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핏빛 숲의 그림자

에르다 마을은 언제나 어둠의 그림자에 갇혀 있었다. 동쪽으로는 인간의 왕국, 서쪽으로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지만, 북쪽으로는 ‘핏빛 숲’이라 불리는 거대한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숲은 이름처럼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는데, 단순히 잎사귀의 색 때문만이 아니었다. 수백 년 전, 인간과 숲의 고대 종족 사이에 벌어졌던 참혹한 전쟁의 피가 아직도 대지에 스며들어 있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리아는 여느 때처럼 약초 바구니를 들고 숲의 초입에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핏빛 숲을 죽음의 땅이라 부르며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지만, 리아에게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마을의 약제사 미리암 할머니를 따라 숲을 드나들며 희귀 약초들을 채집했다. 숲은 위험한 만큼이나 신비로운 생명력을 품고 있었고, 그 속에서 리아는 알 수 없는 위안을 찾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평소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미리암 할머니가 위독해지셨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할 유일한 약재는 핏빛 숲 가장 깊은 곳, 전설 속 ‘잊힌 샘’ 근처에서만 자란다는 ‘월광초’였다.

축축한 흙냄새와 짙은 이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숲은 태초의 어둠을 간직한 듯,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조차 핏빛으로 물들여 버렸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낮인데도 해 질 녘처럼 어둑했다. 리아는 품속에 든 할머니의 오래된 나침반을 확인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침반은 바늘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월광초가 있는 방향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제발… 제발 찾을 수 있기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마을 사람들의 공포 섞인 시선과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숲의 그림자에 홀리지 마라, 리아.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잠식하는 어둠의 존재다.’ 그 ‘그림자’는 바로 핏빛 숲의 고대 종족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지만, 종종 인간 마을에 나타나 재앙을 뿌리거나, 숲에 들어선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끔찍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리아는 미신이라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숲이 깊어질수록 알 수 없는 냉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침반의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발아래 잔뿌리들이 얽히고설킨 흙길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작은 개울을 건너자, 시야가 탁 트이며 숲 한가운데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숨을 헙 들이켰다. 나침반의 빛이 멈춰 선 곳, 거대한 고목 아래에 쓰러진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엔 짐승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그 형체가 인간과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흙 위에 흩어져 있었고,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듯한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다. 등에는 찢어진 날개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 가장자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그의 피부는 인간의 그것보다 창백했고, 드러난 팔뚝과 목에는 기이한 문신들이 뱀처럼 휘감겨 있었다. 상처였다. 옆구리에는 깊은 상처가 벌어져 있었고, 검붉은 피가 주변의 이끼를 적시고 있었다.

“어… 어둠의 종족…?”

입술 사이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숲의 고대 종족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이성을 잃은 맹수보다도 더 잔혹하고, 인간의 영혼을 탐한다는 존재. 그런 존재가 지금 리아의 눈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리아는 발걸음을 멈추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는 차가운 그림자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듯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망쳐야 했다. 당장이라도 등 돌려 달아나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리아의 마음속에서 싸늘한 이성이 아닌,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고통받고 있는 생명체였다.

약제사로서 수많은 생명을 치료해온 리아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바구니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그녀의 손은 망설임 없이 그의 몸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정신 차리세요…!”

작게 속삭였다. 그의 몸을 살피자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인간의 무기로 입은 상처 같았다. 칼날에 베인 듯 날카로웠고, 주변 조직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독인가? 리아는 머릿속으로 약초 지식을 빠르게 훑었다. 지혈하고 독을 제거해야 했다.

그때였다. 리아의 손길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가늘게 눈을 떴다.

리아의 심장이 그대로 멎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붉은 눈동자. 피보다 짙고, 불꽃보다 뜨거웠다. 그 눈에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늑대가 사냥꾼을 노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리아의 푸른 눈동자를 꿰뚫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리아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눈빛에 묶인 듯, 발이 땅에 박혀 버린 것 같았다.

남자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목에서 긁히는 듯한, 낮고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 라…”

그 목소리는 숲의 바람 소리처럼 스산했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담고 있었다. 리아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어둠의 종족은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리아의 발밑에 금지된 선을 긋는 듯했다.

그러나 리아는 그 선을 넘어섰다. 미리암 할머니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절박함과, 눈앞의 고통받는 생명을 외면할 수 없다는 약제사의 본능이 그녀를 지배했다. 붉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흔들렸다.

“가긴 어딜 가요! 이대로 두면… 죽을 거예요!”

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미 그녀는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었다. 어둠의 종족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에르다 마을에서 가장 끔찍한 죄악이었다. 그녀의 운명은 지금, 핏빛 숲의 그림자 속에서 완전히 뒤바뀌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둠과 빛의 교차를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과 그의 연결 고리가 될지도 모르는 파멸의 시작이었다.

월광초는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리아는 바구니 안의 약초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은 거침없이 남자의 상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