문명의 언어일까요? 아니면… 경고일까요?” 김대위가 홀로그램으로 확대된 문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결정체 표면에 손을 뻗으려던 박 박사의 몸이 움찔했다.
“뭐지? 이건…”
결정체의 표면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잠자던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균열은 순식간에 탐사정 주변을 감쌌다.
“안 돼! 물러서! 긴급 후퇴!” 카이사르 선장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결정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빛을 내뿜더니, 탐사정을 향해 거대한 촉수 같은 에너지 파동을 뻗었다.
“으아아악!”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끊겼다. 함교에는 절규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선장님! 박사님! 김대위님! 응답하세요! 응답하라!” 하나는 미친 듯이 통신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답이 없었다. 탐사정의 신호는 완전히 사라졌다.
“에너지 파동이 함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외침에 하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촉수가 헬리오스호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헬리오스호의 방어막은 이미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었지만, 그 빛의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과 함께 함선 전체가 흔들렸다.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리고, 여기저기서 스파크가 튀었다.
“방어막 70% 손상! 60%! 이대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하나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이대로 끝인가? 인류의 희망을 싣고 떠난 헬리오스호가, 미지의 유물 앞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건가?
그때, 그녀의 눈앞에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듯한 빛이었다. 마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잊고 있던 아득한 기억의 파편들이 폭풍처럼 밀려들어왔다.
‘미지의 힘… 너는 그 힘을 받아들일 것인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그녀의 뇌리를 울렸다. 동시에 그녀의 손목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선물했던 평범한 팔찌가 강렬한 푸른빛을 발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팔찌의 작은 펜던트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하며 그녀의 손목을 죄어왔다.
“이게… 뭐야?”
하나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눈을 뜬 그녀의 시야는 빛으로 가득 찼다. 함교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오직 그녀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바로 헬리오스호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결정체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작고 아름다운 빛의 조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형태였다.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하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함교 전체를 집어삼키는 순간, 헬리오스호는 또 한 번 격렬한 충격파에 휩싸였다. 미지의 유물과, 그 유물이 품고 있던 고대의 힘이, 이하나라는 평범한 항해사의 손을 통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과연 이 거대한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이 힘은 그녀에게 구원이 될까, 아니면 파멸을 가져다줄까?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