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도서관의 심장, 그리고 말썽꾸러기 아가씨
“이수아, 너 진짜 이번엔 뭐에 홀린 거야? 낡은 도서관 유령이나 찾아다닐 나이는 지났잖아, 우리?”
축 늘어진 어깨에 간신히 매달린 가방끈을 고쳐 매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앞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이수아는 등 뒤로 길게 늘어트린 포니테일이 통통 튀듯 흔들렸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그녀의 뒷모습이 ‘말썽’이라는 두 글자로 형상화되어 보였다.
“흥! 오빠는 감성이라곤 쥐뿔도 없다니까. 여긴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그리고 난 고작 유령 따위가 아니라,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나선 위대한 탐험가라고!”
위대한 탐험가? 고작 낡은 대학 도서관, 그것도 폐쇄된 지 10년이 넘어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탱이 창고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은, 나에게는 그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의 온상일 뿐이었다.
“그래, 위대한 탐험가님은 늘 날 ‘짐꾼’으로 데리고 다니시지. 이번엔 또 뭘 찾아 오라 명령하실 건데?”
“어휴, 그렇게 투덜댈 거면 그냥 돌아가든가! 내가 오빠 아니었으면 진작에 미스터리 동호회에 가입해서 찬양받는 부장님이 됐을 거라고!”
눈을 흘기면서도 그녀는 절대 나를 보내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오빠, 이거 해줘!’, ‘오빠, 저거 찾아줘!’를 입에 달고 살던 이수아는, 자칭 타칭 ‘고고학 꿈나무’이자 ‘도시 미스터리 추적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 꿈나무의 옆구리를 담당하는 숙명적 보조원이었다.
“이거 봐, 오빠! 여기 벽에 이상한 그림이 있어!”
그녀가 손전등으로 가리킨 곳에는 벽화…라고 하기엔 조악한, 오래된 낙서 같은 그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꼬불꼬불한 선과 알아볼 수 없는 도형들이 빼곡했다.
“이게 뭐야? 미대생들이 낙서한 건가? 심지어 잘 그리지도 못했네.”
“쉿! 이건 단순한 낙서가 아니야. 어쩌면 고대 문명의 언어일 수도 있다고! 내가 찾아봤는데, 이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 이 자리엔 아주 오래된 무당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심지어 그 무당집은 마을 사람들에게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는 집’으로 불렸대!”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또 시작이다. 수아의 ‘카더라 통신’은 언제나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무당집 이야기가 이 낙서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지! 고대 주술 문양일 수도 있잖아! 이걸 해독하면 뭔가 굉장한 걸 찾아낼지도 몰라!”
그녀는 흥분해서 손전등으로 벽을 이리저리 비추다 갑자기 멈췄다. 그녀의 시선은 낡은 책장이 놓인 구석을 향해 있었다. 마치 거기에 보물이라도 숨어 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오빠! 저기! 저 책장 뒤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녀가 가리킨 책장으로 다가갔다. 오래된 책장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손으로 쓸어보니 손바닥 가득 눅눅한 흙먼지가 묻어났다. 으윽, 진짜 싫다.
“뭐, 없어 보이는데. 그냥 벽이잖아.”
“아니야! 뭔가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아! 책장을 좀 치워봐, 오빠 힘 좋잖아!”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명령하는 수아의 모습에 다시 한숨이 나왔지만, 그녀의 기대에 찬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장을 옆으로 밀자, 그 뒤편으로 좁고 어두운 틈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틈새에는…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 진짜 있었네… 뭐야 이거?”
내가 놀라서 상자를 꺼내자, 수아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봤지! 내 육감은 틀리지 않아! 오빠, 빨리 열어봐!”
상자는 낡고 지저분했지만, 묘하게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잠금장치도 없이 그저 뚜껑이 얹혀 있는 형태였다.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자, 안에서는 또 다른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일기장… 혹은 고서적이라고 해야 할까. 두툼한 가죽 커버에 오래된 종이가 묶여 있었다. 종이 위에는 아까 벽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박! 대박이야, 오빠! 이거 봐! 진짜 고대 문서잖아! 이걸 해독하면… 세상에!”
수아는 흥분해서 일기장을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그녀의 손에서 일기장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일기장의 가죽 커버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에 손가락을 댔다. 작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꽃잎 모양의 문양이었다.
“이수아, 조심해. 찢어지겠어.”
나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고, 그 순간 나의 손과 수아의 손이 동시에 그 일기장을 잡았다. 정확히는 내가 꽃잎 문양을 만지고 있었고, 수아의 엄지손가락이 그 바로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문양에 닿아 있었다.
*스르륵…*
일기장 전체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낡은 종이 안에서 잠자고 있던 불빛이 깨어나는 듯한 환한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퍼지는 잔상 같은 빛이었다. 그리고 빛과 함께, 아주 작고 미묘한,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어…? 오빠, 방금 이거… 빛났어?”
수아는 눈을 깜빡이며 일기장을 쳐다봤다. 나 역시 똑같이 멍하니 그 책을 보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착각이겠지. 너무 낡아서 먼지가 빛에 반사된… 으읍!”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 등 뒤에 쌓여 있던 낡은 신문지 뭉치들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흔드는 것처럼, 균형을 잃고 좌우로 비틀거렸다. 나는 순간 놀라 뒷걸음질 쳤고, 동시에 수아는 일기장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뭐야! 지진이야?!”
“아니, 지진은… 아닌 것 같아!”
신문지 뭉치는 결국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우리는 기침을 콜록거렸다.
“크흠, 크흠! 뭐야, 오빠! 또 뭘 건드린 거야?”
수아는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뭘 건드렸다고!
“내가 뭘! 네가 호들갑 떨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읍!”
이번엔 내 발치에 있던 낡은 양동이가 공중으로 두어 뼘가량 떠올랐다. 그리고는 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퍼덕! 굉음에 가까운 소리가 낡은 도서관 안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눈은 동그래졌다. 말 그대로,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오… 오빠… 방금 저 양동이가…” 수아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수아… 혹시, 우리… 뭔가… 엄청난 걸 건드린 것 같은데.”
일기장은 여전히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심장이 뛰듯, 일정하게 깜빡거리는 듯 보였다.
수아는 일기장을 든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이 번져 있었다.
“오빠, 이거… 혹시… 진짜 마법… 아닐까?”
그녀의 말에, 낡은 도서관의 천장에 걸려 있던 오래된 램프 하나가, 느릿느릿, 홀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