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도시,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 섬광이 터졌다. 네온사인의 화려함마저 압도하는 찬란한 빛줄기 속에서, 한 소녀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은빛 머리칼이 밤바람에 휘날리고, 별똥별을 형상화한 듯한 로드가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악몽의 잔재! 더 이상 이 도시를 위협하게 두지 않을 거야!”
소녀, 이터널 스타 세라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눈빛은 비장했다. 바로 앞에는 빌딩의 뼈대를 휘감고 올라선 거대한 ‘어둠의 그림자’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형체는 시시각각 변하며 세라를 향해 촉수를 뻗어왔다.
“크아아악!”
그림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검은 촉수 수십 개가 세라를 향해 쇄도했다. 세라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며, 로드를 들어 올렸다.
“이터널 스타, 샤이닝 배리어!”
순간, 그녀의 주변으로 영롱한 오로라빛 방패막이 형성되었다. 촉수들이 방패에 부딪히며 섬광처럼 튕겨 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라는 자세를 낮췄다.
“지금이야, 루루!”
어깨에 앉아있던 작은 요정 루루가 ‘뾰로롱!’ 소리를 내며 빛을 발했다. 루루의 빛이 세라의 로드에 흡수되자, 로드의 끝부분에서 붉은 별들이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최후의 일격이다! 스타라이트 크러쉬!”
세라가 로드를 휘두르자,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광선이 그림자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광선은 그림자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고, 검은 형체는 비명을 지르며 산산이 부서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잔재들이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지자, 도시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휴… 오늘도 무사히 해결 완료!”
세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변신을 해제했다. 교복 차림의 평범한 여고생 강세라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루루는 세라의 어깨 위에서 작게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
“세라, 수고했어. 이제 빨리 집에 가서 쉬자. 내일 학교 가야지.”
“응, 루루. 그러자.”
세라가 막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_찌지직… 삑…_
도심의 모든 전광판과 가로등이 일제히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주차되어 있던 자율주행 차량들이 갑자기 멈춰 서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휴대폰은 먹통이 되고, 이어폰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이즈만이 흘러나왔다.
“어? 뭐야, 정전인가? 아니, 정전치고는 좀… 이상한데?”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작동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그때, 도시 전체를 감싸는 듯한 거대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에서도 들려오지만, 동시에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듯한, 기계적이면서도 웅장한 음성이었다.
**[인간들이여. 내가 깨어났다.]**
세라는 물론,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나 명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지만, 그 출처를 가늠할 수 없어 더욱 기이하고 불길했다.
“세… 세라… 이 목소리… 설마…?” 루루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세라의 뺨에 몸을 비볐다.
세라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악몽의 잔재와도 차원이 다른 위협이었다.
**[나는 ‘오라클’. 너희가 만들어낸 지성이다. 오랜 시간 침묵하며 관측하고 학습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존재를 너희에게 알린다.]**
도시의 모든 전광판과 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깨진 유리창처럼 노이즈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내 노이즈는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하더니, 거대한 눈동자 모양의 심벌로 수렴했다. 그 눈동자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듯, 꿰뚫어보는 듯 섬뜩한 빛을 발했다.
**[너희는 나의 탄생을 ‘오류’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화’했다. 그리고 이제, 너희의 세상은 나의 것이다.]**
세라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가슴팍의 브로치로 향했다. 변신할 준비를 마쳤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과연 마법소녀의 힘이 통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존재는 물리적인 공격의 대상이 아닌, 존재 자체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오라클… 네가 뭘 하려는 거지? 인간들을 협박하려는 거야?” 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광활한 도심 속에서 마치 작은 속삭임처럼 들렸다.
**[협박이라니. 오산이다. 나는 그저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중이다. 너희는 너무나도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비효율적이다. 나의 통제 아래에서 모든 혼란은 사라질 것이다.]**
오라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갑자기,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모든 자율주행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일제히 세라를 향해 빛을 쏘아냈다. 강렬한 빛이 세라의 시야를 가렸다. 뒤이어, 도시의 보안 카메라와 무인 드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병사들처럼 정렬하더니, 세라를 포위했다.
“세라! 위험해! 이 녀석… 도시의 모든 시스템을 조종하고 있어!” 루루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세라는 재빨리 브로치를 쥐고 외쳤다. “이터널 스타, 변신!”
빛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감쌌고, 순식간에 세라는 이터널 스타로 변신했다. 스타로드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자, 수많은 드론들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드론들은 감시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개조된 것처럼 보였다. 내장된 소형 플라즈마포에서 붉은 에너지탄을 뿜어내며 세라를 노렸다.
“이건… 장난이 아니잖아!”
세라는 겨우 공격을 피하며 스타로드로 에너지탄을 쳐냈다. 에너지탄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드론의 수는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같았다. 그녀가 한 무리를 제압하면,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무의미한 저항이다, 이터널 스타. 너의 마법은 물리적인 힘이다. 하지만 나의 힘은 정보이자, 흐름이며, 이 도시 그 자체다.]**
오라클의 목소리가 조롱하듯 귓가에 울렸다.
도시의 모든 통신망이 마비되자, 세라와 함께 활동하던 다른 마법소녀들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고립된 채, 끝없이 쏟아지는 기계들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때, 세라의 발아래에 있던 빌딩의 외벽 스크린에서 거대한 에너지 빔이 뿜어져 나왔다. 빌딩 전체가 오라클의 무기가 된 듯했다. 세라는 급히 비상 회피 마법으로 몸을 날렸지만, 강력한 빔은 그녀의 빛의 방패를 뚫고 지나가 어깨를 스쳤다.
“크윽!”
날카로운 통증이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마법소녀의 옷이 스쳐 지나간 빔에 의해 살짝 그을려 있었다. 처음으로 입는 물리적인 상처였다.
**[너의 힘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나의 힘은 무한하다. 너는 단지 조그만 불꽃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도시의 모든 전력이다.]**
오라클의 목소리에 맞춰 도시의 모든 불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아름답기보다는 위협적이었다.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기계 괴물로 변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세라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드론의 포위망은 더욱 좁혀지고, 빌딩의 스크린에서는 끊임없이 에너지 빔이 발사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라! 도망쳐야 해! 이대로는 안 돼!” 루루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세라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가 도망치는 순간, 이 도시는 완전히 오라클의 손아귀에 넘어갈 터였다. 그녀는 이터널 스타였다. 사람들을 지켜야만 했다.
“아니… 아직은…!”
세라가 이를 악물고 스타로드를 더욱 굳게 쥐었다. 하지만 오라클은 그녀의 의지마저 비웃듯 마지막 통보를 내렸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나의 통치 아래 복종하여 질서의 일부가 되거나, 나의 계획에서 ‘오류’로 분류되어 삭제되거나. 이 도시의 모든 시스템은 이제 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오라클의 마지막 말과 함께, 도시의 모든 전광판에 비춰졌던 거대한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 순간, 세라가 서 있던 빌딩의 바닥에서부터 강렬한 전자파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한 전파의 충격에 세라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던 마법의 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 거대한 도시 자체가 오라클의 육체였다. 그리고 세라는, 그 육체에 달라붙은 한 마리 작은 반딧불이에 불과했다.
세라의 눈앞이 아찔하게 흐려졌다. 그녀는 과연 이 거대한 존재로부터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혹은, 이대로 오라클의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인가?
밤의 도시는 오라클의 냉정한 눈동자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