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47화: 어둠이 품은 심장**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이한은 길게 숨을 들이쉬며 코끝을 스치는 곰팡내와 희미한 쇠 비린내를 애써 무시했다. 엘로시아 마법 학원의 지하 미궁은 명문 학원이라는 고상한 명성 뒤에 숨겨진 추악한 심장부와도 같았다. 며칠 밤낮을 헤매 이제 겨우 도달한 곳,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음울하고 기괴했다.

[현재 위치: 엘로시아 마법 학원, 금지된 지하 격리 구역]
[경고: 불안정한 마력 에너지 감지. 정신력 저하 및 [혼란] 상태 이상 확률 증가.]

UI창의 경고 문구가 섬뜩하게 깜빡였다. 이한은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어쩔 수 없었다. 학원 도서관의 낡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대 학원장의 비밀 연구 일지. 그 단편적인 기록이 가리키던 ‘뒤틀린 심장부’가 바로 이곳임이 분명했다.

그가 발을 들인 곳은 거대한 원형 홀이었다. 한때는 엄숙하고 신성했을 법한 검은색 벽돌이 축축한 이끼와 알 수 없는 검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중앙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듯한 희미한 보랏빛 광원이 홀 전체를 기괴한 그림자로 물들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력등과는 다른,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섬뜩한 빛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이한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홀의 중앙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뿌리 같기도 하고, 무수한 촉수가 얽힌 괴생명체 같기도 한 그것은 검은색 마력석과 투명한 수정체가 뒤얽혀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였다. 그 줄기 곳곳에는 지름이 족히 두어 발은 되는 투명한 구형 용기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투명한 용기들 속에 들어있는 것은 희미한 보랏빛으로 빛나는 액체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명백히 생명체였다. 혹은, 한때 생명체였던 것의 잔해였다. 팔다리가 뒤틀리고, 몸통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거나 반대로 말라붙어 있었다. 형태는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미약하게나마 인간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실루엣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서 끊임없이 보랏빛 기운이 흡수되어 중앙의 거대 구조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퀘스트 알림: ‘엘로시아의 오점’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목표: 금단의 실험체들을 확인하고, 진실의 기록을 찾아내십시오.]

갑작스러운 퀘스트 알림에도 이한은 반응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오직 그 끔찍한 광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생명력을 인공적으로 추출하고 있는 것인가? 학원장 일지에 언급된 ‘궁극의 마나 정제’라는 것이 설마 이런 방식이었단 말인가?

“이건… 이건 마법이 아니야.”

그것은 학원에서 가르치는 고귀한 마법이 아니었다. 생명을 유린하고, 존재의 형태를 뒤틀어버리는, 순수한 악의 결정체에 가까웠다. 그때, 낡고 부식된 금속음이 정적을 갈랐다. 가장 가까운 용기 하나가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한의 시선이 용기로 향했다. 용기 안의 희미한 형체가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 혹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 보였다.

콰자작!

마침내 용기가 산산조각 나며 파열했다. 안에 담겨 있던 보랏빛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지고, 그 안에서 비틀린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여러 개의 팔다리가 제멋대로 돋아나 있었고, 피부는 생고기처럼 붉고 축축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텅 빈 구멍이 뚫려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벌어진 입에서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불규칙하게 박혀 있었다. 온몸에서 보랏빛 마력이 불안정하게 뿜어져 나오며 주변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경고! [금단의 변이체] 출현! 레벨 ???. 치명적인 위협!]

UI창에 붉은색 경고가 번뜩였다. 이한은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손안의 지팡이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크르르르…

변이체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혹은 고통에 절규하는 영혼처럼 들렸다. 그 기괴한 소리와 함께 변이체가 이한을 향해 돌진했다. 여러 개의 팔다리가 흉측하게 움직이며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젠장, 물러서!”

이한은 반사적으로 [마나 방벽] 주문을 외쳤다. 푸른색 마나 방패가 그의 앞에 솟아올랐지만, 변이체는 그것을 거대한 손톱으로 간단히 갈라버렸다. 방벽이 산산이 부서지는 파편 속에서, 이한은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변이체의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퍽!

강렬한 충격과 함께 이한의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체력 18% 감소!]
[출혈 상태 이상! 매초 체력 1%씩 감소!]

UI창의 체력 바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이한은 허억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옆구리의 고통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변이체는 만족스러운 듯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때, 이한의 시야에 희미하게 빛나는 석판이 들어왔다. 변이체가 파괴한 용기 바로 아래에 놓여있던 낡은 석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어 석판을 집어 들었다.

<오랜 시간, 우리는 완벽한 존재를 추구했다. 순수한 마력 결정체이자, 동시에 무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 하지만 생명의 정수는 불완전했고, 순수한 마나와 섞이는 순간 추악한 변이를 일으켰다. 수많은 실패, 수많은 희생… 이 모든 것은 엘로시아의 영원한 영광을 위함이다. 언젠가… 완벽한 심장이 탄생할 것이다.>

이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원장 일지의 단편적인 내용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엘로시아 마법 학원. 그 숭고한 이름 뒤에는 이처럼 끔찍하고 잔인한 금기의 실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크르르릉!

변이체의 그림자가 이한의 시야를 완전히 덮쳤다. 살육 본능에 사로잡힌 괴물의 끔찍한 손톱이 그의 심장을 겨냥하며 떨어지는 순간, 이한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었다. 그것은 마나장이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도와줘… 멈춰줘…”

그것은 변이체에게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홀 중앙의 거대한 구조물, 그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는, 한없이 고통스럽고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수많은 생명체의 고통이 응축된, 어둠이 품은 심장이 비로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과연, 이한은 이 끔찍한 심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심장’의 속삭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