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차가운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이현의 피곤한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키보드 위를 맴도는 손가락은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긴 지 오래. 사무실에는 이현 외에 몇몇 야근족만이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좀비처럼 앉아 있었다.

“하아… 죽겠다.”

저절로 터져 나온 한숨은 회색빛 공기 중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보잘것없는 월급, 비루한 자취방. 이현의 삶은 그저 그렇게 흐르는 탁한 강물 같았다. 변화를 갈망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용기가 없는 자의 허망한 도피처.

그때였다.

갑자기 모니터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섬광을 터뜨렸다. 이현은 눈을 감으려 했지만, 시야를 가득 채운 새하얀 빛은 그의 의지를 압도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리되는 듯한 격렬한 통증, 마치 거대한 손아귀에 쥐어져 산산조각 나는 듯한 감각이 덮쳐왔다. 귓가에는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과 거대한 파동이 울렸다.

‘젠장, 전기가 나갔나? 아니, 이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마자, 그의 의식은 먹물처럼 번져나가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 완벽한 무의 상태. 마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 같은 허무함이 그를 감쌌다.

***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맨살을 파고들었다. 흙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썩은 풀 내음. 이현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지만, 뭔가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은 짚으로 엮어 만든 듯했고, 벽은 진흙을 바른 듯 투박했다. 낡고 해진 담요가 그의 몸을 덮고 있었지만, 한기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굶주림이 위장을 찢는 듯했다.

“여긴… 어디지?”

목소리는 낯설었다. 갈라지고 힘없는 소리.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다. 간신히 비틀거리며 몸을 세운 이현은, 무릎으로 기어 문밖으로 나섰다.

탁한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 움푹 들어간 두 뺨, 겁에 질린 듯한 눈동자. 얼굴은 온통 흙투성이였고, 그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이의 얼굴이었다.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지만, 고난과 굶주림에 찌든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 꿈인가? 내가 왜 이런 모습이지?’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 쥐는 손 역시 굳은살이 박힌 거친 손이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세계 전생. 소설 속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 것이다.

그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 괜찮으냐?”

돌아보니 허리 굽은 노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고, 눈빛은 피로에 절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깨진 나무 그릇이 들려 있었다.

‘라온? 내 이름인가?’

이현은 멍하니 노파를 바라봤다. 노파는 그의 곁으로 다가와 웅덩이에 비친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그 움직임이 조심스러우면서도 애정이 담겨 있었다.

“며칠을 앓았으니 몸이 성치 않을 게다. 어서 들어오렴. 뜨거운 물은 아니지만… 이라도 좀 마셔야지.”

노파는 그의 팔을 부축하며 오두막 안으로 이끌었다. 이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경악과 노파의 익숙한 듯 낯선 다정함이 그를 짓눌렀다.

오두막 안은 단출했다. 낡은 화덕 위에 작은 냄비가 놓여 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지독하게도 희미한 죽 냄새가 풍겼다. 노파는 그에게 나무 그릇에 담긴 맹물을 건넸다. 이현은 허겁지겁 그 물을 마셨다. 차갑지만 갈증을 달래주는 물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배가 고프냐? 죽이라도 쑤어주련만… 곡식이 없구나.” 노파의 목소리가 슬픔에 잠겼다.

그때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문 열어라! 대성 제국의 세금을 내어라!”

쿵, 쿵, 쿵. 거친 발소리가 오두막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노파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급히 낡은 보퉁이 하나를 짚더미 아래로 숨기려 했다.

“라온아,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냥 고개 숙이고 있어.”

노파의 떨리는 목소리는 공포로 가득했다. 이현은 어리둥절했지만, 노파의 절박함에 본능적으로 짚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쾅!

낡은 문이 발길질 한 번에 산산조각 나며 안으로 쓰러졌다. 거대한 체구의 남자 둘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몸에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거만하고 위압적인 제복이 걸려 있었고, 허리춤에는 번쩍이는 칼이 매달려 있었다. 이현은 그들의 눈빛에서 광기 어린 오만함을 읽었다.

“크흠, 크흠. 늙은 것들이 게으름만 피우는구나. 대성 제국의 세금을 어서 내놓지 못할까!”

수염을 기른 거친 인상의 사내가 노파를 쏘아보며 윽박질렀다. 노파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제발, 나리. 이번 달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나이다. 겨우 먹을 양식도 바닥나서….”

“양식? 헛소리 마라! 네놈들이 먹고사는 것부터가 제국의 은혜다! 당장 곳간을 열어라!”

다른 한 사내가 오두막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낡은 그릇들을 걷어차고, 매달려 있는 곡식 주머니를 난폭하게 뒤엎었다. 노파는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사내의 거친 손길에 밀려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짚더미 아래 숨겨두었던 낡은 보퉁이가 드러났다.

“흐음? 이건 뭐지?”

사내가 보퉁이를 잡아챘다. 그 안에는 말린 나물 몇 줌과 낡은 천 조각, 그리고 작은 나무 인형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노파에게는 소중한 재산이었을 것이다.

“이것마저… 이것만은 제발….”

노파는 보퉁이를 되찾으려 몸부림쳤지만, 사내는 비웃으며 그녀의 손을 발로 짓밟았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노파는 고통에 신음하며 쓰러졌다.

이현은 짚더미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과 부당함이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저런 자들이 제국을 위한다는 이름 아래 민중을 짓밟고 있었다.

그 순간, 멀리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내 빵…!”

옆집 아이의 비명이었다. 그들의 무자비한 수탈은 이 오두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강도떼에게 털리는 것처럼 황폐해지고 있었다.

이현의 눈에 피가 끓었다. 그의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이현’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몸서리치는 ‘라온’이었다. 그의 손은 주먹을 꽉 쥐었고, 굳은살 박힌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력감에 빠져 있던 옛 삶과는 달랐다. 여기서는 자신의 무력함이 타인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는 맹세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한 몸뚱이지만, 언젠가는 이 부패한 제국에 맞서리라.

사내들은 노파에게서 빼앗은 보잘것없는 물건들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거만하게 오두막을 나섰다. 그들의 발걸음은 만족감에 차 있었다.

남겨진 것은 피 묻은 노파의 손, 파괴된 오두막 문, 그리고 절망에 잠긴 마을의 비명 소리뿐이었다. 이현은 짚더미 뒤에서 천천히 기어 나와 노파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그는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

한줌도 안 되는 재산을 빼앗기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파의 모습을 보며,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대성 제국. 감히 그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을… 반드시 응징하리라. 이젠,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고난과 굶주림에 지친 라온의 몸을 일으켰다. 이 연약한 몸 하나로 거대한 제국에 맞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타오르는 불꽃을 품고 있었다.

“기다려라….”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