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어둠 속, 은하의 심장을 가르는 늑대처럼 우주선 천랑호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수억 년 전 폭발한 별들의 잔해가 흩뿌려진 암흑 성운, 그 침묵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은 오직 함선 엔진의 나지막한 공명음뿐이었다. 함교의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는 고요하고도 웅장했으며, 때로는 비정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령관 강호는 묵묵히 함장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은하계 지도는 미지의 영역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임무는 그 미지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었다. 한때 무림의 고수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고독한 수련을 택했듯, 그는 은하의 심연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그의 옆, 부함장 태산이 거친 손으로 계기판을 두드리며 불평했다.
“젠장, 이놈의 센서는 왜 맨날 이 모양입니까? 암흑 물질 잔류값만 가득하다고 보고해봤자 누가 믿어주겠어요?”
태산은 몸집만큼이나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육체와 기계를 다루는 데 능했으며, 함선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사였다. 강호는 피식 웃었다.
“자네만큼 거친 센서가 있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지.”
그때, 함교 한켠에 자리한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박사 은하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눈은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형형하게 빛났다.
“사령관님! 방금 전… 탐사용 드론에서 전례 없는 데이터가 수신됐습니다!”
은하는 천랑호의 자랑이자 유일한 박사였다. 그녀의 지성은 우주만큼이나 넓고 깊었으며, 미지의 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그 어떤 위험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그녀의 뒤에서 항해사 유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메인 센서에도 감지됐습니다! 이건… 제가 본 적 없는 형태의 에너지 반응입니다! 암흑 물질과 반응하는… 하지만 생체 반응처럼 보이는…”
유성은 함선에서 가장 어리고 눈치 빠른 항해사였다. 그의 손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오갔고, 곧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형체가 떠올랐다.
강호는 몸을 일으켜 스크린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은 형체에 닿는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 스크린 속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마치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은하의 별빛조차 닿지 않는 심연 속에서, 그것은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고대 문명의 유적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깎아낸 검은 수정 같기도 했다.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희미한 오라는 일반적인 에너지 파장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무림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승들의 내공처럼, 어떤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이건… 대체….” 태산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함교에 울렸다.
은하는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로 손가락을 휘저었다. “스캔 결과를 보세요!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분석조차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어요. 그것도… 주변 시공간을 미세하게 왜곡시키는 에너지를!”
강호는 아무 말 없이 구조물을 응시했다. 그의 단전 깊숙한 곳에서,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반응하는 듯한 묘한 감각이 일었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 자신이 익혔던 비급에서 언급되던 ‘천지 기운’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우주 한가운데서,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다니.
“접근 속도를 최대로 높여라.” 강호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사령관님!” 태산이 놀라 소리쳤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영원히 미지에 머물게 될 뿐.” 강호의 눈은 흔들림 없이 구조물을 향했다. “유성, 접근 경로를 확정하고, 은하 박사, 모든 센서를 동원해 상세 분석을 시작한다. 태산, 모든 전투 태세를 갖춰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유성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천랑호의 거대한 엔진이 다시 한번 포효하며, 희미하게 빛나는 구조물을 향해 돌진했다. 우주선이 가까워질수록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더욱 뚜렷해졌다. 강호의 심장이 강하게 울렸다. 그것은 경고음이 아니었다.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한, 알 수 없는 끌림이었다.
거대한 구조물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은하의 별자리를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했고, 어떤 고대 문자의 조각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문양들 사이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맥동하는 빛이 느껴졌다.
천랑호가 구조물에 채 1킬로미터도 접근하지 않았을 때였다.
“경고! 선체 외부 에너지 실드에 이상 반응 감지! 알 수 없는 에너지파가… 실드를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성의 목소리가 비명을 토해내듯 날카로웠다.
동시에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함교를 뒤덮었고, 계기판의 수치들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젠장, 실드 최대치로 올려! 뭐든 막아!” 태산이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조차 흔들림 속에서 파묻혔다.
강호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단전에서 끓어오르던 기운이 폭주하듯 솟구쳐 올랐다. 그는 잊고 지냈던 수련의 감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운이 마치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공명하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문득, 그의 눈에 보였다. 구조물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을. 그리고 그 빛은 강호의 시선을 꿰뚫고 들어와 그의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모두… 조심해…!”
강호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구조물이 갑자기 맹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우주의 암흑을 갈라놓을 듯 강렬했고, 천랑호의 모든 시스템이 경고음을 토해내며 셧다운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함선 제어 불능! 중력장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유성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들렸다.
천랑호는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통제력을 잃고 빛을 뿜어내는 구조물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강호는 마지막으로 스크린에 비친 구조물의 모습을 보았다. 거대한 문양들이 하나하나 빛나며,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그는 보았다. 우주의 심연이 열리는 듯한, 칠흑 같은 어둠의 틈을.
그리고 그 틈 너머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