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이 길게 드리운 폐허 속에서, 잿빛 그림자들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무너진 빌딩의 뼈대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으스스한 비명을 토해냈고, 그 소리는 진우의 낡은 방한복 깃을 파고들어 척추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늘은 늘 그랬듯이 병든 창백함을 띠고 있었고, 저 멀리, 거대한 촉수가 솟아오른 듯한 기괴한 형체가 마치 살아있는 악몽처럼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절망적인 확신을 주었다.

진우는 녹슨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낡은 자동 소총이 들려 있었지만, 그 총알로는 눈앞의 현실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총은 단지 일말의 안심을 주는, 허망한 무게일 뿐이었다. 그의 목표는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옛 중앙 도서관.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의 기록들이 남아있다고 했다. 어쩌면, 이 기형적인 악몽을 끝낼 실마리, 혹은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그를 움직였다.

발밑에서 툭, 하고 무언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폐허 더미 뒤로 숨었다. 심장이 귀청이 터질 듯 뛰었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젠장, 대체 뭘 밟은 거지?’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바닥을 살폈다. 부러진 인형의 팔이었다.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는 플라스틱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어섰다. 이런 류의 환각이나 과민 반응은 이제 일상이었다. 매일 밤낮으로 겪는 시각적, 청각적 왜곡과 끝없이 속삭이는 듯한 환청은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들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몇 시간을 더 걸었을까, 진우는 마침내 도서관으로 향하는 큰 길이 있어야 할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길이 아니었다. 거대한 균열이 도시를 두 동강 냈고, 그 틈새에서는 끈적한 암녹색의 점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점액 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품들이 뽀글거리며 터져 올랐고, 썩은 살 냄새와 비릿한 바다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가 진동했다. 균열 저편에 있는 도서관 건물은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젠장, 돌아가야 하나…”
진우는 중얼거렸다. 보급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식량은 하루치, 물은 반나절치. 여기서 더 돌아간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균열을 건널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키이이이잉…’ 마치 수천 개의 낡은 톱니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는 듯한,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흐트러지는 기괴한 금속음이었다. 소리는 균열 아래에서부터 올라왔고,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우는 즉시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다행히 근처에 전복된 버스 한 대가 있었다. 그는 버스 안으로 기어 들어가, 깨진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어둠 속에서, 녹색 점액이 뿜어져 나오는 균열의 가장자리에서, 기다란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형태였다. 곤충처럼 여러 개의 관절로 이루어진 팔다리가 있었지만, 그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고 얇았으며, 끝에는 날카로운 갈고리들이 달려 있었다. 머리라고 부를 만한 부위는 없었고, 대신 마치 내장이 뒤틀려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불쾌한 형태의 붉은 살덩어리가 촉수처럼 펄럭였다. 온몸은 투명한 껍질로 덮여 있었는데, 그 안으로는 희미하게 푸른 혈관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쉬쉬쉬쉬…’
그 괴물은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며 점액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것이 균열 위로 완전히 올라왔을 때, 진우는 가까스로 신음을 참았다. 높이가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것은 머리가 없는 몸뚱이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눈알들로 주변을 스캔하는 듯했다. 그 눈동자들은 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고, 어떤 것은 진우가 숨어 있는 버스 쪽을 향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진우는 숨을 멈췄다. 방독면 안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마치 외부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움직이지 마. 절대 눈에 띄지 마.’

괴물은 잠시 주변을 탐색하더니,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아니, 몸뚱이의 한 부분을 진우가 숨은 버스 쪽으로 돌렸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느리고 끈적했으며,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정확했다. 진우는 차가운 금속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이제 총알이 아니라, 제발 이 상황이 악몽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쉬이이이이익…”
버스의 외부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버스 위로 올라탔거나, 적어도 버스에 몸을 기댄 것이 분명했다. 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버스 지붕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끝났어.’
그는 체념했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이렇게 무력하게 죽을 수 없었다. 도서관, 그리고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해답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총을 들어 올렸다. 조준경에 괴물의 흐릿한 실루엣이 잡혔다. 이 총으로 저것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도망칠 시간을. 아니, 적어도 저 끔찍한 존재에게 한 방 먹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는 낡은 방독면 너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감추며 심호흡을 했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았다.

바로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차가운 목소리가 바로 버스 밖에서 들려왔다. 괴물의 기분 나쁜 마찰음이 순간 멈췄다. 진우는 그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괴물보다 더 기이하고, 더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었지만, 그 어떤 비인간적인 소리보다도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차가운 강철이 영혼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버스 밖을 응시했다. 괴물은 버스 지붕 위에서 움직임을 멈춘 채, 마치 먹이를 노려보는 듯이 균열 반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가장자리, 괴물의 촉수 그림자 아래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의 낡은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의복 아래로는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가 드러났다. 얼굴은 짙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책’이었다. 낡고 훼손된, 하지만 분명히 종이로 된 책. 그의 존재는 이 황폐한 세상의 모든 논리를 거스르는 듯했다. 그는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일까? 그리고, 이 끔찍한 괴물 앞에서 그는 왜 그리도 태연한 것일까?

“오래 기다렸다.”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괴물을 향하고 있었지만, 진우는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도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직감했다.
“네놈은 결국 여기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잠들 시간이다.”

남자는 들고 있던 책을 천천히 펼쳤다. 낡은 종이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고, 그 빛은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녹색 점액을 역겹게 일렁이게 만들었다. 괴물은 갑자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하는 금속음이 더욱 빠르고 격렬하게 터져 나왔지만, 이번에는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들렸다.

진우는 눈을 비볐다. 그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광기어린 환각인가? 아니면 이 지옥 같은 세상에 숨겨진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인가?

“크으으으으……”
괴물의 몸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이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저었다. 버스 지붕을 긁고, 주변의 폐허를 부쉈다. 하지만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고요한 폭풍의 핵처럼 그 자리에서 책을 펼친 채,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는 듯했다.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점 강렬해졌고, 이제는 버스 안까지 스며들어 진우의 눈을 멀게 할 지경이었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실체처럼 괴물의 몸을 휘감았다. 괴물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빛은 더욱 강하게 조여드는 것 같았다.

“사라져라, 추악한 꿈이여.”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메아리처럼 폐허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빛과 함께 괴물의 몸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형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림자가 지워지듯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했다. 괴물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더니, 이내 거대한 균열 속으로, 점액과 거품 속으로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듣는 이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침묵뿐이었다.

남자는 책을 덮었다. 빛은 사라졌고, 다시 세상은 잿빛 어둠과 기괴한 침묵에 잠겼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진우가 숨어 있는 버스를 향했다.

진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그림자에 가려 있었지만, 진우는 그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시선에서, 그는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괴물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순수하고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남자는 한 발자국, 진우의 버스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방금 괴물을 삼킨 낡은 책이 들려 있었다.

“너는…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낮은 읊조림에 가까웠지만, 진우의 귓속에서는 천둥처럼 울렸다.

진우는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괴물보다 더 큰 위협이, 이제 그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남자의 눈이 그림자 속에서 순간, 푸른빛으로 섬광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은 우주의 심연처럼 차갑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굶주림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 진우는 도서관에서 찾으려 했던 ‘단서’가, 어쩌면 이 남자에게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을 받았다.

그는 과연 이 존재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혹은, 그저 이 지옥 같은 세상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될 뿐일까?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진우의 뺨을 스쳤다. 그는 방아쇠를 쥐고 있던 손에, 조금씩 힘을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