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별들의 비무성으로**

고요한 우주의 심연, 억겁의 시간이 빚어낸 성운이 칠색으로 너울졌다. 그 찬란한 비단 폭포 속을 한 점의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함들이 즐비한 성간 항로에서, 그 그림자는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마치 검은 파도 위를 유영하는 한 조각의 잎사귀 같았다.

하지만 그 작은 우주선, ‘청운호’의 조종석에 앉아 있던 청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서풍(西風). 그의 이름처럼, 그는 유랑하는 바람이었다. 검은 도복 자락이 마치 우주의 암흑을 응축한 듯했고,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은 성운의 빛을 받아 희미하게 윤슬이 일었다. 그의 두 눈은 드넓은 우주를 담은 듯 깊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 쉬고 있었다.

“이제 곧이군.”

서풍의 낮은 읊조림이 조용한 조종석에 울렸다. 전방 홀로그램 창에는 거대한 행성의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행성이라기엔 너무나도 인공적인 균형미를 자랑하는 그것은, 우주 곳곳에서 모인 무인(武人)들이 일생의 승부를 겨루는 성지, 바로 **비무성(比武星)**이었다.

행성 전체를 거대한 비무장으로 개조한 듯한 비무성은, 표면의 절반 이상이 빛을 반사하는 육각형 강철 패널로 뒤덮여 있었다. 그 패널들 사이로 솟아오른 수많은 첨탑들은 마치 하늘을 꿰뚫으려는 듯 날카로웠고, 대기권 밖에서도 희미하게 번뜩이는 에너지는 행성 전체가 거대한 기(氣)의 흐름을 품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미 비무성의 궤도에는 수천 척의 각양각색 우주선들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행성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문파의 본산처럼 보였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서풍의 뇌리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멸문당한 문파의 마지막 생존자. 그에게 남겨진 것은 낡은 무공 비급과 복수의 맹세뿐이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이 **무림성계대전(武林星界大戰)**에서 승리하여 천하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쥐는 것이었다.

이번 무림성계대전은 단순한 고수들의 비무가 아니었다. 은하 제국이 붕괴하고, 수많은 성계 문파들이 할거하며 혼돈에 빠진 이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세울 단 한 명의 무림맹주를 뽑는 자리였다. 승자는 제국의 잔해 위에 새로운 무림맹을 세우고, 흩어진 무림을 통합하며, 천하의 명운을 결정할 막대한 권력을 손에 넣을 터였다. 패자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었다.

청운호가 대기권에 진입하자, 거대한 비무성의 에너지가 서풍의 내공을 미약하게 흔들었다. 일반 무인이라면 기압 변화에도 고통스러워할 테지만, 서풍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비무성 표면의 수많은 훈련장과 경기장을 훑었다. 벌써부터 그곳에서는 각 문파의 선발된 고수들이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는 듯, 기(氣)의 충돌이 대기를 뒤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흥, 벌써부터 혈기가 왕성하군.”

서풍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맹주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문파를 멸망시킨 ‘오대문파(五大門派)’의 잔혹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무림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시작은, 오대문파의 수장들이 버티고 있는 이 무림성계대전의 정상이었다.

청운호는 비무성의 외곽에 마련된 수많은 개인 착륙장 중 하나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착륙장의 문이 열리고, 서풍은 차가운 금속성 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무인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뿔 달린 외계 종족, 기계 의체를 한 사이보그 무사, 덩치 큰 거인족 검객, 그리고 서풍과 같은 인간형 무인까지.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도복과 장비들은 마치 우주 박람회장을 방불케 했다.

그들 모두의 눈에는 비장함과 함께 불타는 야망이 깃들어 있었다. 이들 중 누가 천하의 맹주가 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 것인가?

서풍은 조용히 자신의 검, ‘청뢰검(靑雷劍)’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멸문당할 때까지 문파의 모든 고수들이 지켜냈던 유일한 유산. 푸른 번개가 검신을 휘감는 듯한 영롱한 빛깔을 띠는 그 검은, 마치 서풍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착륙장 한편에서 거대한 금빛 함선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함선은 다른 모든 우주선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했다.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기운은 착륙장의 모든 무인들을 압도하며 침묵시켰다.

“저건…… 천룡문의 금룡선이 아닌가?”

누군가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고요를 깼다. 천룡문. 오대문파 중 하나이자, 현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손꼽히는 거대 문파였다. 그들의 맹주, ‘천룡신군(天龍神君)’은 이번 대전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금룡선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자는 중년의 사내였다. 금실로 용 문양이 수놓아진 붉은 도포를 걸쳤고, 등 뒤에는 황금빛 장검이 번쩍였다. 그의 눈빛은 번개처럼 날카로웠고, 전신에서는 마치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천룡문의 맹주, 천룡신군이었다.

그의 등장에 착륙장은 순간 경직되었다. 모든 무인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 서풍 역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천룡신군의 눈과 서풍의 눈이 허공에서 스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천룡신군은 서풍의 평범해 보이는 외모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기백을 간파한 듯, 미미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그는 흥미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고,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비무성 내부로 향했다.

천룡신군의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서풍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이 비무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서풍의 손은 여전히 청뢰검의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고요하게 고동치고 있었고, 그의 피는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오대문파. 천룡문. 그들이 이 비무성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서풍은 궁금해졌다.

자, 이제 시작이었다. 수많은 별들의 운명을 건, 치열하고 잔혹한 비무의 서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