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장의 경보, 비상탈출

축축한 흙냄새와 역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지하 통로. 아린은 바싹 마른 침을 삼켰다. 제국군의 핵심 보급창고는 지하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족히 열 걸음은 떨어져 있었을 카이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의 옷차림은 보잘것없는 평민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가 뿜어내는 오만함과 냉정한 위압감은 천박한 제국 귀족들보다도 몇 배는 더 강렬했다. 평소 같으면 한 대 후려쳤겠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였다.

“카이, 저 앞이다. 계획대로, 나는 틈을 만들 테니, 넌 주요 보급로를 파괴해.” 아린은 최대한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어둠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벽에 매달린 어둠 속 램프 불빛이 희미하게 그가 가리킨 곳을 비췄다. 묵직한 강철 문,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제국군 병사 두 명. 제국의 눈과 귀는 언제나 평민들의 움직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저 둘은 처리해야 해. 소리 나지 않게.” 카이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낮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안에는 아린을 향한 불필요한 비웃음이 섞여 있는 듯했다.

“내가 뭘 못할 줄 알고? 어서 너나 임무에 집중해.” 아린은 발끈했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사적인 감정으로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품 속에서 작은 돌멩이 두 개를 꺼냈다. 보잘것없는 조약돌이었지만, 아린의 손에서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날카로운 도구가 되었다.

‘휙!’

돌멩이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가 복도 반대편 벽에 ‘탁’ 하고 부딪혔다. 제국군 병사 하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린은 그림자처럼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병사의 뒤를 잡고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질식시켰다. 나머지 한 병사가 놀라 검을 뽑으려 했을 때, 뒤에서 접근한 카이가 그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았다. 찰나의 순간, 병사의 몸은 축 늘어졌고, 카이는 그를 바닥에 조용히 눕혔다. 마치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흥, 제법이군.” 카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칭찬인지 비꼼인지 알 수 없는 어조였다.

“닥쳐. 감상평은 임무 후에나 해.” 아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제국군을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심장이 발악하는 것 같았다.

카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돌아봤다. “너,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긴장했나? 평소 너답지 않게 몸놀림이 둔해졌어.”

“뭐? 내가 둔하다고? 이봐, 나는 지금, 컥!”

그 순간, 거대한 강철 문이 ‘덜컥’하고 열리며 안에서 쏟아져 나온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빛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은 우렁찬 제국군의 목소리였다. “누구냐! 침입자다!”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지하 통로를 섬뜩하게 물들였다. 계획이 틀어졌다!

“젠장! 매복인가!” 아린은 다급하게 외쳤다. 눈앞에는 최소 열 명은 되는 제국군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아까 둔해졌다고 경고했지.” 카이는 불평하면서도 이미 움직였다. 한 손으로 아린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뒤로 밀어 넣고, 다른 손으로 옆에 있던 장비 상자를 걷어차 병사들의 발목을 걸었다. 병사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틈을 타, 그는 아린을 이끌고 반대편 통로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놔! 내가 못 뛰는 줄 알아?” 아린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지만, 카이의 손아귀는 단단했다.

“시간 낭비하지 마. 네 잔소리보다 내 발이 더 빠르니까.”

그들의 뒤에서 총성이 터지고, 레이저가 번쩍였다. 제국군은 신형 무기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레이저가 벽을 스치고 지나가며 섬광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켰다.

“저 망할 것들! 보급창고는 나중에 태우더라도 지금은 저들에게 한 방 먹여야 해!” 아린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안 돼! 저들의 목표는 오직 너다. ‘까마귀’의 수장이 여기 나타났다는 걸 알면 끝까지 쫓아올 거야.” 카이가 강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까마귀’는 아린이 이끄는 반란군의 별칭이었다. “여기로 와!”

카이는 통로 옆의 좁고 어두운 틈새로 아린을 밀어 넣었다. 먼지가 자욱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이 바싹 붙어 서게 되었다. 아린의 얼굴이 카이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다. 그의 숨결이 머리칼을 스쳤다. 예상치 못한 밀착에 아린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여긴… 어디야?” 아린이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환풍구 통로 같군. 다행히 쓰지 않는 곳이야.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해. 병사들이 금방 수색할 거다.” 카이는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비좁은 통로를 기어들어 갔다. 통로는 예상보다 길었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철컥이는 금속음이 들리고, 밖에서 제국군 병사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도망쳤을 리 없어! 저 망할 까마귀 놈들은 쥐새끼처럼 빠르다고!”
“그래도 수색해! 보고된 침입자는 두 명이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등 뒤에서 카이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심장 박동이 그녀의 등에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쿵, 쿵, 쿵. 자신의 심장 소리인지, 그의 심장 소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더, 더 깊이 들어가야 해…!” 아린이 흐느끼듯 속삭였다.

“움직이지 마. 놈들이 이 통로를 알아차릴지도 몰라.” 카이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의 손가락이 아린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 강한 힘에 아린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어둠 속, 코앞에 카이의 얼굴이 있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그의 이마,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그의 깊은 눈동자. 그의 입술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망할 자식. 이런 상황에서도 잘생긴 건 여전하네.” 아린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스스로도 너무나 한심한 생각이었다.

갑자기 카이의 손이 그녀의 입을 가렸다. “쉿.”

밖에서, 철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환풍구 입구 쪽을 손전등으로 비추는 소리.

“이쪽은 막혔군. 쥐 한 마리도 못 들어갈 구멍이야.”

병사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5분, 10분. 정적만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 아린은 눈을 감고 심장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카이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뺨에 닿을 때마다 묘한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마침내, 카이가 손을 거두었다.

“휴… 이제 괜찮아. 이제 움직이자.”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냉정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괜찮다니, 이 망할 놈이! 내가 지금 뭘 겪었는지 알아?” 아린은 속으로만 부르짖었다. 입 밖으로는 제대로 소리 내지 못했다. 목소리가 너무 쉬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좁은 환풍구 통로를 기어 나갔다. 출구는 다행히도 보급창고의 다른 구역과 연결되어 있었다. 희미한 작업등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기어 나오자,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보급품의 종류를 분류하고 이동시키는 핵심 설비였다.

“여기야. 저 제어 패널을 파괴해야 해.” 카이가 거대한 제어 패널을 가리켰다. 수많은 레버와 버튼, 그리고 복잡한 회로가 얽혀 있었다. “내가 암호를 풀고 시스템을 마비시킬 테니, 넌 주변 감시와 백업을 맡아.”

“또 나더러 시다바리나 하라는 소리군. 누가 누구 백업을 해준다고?” 아린은 투덜거리면서도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카이는 능숙하게 제어 패널에 연결된 콘솔을 조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를 유영하는 듯 빠르고 정확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기술을 익힌 걸까. 평민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의 과거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젠장, 예상보다 보안이 강력해. 이대로라면…!” 카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읽혔다.

그때, 아린의 귀에 ‘삑- 삑-‘ 하는 전자음이 들렸다. 보급창고 안쪽에 설치된 감지 장치가 움직임을 포착한 소리였다.

“카이! 또다시 제국군이야! 대규모 병력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아린은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해! 아니면 여길 날려버릴 수밖에 없어!”

“안 돼! 보급품 파괴는 계획에 없었어! 시민들에게 필요한 물품까지 소실되면 안 된다!” 카이가 버럭 소리쳤다.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그의 눈이 번뜩였다. 카이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몇 개의 레버를 동시에 잡아당겼다. 과부하를 걸려는 모양이었다. 패널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위험해!” 아린이 소리쳤다. 카이의 손이 불꽃에 닿기 직전, 아린은 몸을 던져 그를 옆으로 밀쳤다. “네 손이 다치면 누가 이 빌어먹을 제국을 무너뜨려! 이 바보야!”

그녀의 몸이 카이의 위로 덮쳐졌고, 그 순간 거대한 제어 패널이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연기와 불꽃을 뿜어냈다. 거대한 설비들이 멈추고, 보급창고 전체의 불빛이 깜빡였다. 비상등이 다시 붉게 깜빡이며 공간을 섬뜩하게 밝혔다.

아린은 카이의 품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폭발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너… 괜찮아?” 카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약간 떨리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역력했다.

“나? 당연히… 쿨럭! 콜록! 괜찮지! 너야말로… 무사해?” 아린은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네 덕분이지.” 카이가 짧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아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때, 보급창고 입구에서 제국군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젠장! 누가 감히 제국 보급창고를 건드렸느냐! 침입자를 찾아라!”

수십 개의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을 헤치고 들어왔다. 그들의 목표물은 바로 아린과 카이였다.

“카이! 우리가 뭘 파괴했는지 봐! 저들이 제대로 화났잖아!” 아린은 헐렁한 옷자락을 붙잡고 카이를 흔들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고 아까 말했잖아.” 카이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쪽이야. 여긴 이제 지옥이 될 거다. 도망칠 구멍은 하나 남았어.”

그는 어둠 속으로, 그리고 아린의 심장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뒤에서는 추격하는 제국군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린은 카이의 손에 이끌려 뛰면서 생각했다.

‘젠장, 난 지금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망할 자식과 연애를 하고 있는 건가?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는 건데!’

그녀의 발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였지만, 심장은 이미 카이의 손아귀에 잡힌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과연 그들은 이 지옥 같은 보급창고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격렬한 심장 소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