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의 문 (深淵의 門)

지독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재혁은 랜턴을 비춰 너른 동굴의 바닥을 살폈다. 흙먼지 위에 흩뿌려진 자잘한 돌조각들은 이 공간이 오랜 시간 동안 잊혀 있었다는 증거였다. 헬멧 안으로 파고드는 끈적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밖은 이미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이 지하 깊숙한 곳은 마치 세상의 종말조차 비웃듯, 그들만의 묵언의 언어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봐, 재혁! 이쪽이야.”

저편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작은 망치로 벽의 이끼를 긁어내며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동료 중 유일하게 고고학에 조예가 깊은 유진은 이 미지의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감춰뒀던 탐험가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재혁은 어깨에 멘 소총을 고쳐 잡고 유진에게 다가갔다. 강민은 그들의 뒤편에서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두 눈만큼은 짐승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뭔가 발견했어?” 재혁이 물었다.

유진은 벽에 그려진 희미한 문양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이 문양… 전에 본 적 없는 양식이에요. 어느 고대 문명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흔적이에요. 바깥 세상의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랜턴 불빛이 문양을 따라 흐르자, 고대 벽화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거대한 뱀의 형상과 그 앞에서 무릎 꿇은 듯한 인간의 모습. 그리고 뱀의 머리 위로는 마치 별자리처럼 오밀조밀하게 배열된 기하학적 도형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뱀… 신앙이었을까요?” 재혁이 중얼거렸다.

“아니요. 이건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경고 같아요.” 유진이 손가락으로 뱀의 입 부분에 그려진 기괴한 형태를 가리켰다. 마치 핏자국처럼 번져 있는 붉은 안료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 도형들은 단순한 별자리가 아니에요. 일종의 좌표 같기도 하고… 어떤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스스슥’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재혁과 유진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강민은 이미 총구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겨누고 있었다.

“젠장, 또 놈들인가?” 강민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조차 그들은 안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이곳에 서식하는 감염자들은 지상과는 또 다른 끔찍한 모습으로 진화해 있었다. 피부는 시체처럼 푸르스름하게 변색되었고, 눈은 빛을 잃었지만 귀는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여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소리가 멈췄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크게 느껴지는 압도적인 침묵이었다.

“강민, 뭐가 보여?” 재혁이 속삭였다.

“아니, 아무것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이내 그 붉은 점은 수십 개로 불어나며 어둠을 찢고 달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감염자들이었다. 그들은 뼈만 남은 앙상한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네 발로 기어오는 일반 감염자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접근해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사격!” 강민이 외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소총탄이 어둠을 가르고 붉은 눈동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선두에 서있던 감염자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끈적한 체액을 사방에 뿌렸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감염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의 죽음마저 먹잇감으로 여기는 듯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이빨 대신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아나 있었고, 썩어가는 살점 사이로는 기괴한 흉터들이 꿈틀거렸다.

재혁도 망설이지 않고 총을 들었다. 퉁, 퉁! 그의 소총에서 발사된 탄환이 정확히 감염자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유진! 문양 해독은 잠시 멈춰! 이쪽으로 와!” 재혁이 소리쳤다.

유진은 망설임 없이 발굴 도구를 내던지고 재혁과 강민의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지만, 주 목적은 전투가 아닌 보조와 해독이었다. 그녀가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너무 많아! 퇴로를 찾아야 해!” 강민이 고함을 질렀다. 그의 총열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순간, 재혁의 랜턴 불빛이 동굴 안쪽 깊숙이 자리한 거대한 구조물을 비췄다. 마치 거인의 성문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그것은 자연적인 암벽이 아니었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빈틈없이 맞물려 만들어진 원형의 문이었다. 문에는 아까 유진이 발견했던 뱀 문양과 동일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 문이다! 저기로 들어가야 해!” 재혁이 외쳤다.

감염자들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의 썩은 숨결이 피부에 닿는 듯했다. 재혁은 마지막 탄창을 갈아 끼우며 문으로 전력 질주했다. 강민도 그의 뒤를 따랐다. 유진은 그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총탄을 피하며 뛰었다.

쾅! 쾅! 쾅!

문은 육중하고 견고했다. 재혁이 아무리 몸을 부딪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염자들의 날카로운 발톱이 이미 그의 등 뒤를 스쳤다.

“유진! 이 문…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재혁이 절규하듯 외쳤다.

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문에 새겨진 문양을 응시했다. 이빨을 갈며 달려드는 감염자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녀의 눈은 미친 듯이 빛나고 있었다.

“이 문양… 아까 벽화에서 본 도형들… 이걸 순서대로 누르거나 돌리는 방식일 거예요! 맞춰야 해요!”

“뭐라고? 지금 그걸 맞추라는 거야?!” 강민이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감염자들이 그들의 뒤를 완전히 막아섰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문양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 문양은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달! 그리고… 이건 밤하늘의 특정 별자리와 일치해요!”

재혁은 유진의 설명을 들으며 망설임 없이 그녀가 가리킨 문양을 손으로 짚었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다음은 달! 그리고 별자리!

그가 세 번째 문양에 손을 대는 순간,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거대한 마찰음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앙!

문양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붉은색, 그리고 금색의 빛이 섬광처럼 터져 나오며 감염자들의 접근을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이내 굉음과 함께 육중한 돌문이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미지의 문이 마침내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들어 가자!” 재혁이 외쳤다.

셋은 비좁게 열린 틈 사이로 몸을 던졌다. 강민은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며 감염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들이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돌문은 다시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쿵! 쾅!

마지막 감염자의 비명이 문 틈새로 겨우 비집고 들어왔다. 그들의 뒤편으로 돌문이 완전히 닫히자, 동굴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다. 이젠 외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격리된 듯한, 완벽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그들이 들어선 공간은 더욱 거대하고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칠흑 같은 어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랜턴 불빛이 겨우 그 앞을 비추자,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계단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계단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선형 계단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마치 심연의 바닥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의 양쪽 벽에는 기괴한 조각상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고, 몸에는 비늘이 새겨진, 흡사 괴물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언가를 움켜쥔 듯한, 또는 무언가를 내어주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강민이 목소리를 잃은 채 중얼거렸다.

유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흥미로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신화 속에서나 존재하던 지하 세계의 입구 같아요. 고대 문명이 감춰두었던… 진정한 비밀이 여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재혁은 턱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의 발 아래로,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기류가 서늘하게 치고 올라왔다. 마치 심연 그 자체가 그들을 부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바람이 속삭이는 듯한 낮은 울림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의 숨소리 같기도, 혹은 이 미지의 유적이 내뿜는 경고음 같기도 한… 섬뜩한 소리였다.

재혁은 조용히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들 앞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함께,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심연의 문을 열고,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심연의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