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천지가 아득히 울리는 함성 속, 거대한 원형 경기장의 중심에 두 그림자가 마주 섰다. 겹겹이 쌓인 관중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깃발들은 무정한 바람에 나부꼈다. 제국의 황제를 비롯한 각 문파의 수장들, 그리고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무인들과 백성들의 시선이 오직 그들에게로 향했다. 이곳은 바로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제37회 천하제일 무도회 결승전의 문이 열린 곳이었다.

광활한 비무대는 신비로운 광석으로 다져져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위, 한 사내는 마치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벼려낸 듯한 검은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흑풍대사’라 불리며, 그림자를 다루는 신묘한 권법으로 수많은 강자를 쓰러뜨린 마성의 무인이었다. 그의 눈은 뱀처럼 번뜩이며 상대를 꿰뚫었고,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흐음, 앳된 계집이군. 제법 흥미로운 재주를 지녔다 들었다만, 감히 이 흑풍 앞에 설 배짱이 가상하다.”

흑풍대사의 목소리는 마치 바닥을 긁는 듯 거칠고 묵직했다. 그의 비릿한 미소는 비웃음과 경멸이 뒤섞인 채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그의 맞은편에 선 이는 ‘설화’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얼음처럼 차분한 푸른 눈동자에는 일렁이는 파도처럼 강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비록 가녀린 듯 보였으나, 그녀의 새하얀 무복은 먼지 한 점 없이 정갈했고, 허리에 찬 한 자루 검에서는 맑고 투명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천하에 이름을 떨친 흑풍대사에 비하면 설화는 이제 막 피어나는 신성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결승까지 올라온 돌풍 같은 존재였다.

“말은 그만두시죠, 흑풍대사. 이곳은 말이 아닌, 오직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자리이니까요.”

설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단단함이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설화의 당찬 태도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흑풍대사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건방진 것. 후회하게 해주마.”

경기를 알리는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쾌애애앵!

징소리가 멎자마자, 흑풍대사는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의 움직임은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했으며,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비무대 위에 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설화를 향해 쇄도했다.

“칠흑의 그림자 권법, 제1식! 사령도하(死靈渡河)!”

흑풍대사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사방의 빛을 흡수하는 듯했다. 거대한 검은 기운이 마치 거친 파도처럼 설화를 덮쳤다. 단순한 권풍이 아니었다. 그림자 속에 수많은 환영들이 일렁이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동시에 심장을 압박하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설화의 전신을 조여왔다.

콰아아앙!

설화는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맑은 검날이 차가운 빛을 발하며 흑풍대사의 그림자 권풍을 갈랐다.

“빙하류 검술, 제1식! 설화만개(雪花滿開)!”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마치 얼음 파편이 흩날리는 듯한 흰색 검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차가운 기운이 흑풍대사의 그림자 권풍과 부딪히자, 마치 뜨거운 숯에 물을 붓는 듯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소멸했다.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흑풍대사의 일격을 막아낸 설화의 실력에 모두가 놀란 것이다.

“흥, 제법이군.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내 그림자 한 조각도 벨 수 없을 것이다!”

흑풍대사는 더욱 사나운 기세로 설화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육체가 순식간에 그림자와 융합하는 듯하더니, 비무대 위에는 수십 개의 흑풍대사의 잔상이 생겨났다.

“칠흑의 그림자 권법, 제3식! 천영만상(千影萬象)!”

어떤 것이 진짜 흑풍대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모든 그림자들이 동시에 공격을 퍼붓는 듯했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권풍은 설화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경기장 전체가 어두운 그림자에 잠식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설화는 침착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그림자의 숲 속에서도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그녀는 검을 세워 자세를 낮추고, 검 끝으로 비무대 바닥을 톡톡 건드렸다.

“빙하류 검술, 제2식! 한빙검기(寒氷劍氣)!”

그녀의 몸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솟아나오더니, 순식간에 비무대 바닥을 따라 얼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얼음은 거울처럼 흑풍대사의 잔상들을 비춰냈고, 그 거울 속에 비친 잔상들은 혼란스러운 듯 일렁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그림자 중 오직 한 곳에서만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진짜 흑풍대사는 다른 그림자들보다 아주 미세하게 더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번뜩!

설화의 눈이 섬광처럼 빛났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한 곳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촤악!

얼음처럼 차가운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흑풍대사의 잔상 중 하나가 마치 거품처럼 터져 사라졌다. 동시에, 진짜 흑풍대사의 어깨에 깊지 않은 검은 선이 그어졌다.

“크윽!”

흑풍대사는 예상치 못한 일격에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그림자 환영들이 일순간 흐트러지며 다시 하나의 실체로 돌아왔다. 그의 어깨에서는 검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찮은 계집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흑풍대사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오라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고, 비무대 위에 있던 모든 그림자들이 그의 오라에 흡수되는 듯했다. 공기 중의 모든 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한 살기가 비무대를 가득 채웠다.

“좋다! 네놈에게는 최고의 영광을 안겨주마! 이 흑풍대사의 필살기로 끝내주지!”

흑풍대사가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 모았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용솟음치며 하나의 거대한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블랙홀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

“칠흑의 그림자 권법, 종극! 암야멸도(暗夜滅道)!”

구체는 점차 커져 거대한 바위만큼의 크기가 되었고, 그 안에 담긴 파괴적인 힘은 관중석에 앉은 모든 무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흑풍대사가 모든 것을 끝장내는 궁극의 기술이었다. 이 한 방에 수많은 강자들이 허무하게 스러져 갔다.

“설화 님, 피하십시오!”

관중석에서 누군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러나 설화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더욱 깊고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검을 단단히 쥐고, 검 끝을 하늘로 향했다.

“빙하류 검술, 종극! 만년빙화(萬年氷華)!”

설화의 전신에서 순백의 기운이 분출하더니, 마치 수천 송이의 눈꽃이 피어나는 듯한 환영이 그녀를 감쌌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흑풍대사의 암흑 기운과 맞서며 비무대 한가운데에서 격렬한 충돌을 예고했다. 비무대 바닥에 번져있던 얼음은 그녀의 기운을 받아 더욱 견고해졌고, 마치 그녀의 힘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가 되는 듯했다.

검 끝에 모인 순백의 기운은 거대한 얼음 꽃잎처럼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흑풍대사의 암흑 기운을 압도하며 경기장 전체를 환히 밝혔다.

“가라…!”

설화의 입술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검에서 순백의 거대한 얼음 꽃잎이 흑풍대사의 검은 구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 비무대 중앙에서 충돌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굉음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두 힘의 격돌에서 뿜어져 나온 파괴적인 기운은 비무대 위에 깔린 견고한 광석을 산산조각 냈고, 바닥은 마치 지진이 난 듯 갈라졌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기운에 관중석의 일부는 날아가 버렸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하얀 섬광과 칠흑 같은 어둠이 뒤섞여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땅을 울리는 진동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과연, 이 치열한 격돌 속에서 누가 승리했을까? 아니, 두 사람 모두 무사할 수 있을까?

연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숨소리가 멎었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비무대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비무대 중앙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패여 있었고, 그 안에서 두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는 무릎을 꿇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검을 단단히 쥔 채 간신히 서 있었다.

결과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침묵만이 경기장을 지배했다.