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뼈를 에는 듯한 산등성이를 덮었다.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낮게 깔려 있었고, 키 큰 전나무 숲은 그림자 속에서 검은 이빨처럼 도열해 있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휘감으며 으스스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런 황량한 풍경 속에서, 세 그림자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선두에 선 카이는 낡고 해진 가죽 망토를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았지만 잘 관리된 랜턴이 들려 있었고, 그 불빛은 그의 얼굴 절반을 가리는 후드 아래에서 깊고 날카로운 눈빛을 비추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속한 시간대에서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하면서도 맹렬한 기운을 풍겼다. 수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자의 지친 그림자가 그의 어깨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젠장,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카이? 이 지긋지긋한 돌짝밭은 끝이 없어.”
거친 목소리가 카이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한나였다. 그녀는 큼직한 양손 도끼를 어깨에 짊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는 팔뚝과 비바람에 그을린 얼굴은 그녀가 단순한 탐험가가 아님을 웅변했다.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어둠 속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거의 다 왔어, 한나. 지도에 따르면 이 절벽 아래에 있을 거야.” 카이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랜턴 불빛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를 비췄다. 오래된 전설에만 존재하던, 잊혀진 지하 유적의 입구는 그렇게 허무할 정도로 평범한 모습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듯한 틈새,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젠장, 정말 이거야? 무슨 지하 왕국 입구라도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동굴이잖아.” 제이가 투덜거렸다. 팀의 막내인 그는 날렵한 몸놀림과 비상한 눈썰미로 정찰과 함정 해체를 담당했다. 불안한 듯 허리춤에 찬 단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얀 입김을 내뱉었다. “이런 곳에 수천 년 된 문명이 잠들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카이는 제이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무릎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손가락으로 돌멩이 표면을 더듬던 그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곳의 공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가 손에 든 돌멩이를 어둠 속 틈새로 던져 넣었다. 촤르르륵, 돌멩이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울리다가, 이내 먹먹한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침묵은 보통의 동굴과는 달랐다. 생명의 흔적조차 없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듯한 맹목적인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한나가 어깨에 짊어진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작게 신음했다. “이 기분 나쁜 침묵은 또 뭐야? 벌써부터 등골이 오싹하네.”
“고대의 봉인된 장소는 흔히 그렇다.” 카이는 후드를 더욱 깊이 눌러썼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형형했다. “이곳은 단순히 잊혀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면당하고 봉인된 곳이지. 어떤 존재로부터 이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든, 혹은 가두기 위해서든.”
카이의 설명에 제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두기 위해서라고? 설마, 안에 뭔가 위험한 게….”
“확실한 건, 이곳의 고대인들은 엄청난 힘을 다루었다는 거야.” 카이가 말을 잘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틈새에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그들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서자, 외부의 차가운 바람도 빛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숨 막히는 듯한 묵직한 공기가 그들의 폐부를 짓눌렀다. 랜턴 불빛이 비추는 곳은 겨우 발아래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발밑에서는 눅눅한 흙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비릿한 철 냄새, 그리고 무언가 썩어가는 듯한 달콤한 악취가 뒤섞여 올라왔다.
“이봐, 카이, 이거 그냥 통로가 아니잖아!” 제이가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랜턴 불빛이 희미하게 한쪽 벽면을 비추었다. “이거 봐! 이건 자연적으로 생긴 균열이 아니야. 누가 인위적으로 판 흔적이라고!”
카이가 고개를 돌렸다. 제이가 비춘 벽면은 거친 자연석이 아니라, 정교하게 다듬어진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에 풍화되었지만, 그 안에 새겨진 문양들은 여전히 그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다. 기이한 기하학적 도형들과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얽히고설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말이야.” 한나도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도끼를 든 채로 벽에 가까이 다가섰다. “이런 거대한 돌을 이토록 정교하게 깎아낼 수 있었다니… 대체 어떤 문명이었던 걸까?”
카이의 눈은 글자 하나하나를 훑어 내려갔다. 그는 고대 문헌과 유물에 정통했지만, 이곳의 문자는 그의 지식 밖이었다. 그러나 문자가 담고 있는 기운만큼은 명확했다. 어둡고, 뒤틀리고, 그리고… 절망적이었다.
“이것은… 이 문명은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군.” 카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벽면의 문양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경고이자 동시에 주술적인 방어막 같아. 마치 ‘이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외치는 듯한….”
그 순간, 제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 카이… 잠깐만.”
“왜 그래?” 한나가 재빨리 제이 옆으로 다가섰다.
제이의 랜턴 불빛이 바닥을 향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제이가 발로 흙먼지를 걷어내자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기묘한 문양이 드러났다. 그것은 방금 전 벽면에서 보았던 기하학적인 무늬 중 하나였다. 검은 돌바닥에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은, 마치 지금 막 활성화된 듯 미약하게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건… 마법진인가?” 한나가 숨을 들이켰다.
카이의 얼굴에 일순간 경악이 스쳤다. 그는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젠장, 밟았어! 제이, 한나, 물러서!”
그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의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주변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그들을 응시하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몰려왔다. 차가운 한기가 뼈 속까지 파고들었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는 듯한 긁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함정이었어!” 한나가 도끼를 치켜들며 외쳤다.
카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랜턴 불빛 너머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피부는 바싹 마른 미라 같았고, 뼈만 남은 팔다리는 부자연스럽게 뒤틀려 있었다. 그들의 눈구멍 속에서는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놈들이 깨어났어.” 카이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서려 있었다. “이 고대 유적은 그저 버려진 무덤이 아니었다. 봉인된 존재들이 잠들어 있던, 거대한 감옥이었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썩어가는 시체 냄새가 더욱 역하게 풍겨왔다. 수십, 아니 수백에 달하는 그림자들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집요했고, 그들의 푸른 눈빛은 살아있는 자의 온기를 갈망하는 듯했다.
“카이, 대체 저것들은 뭐야?” 제이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손에 든 단검이 불안하게 떨렸다.
“이곳의 수호자들… 혹은 이곳에 갇혔던 자들일 수도 있겠지.” 카이는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의 앞길을 막으려는 건 분명해.”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자, 제군들. 고대 유적의 환영을 받으러 온 것을 환영한다. 생각보다 성대한 환영회로군.”
어둠 속에서 푸른 눈동자들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들의 입에서는 갈라진 비명이 터져 나왔고, 썩은 살점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유적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는 듯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잊혀진 지하 유적의 비밀은, 그들의 피와 살을 대가로 요구하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