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귀, 그 차가운 복수의 서막
머리가 쨍하게 울렸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천장의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낡은 벽지, 삐걱거리는 옷장, 그리고 책상 위 닳아빠진 달력. 2023년 5월 17일.
강준혁은 순간 숨을 멈췄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젠장… 이게 무슨….”
분명 그는 옥상 난간에 서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마지막으로 세상에 욕설을 퍼붓던 찰나, 발이 미끄러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 그리고 끝없는 어둠. 그게 전부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그의 스물여덟 살 원룸이었다. 그 빌어먹을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평범하기 그지없던 삶의 터전.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졌다. 팽팽한 피부. 깊은 주름도, 텅 비어버린 눈동자의 그림자도 없었다. 거울을 찾아 달려갔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젊은 얼굴이 그를 응시했다. 과거의 자신. 생기가 돌던, 어딘가 어리숙했던,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던… 그때의 강준혁.
심장이 쿵쾅거렸다.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이내, 그 떨림은 분노로, 그리고 차가운 결의로 바뀌었다.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악몽 같은 장면들.
_“준혁아, 우리 이번 투자만 성공하면 대박이야! 믿지? 너랑 나잖아!”_
따뜻하게 웃던 이선우의 얼굴. 그 눈빛에 담긴 가식적인 우정.
_“미안하다, 준혁아.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 네 희생은 절대 잊지 않을게.”_
텅 빈 회사 금고 앞에서, 서류 한 장과 함께 버려졌던 준혁을 비웃던 선우의 조롱 섞인 목소리.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순간에도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귓가에 울리던 그 잔인한 속삭임.
_“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는데? 평생 내 발밑에서 기어 다니며 살아라.”_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려야 했던 지난 세월. 가족과 친구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결국 고독한 죽음을 택했던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선우의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이를 악물었다.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지는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기회였다. 단 한 번뿐인, 세상이 그에게 던져준 잔혹한 선물.
“이선우… 이 빌어먹을 자식.”
나지막이 뱉어낸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살아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뼈를 깎는 듯한 증오가 그의 심장을 집어삼켰다.
이번엔 다르다. 절대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만들 것이다.
강준혁은 익숙하게 서랍을 열어 낡은 휴대폰을 꺼냈다. 저장된 번호들을 훑었다. 이선우. ‘절친❤️’이라고 저장되어 있던 그 이름.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망설임을 지우고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여보세요? 야, 강준혁? 웬일이냐, 이 시간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선우의 목소리.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고 건방진 목소리. 그때의 선우는 아직 성공 가도를 달리기 전, 이제 막 작은 사업체를 시작하며 ‘큰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갈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그를 위하는 척했던 그 시절.
강준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우야.”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어, 뭔데? 아직 자다 일어났냐? 목소리가 왜 그래?” 선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준혁은 그의 질문을 무시했다.
“전에 말했던, 그 ‘아이템’ 말이야.”
수화기 너머 선우의 반응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준혁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아이템’은 선우가 준혁에게 접근하기 위해 미끼로 던졌던 프로젝트였다. 결국 준혁의 모든 것을 빨아먹고 선우를 거부할 수 없는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 프로젝트.
“어? 아, 그거?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닌데… 왜?” 선우는 능청스럽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들뜸이 섞여 있었다. 준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구체화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준혁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말려 올라갔다. 냉기가 서린 미소였다.
“내가 너한테 좋은 정보를 하나 줄게. 이걸 활용하면, 네가 구상하는 그 사업,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훨씬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어.”
선우는 순간 침묵했다. 예상치 못한 준혁의 제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뭔데? 갑자기….”
“중요한 건, 이 정보를 아는 건 세상에 나 말고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난 이걸 너한테만 줄 생각이야.”
준혁은 말을 멈추고 선우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그의 심장은 고요했다. 복수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선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숨겨진 탐욕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무슨 정보인데 그렇게 자신만만해? 구체적으로 말해 봐.”
강준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응시했다. 과거의 어리숙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날카로운 광기가 채우고 있었다.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어. 하지만 조건은 있어. 만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이번엔 내가 주도할 거야.”
수화기 너머 선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혁의 제안은 그의 예상 범주를 훨씬 벗어나는 것이었으리라. 선우는 평소 준혁을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이용하기 쉬운 호구’ 정도로 생각했을 테니까.
“네가 주도한다고?” 선우의 목소리에 미약한 불쾌감이 섞였다.
“그래.” 준혁은 짧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번 판은 내가 짠다.”
잠시의 침묵 후, 선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비웃음이었지만, 동시에 흥미를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기도 했다. 그놈은 이미 준혁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
“하하하! 뭐야, 갑자기 자신감 폭발했네? 좋아, 강준혁. 오랜만에 네가 이렇게 의욕적인 거 보니까 나도 기대되는데? 언제 볼까?”
준혁은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기대? 물론이지. 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막이 오를 테니까.’
“내일 저녁, 네 사무실에서 보자. 그리고 오늘 밤,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해. 아주 작은 정보만 담겨 있지만, 네 탐욕을 자극하기엔 충분할 거야.”
뚝.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화면이 꺼지고, 어둠이 그의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준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천천히 떨렸다. 하지만 그건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날을 쥐었을 때 느껴지는, 시린 전율이었다.
이선우.
네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때, 나는 망자의 심정으로 죽음을 택했다.
이제… 네가 내 손아귀에서 모든 것을 잃고, 살아있는 망자가 되는 것을 지켜볼 차례다.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강준혁은 그렇게,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복수의 서막이 오른 그 차가운 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