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깊어지고, 먹구름이 한양의 하늘을 집어삼킨 밤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져 기와지붕을 사정없이 때렸고, 골목마다 물길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 거친 빗줄기를 뚫고 허겁지겁 한 사내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옷은 이미 빗물에 축축이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오직 한 곳만을 향해 달려갔다.

사내가 도착한 곳은 성균관 북서쪽,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 끝에 자리한 작은 한옥이었다. 문패조차 없는 소박한 집. 사내는 망설임 없이 닫힌 대문을 두드렸다. 나무문은 빗소리에 묻혀 몇 번이나 그의 절박한 노크를 삼켰다.

“이현 선생! 이현 선생, 계십니까! 박 서리입니다!”

몇 번의 외침 끝에, 안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빗물을 뚝뚝 흘리는 사내를 맞이한 것은 낡은 두루마기를 걸친, 스무 살 남짓한 젊은이였다. 그는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깊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고, 한 손에는 뜯다 만 고서적을 들고 있었다. 그의 뒤편, 방 안에서는 희미한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이런 비를 뚫고. 무슨 일이시오, 박 서리?”

이현은 젖은 옷차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뒤에 서 있는 어둠을 뚫어지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서리를 응시했다. 서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선생! 큰일 났습니다! 상상도 못 할, 기이한 변고가 터졌습니다!”

이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좀처럼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인물이었다. 온갖 괴이한 소문과 잡설 속에서도 오직 그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논리’와 ‘추론’이었다.

“변고라니. 어떤 변고 말이오? 내게 이런 한밤중에 찾아올 정도라면, 필시 인력으로는 풀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겠지.”

“그렇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합니다! 김만석 대감, 그 풍림당의 김만석 대감이 살해당했습니다!”

이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김만석 대감이라면, 한양 최고의 거상(巨商)이자 조정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탐욕스럽고 잔혹하다는 평이 자자했지만, 그만큼 치밀하고 견고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김만석 대감이라… 누가 감히 그런 대담한 짓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밀실입니다, 선생! 완벽한 밀실 살인입니다!”

서리는 흥분하여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현은 조용히 문을 닫고 그를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좁은 방 안에는 책으로 가득 찬 서가가 전부였다. 서리는 등잔불 아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건네받았지만, 마실 생각도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 저녁, 대감은 안채 별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셨습니다. 밤늦도록 나오지 않으시자, 하인들이 걱정되어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답니다. 결국 대문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대감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밀실이라 했지? 방 문은 어찌 되어 있었나?”

“안에서 빗장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쇠붙이로 단단히 잠겨 있었고, 어떠한 파손 흔적도 없었습니다! 창문 역시 모두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살도 온전했습니다. 심지어 창호지도 찢긴 곳 하나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이현은 차분하게 서리의 말을 들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두뇌는 이미 복잡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혹시 다른 출입구는? 숨겨진 통로나 지하실 같은 것은 없었나?”

“모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벽은 견고했고, 바닥과 천장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감은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심장에 정확히 한 번.”

서리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의금부에서도, 포도청에서도 이런 기이한 사건은 처음이라며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다고 했다. 흉기는 대감의 서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는데, 그 칼은 대감의 소유물이 아닌, 처음 보는 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밀실 살인. 이것만큼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은 없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 이현의 천재성이 발현되는 법이었다.

“좋소. 나를 풍림당으로 안내하시오. 직접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으니.”

서리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허둥지둥 일어서서 이현을 재촉했다.

빗속을 뚫고 두 사람이 도착한 풍림당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검은 기와와 붉은 흙벽이 빗물에 젖어 더욱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미 저택 앞은 수십 명의 포졸들과 의금부 나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횃불이 비를 맞아 치지직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다.

“선생, 이쪽입니다.”

서리는 이현을 이끌고 별당으로 향했다. 별당 입구에는 대감의 가족들, 특히 그의 첩들과 자식들이 통곡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이현은 그들의 눈물을 흘깃 보고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방의 중앙에는 김만석 대감이 쓰러져 있었다. 비단옷은 피로 흥건했고, 눈은 감기지 않은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서책상 위에는 날카로운 칼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현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빗장을 부수고 들어온 터라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문틀과 빗장이 놓였던 자리에는 명백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과연, 쇠로 된 빗장은 안에서 굳게 걸려 있었고, 밖에서는 어떠한 도구로도 해제할 수 없는 구조였다. 창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촘촘한 창살과 굳게 닫힌 빗장, 찢긴 곳 하나 없는 창호지.

포졸들이 지키고 있는 방 한구석에서는 노련한 검시관이 시신을 살피고 있었다.

“상처는 깨끗합니다. 한 번에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저 칼이 분명합니다.”

이현은 시신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방 안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벽의 무늬, 바닥의 나뭇결, 천장의 대들보, 낡은 가구들… 심지어는 작은 먼지 하나까지도 그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서리가 곁에서 쩔쩔매며 말했다. “선생, 아무리 봐도 이건 귀신 짓이 아니고서는… 사람의 소행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현은 묵묵히 방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닫힌 문 위에 달린 낡은 나무틀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잠시 후, 이현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귀신이라… 글쎄. 이 방 안의 모든 것이, 오직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있구려.”

서리와 주변의 포졸들은 이현의 말에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선생, 어떻게…” 서리가 겨우 말을 이었다.

이현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차갑게 빛났다.

“중요한 것은, 이 빗장과 창문이 ‘누구를’ 가두고 있었느냐는 것이지.”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밀실의 정의를 뒤집는 듯한,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이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젖은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허리춤에 찬 작은 주머니에서 돋보기와 붓, 그리고 먹통을 꺼냈다. 그의 눈은 이미 퍼즐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기 시작한 듯, 깊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비는 그칠 줄 몰랐다. 풍림당의 밀실 살인 사건은 이제 막 거대한 미궁의 문을 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