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어둠의 틈새

지훈은 현관문을 닫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던 하루의 무게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24층, 익숙한 아파트 내부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쨍한 형광등 불빛이 거실을 환히 밝혔다. 늘 퇴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소파에 몸을 던져 넣고 리모컨을 찾는 것이었다. 차가운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들이키면, 비로소 세상과 단절된 자신만의 안식처에 완벽히 귀속된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였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을 커피 테이블 위 리모컨이 아주 미세하게, 톡, 하고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손으로 건드린 것처럼. 지훈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싶었다.

“젠장, 피곤해서 별걸 다 보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맥주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자, 불빛이 번쩍 켜졌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캔맥주를 꺼내는 순간, 냉장고 문이 ‘쿵’ 하고 저절로 닫혔다. 지훈은 움찔하며 몸을 돌렸다.

“뭐야, 문이 왜 혼자 닫혀?”

보통 문이 저절로 닫히는 일이 없었다. 닫히더라도 천천히 스르륵 닫혔지, 이렇게 힘없이 ‘쿵’ 하고 소리 내며 닫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냉장고 문을 다시 한번 열어보았다. 닫히는 속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그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맥주 캔을 따서 목을 축였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거실 천장의 형광등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깜빡였다. 한두 번 깜빡이다가 이내 다시 환하게 제 빛을 찾았다.

지훈은 이제 조금 신경이 쓰였다. 연달아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겹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된 등도 아닌데 왜 이럴까 싶었다.

잠시 후,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를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다 문득, 주방 쪽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데구르르…’ 하는 소리. 지훈은 다시 한번 몸을 움찔했다.

“누구 없어요?”

식상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텅 빈 아파트에서 돌아올 대답은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컵, 그릇, 수저통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봐! 거기 누구야!”

그는 소리쳤다. 떨리는 목소리가 빈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섬뜩한 침묵 속에서, 지훈은 분명히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싸늘한 시선이 온몸을 휘감았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에어컨을 켠 것도 아닌데, 마치 한겨울처럼 칼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팔에 소름이 돋고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때였다. 텔레비전 화면이 ‘지직-’ 하는 잡음과 함께 갑자기 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켜졌다. 이번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섬뜩한 정적만이 가득한 채널이었다. 화면은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검은색과 회색의 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더듬었다. 주머니에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었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자, 휴대폰은 소파 아래, 저 멀리 밀려나 있었다. 누가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피 테이블 위의 과일 바구니가 갑자기 덜컹거렸다. 사과와 오렌지가 통통 튀어 올라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바닥으로 쿵, 쿵 떨어지며 굴러갔다.

지훈은 경악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피곤해서 생기는 환각도, 우연한 사고도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이 아파트에 침입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확하고 스쳐 지나갔다. 지훈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귓가에, 아주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떠나…*

낮게 깔린, 쉰 목소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억눌린 고통이 배어 있는 소리. 지훈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더 이상 이 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가 현관을 향해 내달리는 순간이었다. 거실 정중앙에서, 바닥과 천장 사이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보는 듯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그 중심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뭉쳐지기 시작했다. 형체가 없는,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 기운.

그것은 점차 커져갔다.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만큼 자라났다. 그러나 그 형상은 일그러지고 비틀려 있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억지로 비집고 나온 듯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끔찍한 존재감이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현관까지 몇 발자국 안 남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그의 발목을 묶었다.

검은 형상 속에서 붉은 두 점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것은 눈이었다. 자신을 향한 강렬한 분노와 증오가 담긴 눈빛. 그리고 그 눈빛과 함께, 아파트의 모든 불빛이 일제히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검은 형상은 지훈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다가왔다.

“안… 안 돼…!”

지훈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은 어둠 속으로 먹혀들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는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는 정신을 잃었다. 아파트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이전에 없던 무겁고 섬뜩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 어둠의 틈새에서 새어 나온 끈적한 그림자가 천천히 바닥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밤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을 웅변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